함께쓰는 민주주의
김원준, 김구 등 작사, 작곡 능력 갖춘 5인조 밴드 베일(V.E.I.L) 본문
‘이제 우리 음악을 알릴 때가 됐죠!’
세월의 흔적 묻어나는 김원준,
음반에 발표한 모든 곡의 저작권을 베일이란 이름으로 등록했다. 공동 창작·공동 저작권 공유 등 모든 것을 함께 하는 게 원칙이다. “우리는 멤버들이 곡을 쓸 때 다른 멤버가 그 자리에서 술을 마셨어도, 저작권을 평등하게 나눈답니다. 하하하.”(이창현) 한국은 밴드들이 활동하기엔 공간과 무대가 턱없이 좁다. 더구나 요즘에는 음반도 잘 나가지 않는다. 다섯 멤버 전원의 독자적인 생계유지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고, 경제적으로 궁핍하면 질투와 반목이 있기 마련. 이들은 투잡스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김원준은 KBS 오디오디엠비에서 ‘매직 인 더 월드’ 진행과 동시에 숭실대와 대구예술대 강의를 한다. 김구는 에스케이텔레콤, 삼성전자, 스포티지 등의 광고에서 성우로 맹활약 중이다. 멤버들의 말을 빌리자면, 광고계에서 “쏟아지는 수도꼭지”다. 공익광고에서 흘러나오는 “참 잘했어요”, SK텔레콤 ‘T’에서 굵직한 음성 “나는 나를 좋아한다. 나는 나다”, 삼성전자 “당신의 TV는 블랙패널입니까”는 모두 김구의 목소리다. 김선우·정한종은 기타 선생과 세션 및 공연 기획자로, 이창현은 음반 프로그래머로 활동한다. 바쁜 개인 일정으로 연습을 위해 모이는 것 자체도 녹록치 않다. 그런데도 바쁜 시간을 쪼개 밴드활동을 하는 이유는 ‘밴드 음악’에 대한 갈증과 욕심 때문이다. 김원준은 “대학과 방송을 통해 받는 강의료와 출연료, 자작곡 저작권료로 음악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수익의 일부는 밴드의 음반작업비 등으로 틈틈이 보태왔다. 이들의 목표는 “좋은 곡과 음악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이다. 활동의 첫 단추는 이달 3일(금)~4일(토) 이틀 동안 대학로 질러홀에서 여는 콘서트 ‘바캉쇼’로 꿴다. 성공회가 주최하는 결식이웃돕기 주먹밥 콘서트에도 꾸준히 참석하려고 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틈 날 때마다 도움을 주고 싶어요.”(이창현) 일단은 국내에서 인정받는 게 먼저다. “대한민국에서 밴드하기는 쉽지 않지만, 꾸준하게 오래하면 대가가 꼭 돌아 온다고 봅니다. 텔레비전을 틀었을 때 수도꼭지처럼 우리의 노래가 나오지는 않겠지만, 소신을 갖고 열심히 하면 사람들이 알아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김원준) 10년 넘게 음악이라는 한 우물을 파온 이들, 아직은 모두 여자친구가 없다. “음악과 사귄다.”면서도 “서로 애인이 빨리 생기길 기원하고 있다.”고 했다. 국내 활동이 무르익으면, 올해 안에 중국과 일본 진출도 추진하려고 한다. “지금은 시작하는 단계이지만, 국외 활동에 대한 관심과 욕심이 많아요. 올해 말에는 일본과 중국에 진출할 생각이에요.”(정한종) “10년, 20년이 지나도 지금 이 느낌 이 열정 그대로 활동할 겁니다.”(김원준) 틀에 박힌 음악적 장르를 고집하지 않는 대신 ‘베일표’ 음악을 선보이겠다는 이들의 음악적 행보가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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