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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데뷔한 3인조 혼성 그룹 클래지콰이(DJ 클래지, 호란, 알렉스)는 음악을 넘어 하나의 기호다. 클래지콰이 본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떤 청자가 “나 클래지콰이 좋아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의 음악적 취향은 물론 삶의 양식이나 지향점까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클래지콰이의 세 번째 정규 음반 ‘러브 차일드 오브 더 센추리(Love child of the century)’가 나왔다. 지난 음반과 마찬가지로 조그마한 새끼 돼지가 이들을 상징하는 표시다. 하얀 바탕의 커버에는 돼지 모양의 옷을 입은 아이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클래지가 직접 그렸다는 이 아이가 음반 제목에서 표현된 ‘러브 차일드’다. 어떤 질병에도 걸리지 않고 세계에 희망, 기쁨, 사랑을 안겨주는 아이다. 이 음반은 러브 차일드를 통해 얻은 영감을 노래로 만든 느슨한 형태의 컨셉트 앨범이다. 새 음반은 발랄했던 데뷔 시절로 회귀한 느낌이다. 1980년대를 연상시키는 촌스러우면서도 흥겨운 소리들이 2000년대 감각과 만났다. 다소 느리고 어두웠던 두 번째 음반과는 확연히 다르다. |
지난 음반과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호란(27) 노래가 다이내믹해요. 보컬로서 노래하기가 재미있었다고 할까요. 멜로디도 좋고요. 앨범 작업이 끝나고 생각하니 굳이 편했던 것도 아니지만, 노래가 부담 없어서 편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예전엔 웰메이드, ‘안전빵’을 추구했는데, 이번엔 노래 자체의 재미를 강조했어요. 클래지(33) 음악 자체는 밝아졌어요. 신나는 곡도 많고요. 여름이라는 계절적 요인을 의식하면서 만든 건 아닌데, 결과적으로 여름에 어울리는 노래가 됐네요.
러브 차일드라는 개념은 어떻게 생각하신 건가요. 클래지 말 그대로 이 세기의 사랑스러운 아이에요. 인류의 희망적인 아이콘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사실 음반 작업을 하면서 우울했거든요. 스스로 희망적인 존재를 만들어 거기서 기쁨을 전해 받고 싶었어요.
80년대 음악 느낌이 나는데요. 지금 굳이 80년대로 돌아간 이유는 뭔가요. 클래지 펫 샵 보이스, 티어스 포 피어스, 아하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자랐어요. 지금도 동경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끔 그리워요. 그런 느낌이 자연스럽게 새 음반에 반영된 듯해요. 어떤 사람들은 그때 음악을 지금 기준에서 ‘촌스럽다’고 하지만, 전 ‘솔직하다’고 생각해요. 이번 음반의 타이틀곡은 ‘러버 보이(Lover boy)’다. 뉴 웨이브 스타일의 복고풍 일렉트로니카 넘버다. 80년대 ‘롤러장’에서 들었을 법한 음악의 느낌이 2000년대식으로 업그레이드됐다. 3번 트랙 ‘생의 한가운데’는 버글스를 연상시키고, ‘라스트 탱고’는 일렉트로닉 탱고 넘버다.
타이틀 곡은 어떻게 정하시나요. 어떤 팀은 팬들의 투표를 통해 정하기도 한다는데. 클래지 저희는 그렇게 안 해요. 그냥 우리가 정하죠.
의외의 대답이었다. 클래지콰이는 언제나 트렌드의 맨 앞줄에서 대중을 이끈다고 알려진 그룹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기호를 가장 앞서 파악해야 할 이들이 대중의 취향에 무관심하다니. 혹시 ‘우리가 하면 트렌드다’하는 자신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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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지콰이하면 ‘트랜드 세터’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클래지 1집까지는 트렌드 세터였겠지만, 지금은 아니죠. 이제 음악을 듣기 시작한 중·고등학생과 저희의 공감대가 다르잖아요. 저희가 하는 음악이 자연스럽게 트렌드가 되면 다행이지만, 설사 안 된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죠.
대중보다 딱 반발만 앞서 가는 게 힘들지 않나요. 아예 대중과 상관없이 예술적인 부분을 확대한다거나, 더 대중적인 음악을 하고 싶은 욕심은 없나요. 클래지 처음부터 타협할 생각을 하면서 음악을 만들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굳이 어려운 음악을 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저도 편한 멜로디를 좋아하거든요. 사실 저희는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음악을 할 뿐이에요. 그렇다고 음악적으로 많이 아시는 분들이 싫어할만한 곡을 만들고 싶지도 않고요. 대중과 음악 팬, 평론가의 중간에 있기가 상당히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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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클래지콰이의 활동을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면, 바로 그 어려운 일을 비교적 잘 수행했다는데 이유를 둘 수 있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의 환호성을 받으면서도 평론가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춘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새 음반에는 14곡이 담겼다. 커버 속지를 펼쳐보면 가사가 적혀있는데, 대부분 영어고 그 사이에 한글이 있을 정도다. 지난 음반에서도 이들은 영어 가사를 주로 사용했다.
영어로 가사를 쓰고 노래하는게 편한가요. 클래지 가사 쓰는데 영어가 더 편해요. 은유적 표현을 하는 것도 그렇고요. 노래하는데 음색도 달라져요. 특히 빠른 노래에는 영어 가사가 더 잘 어울려요. 이번에도 ‘라스트 탱고’ 같이 느리게 부르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노래에는 한글 가사를 더 많이 썼어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클래지, 알렉스는 캐나다 이민 1.5세대다. 객원 보컬이라 할 수 있는 크리스티나는 현재 캐나다 거주중이다. 영어로 교육받고 말을 해온 이들이 영어로 활동을 하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같은 소속사(플럭서스)의 이승열이 그렇듯이, 이들도 이민 1.5세대로서의 정체성을 숨길 의사가 없어 보인다. 팬들도 이들의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거나 오히려 더 흥미롭게 생각하는 분위기다.
클래지콰이는 음악이자 하나의 기호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클래지콰이에 대한 가장 큰 편견이라고 하면 어떤 걸 들 수 있을까요. 알렉스(27) 일단 저희는 클럽을 안 좋아하고요(웃음). 보통 클래지콰이하면 어반(urban)하고, 고급스러운 와인을 마실 거라고 생각하시지만 그렇지 않아요. 클럽에 들러봐야 친구들하고 맥주 한 잔 하는 정도예요. 클래지 일본 관광객을 위한 한국 관광 안내 책자에 저희 음악을 ‘압구정케이’라고 소개해 놨더라구요. 일본 시부야에서 유행했던 ‘시부야케이’에서 따온 말이겠죠. 그런 것 때문에 걱정이 있었어요. 저희 음악이 서울의 한 지정된 장소에서 흘러가는 트렌드에 지나지 않을까하는 거였어요. 분명 음악이 아니라 이미지로 저희를 소비하는 분이 계시죠. 자기를 표현하는데 액세서리처럼 클래지콰이를 이용하는 거예요. 음악은 듣는 사람 마음이니까 그렇게 하지 마시라고 얘기할 수는 없죠. 다만 그런 이미지 때문에 듣지도 않고 저희를 배척하는 분만 없으면 좋겠어요.
호란 게다가 저희 셋 다 강북에 살아요(웃음). 아날로그 음반보다는 디지털 음원이 각광받기 시작한 시대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대중의 감수성을 자극한 클래지콰이의 음악은 이 시대에 꽤나 어울리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정작 클래지콰이는 “가능하면 음반으로 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단순히 자신들의 음반을 많이 팔기 위한 전략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통일체로서 음반의 가치를 중시하는 표현이었다. 가장 트렌디한 음악을 하면서도 고전적인 음악관을 가지고 있는 모순의 그룹 클래지콰이. 좋은 뮤지션의 태도는 시대와 상관없이 비슷한 법이다. 클래지콰이의 이번 음반은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발매됐다. 일본에서는 선 주문만 1만장이 들어왔다. 클래지콰이는 이달 14일(토)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을 시작으로 나고야, 오사카, 도쿄 등을 도는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글 백승찬 |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사진제공 플럭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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