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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이 빚어 낸 미술 탄압 1999년, 2001년의 두 사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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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이 빚어 낸 미술 탄압 1999년, 2001년의 두 사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9. 1. 22. 11:45
 
21세기가 시작되는 즈음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일어난 두 개의 미술 탄압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기독교 국가인 미국의 심장부 뉴욕에서, 또 하나는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자 탈레반의 근거지인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근처에서였다. 종교적 편견으로 인해 미술에 가해진 이 사건들은 전 세계인들에게 하나는 희극으로 또 다른 하나는 비극으로 비추어졌다.

미술관에 걸린 흑인 성모마리아
 

1999년 12월 16일 뉴욕 브루클린미술관 입구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영국의 광고재벌 찰스 사치가 운영하는 사치(Saatchi) 컬렉션에서 기획한 ‘센세이션(Sensation)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77년의 역사를 가진 이 미술관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사건은 이날 오후 4시 30분쯤에 일어났다. 관람객으로 들어온 70대의 노신사가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5층에 있는 크리스 오필리의 <성모마리아>에 곧장 다가가 낙서를 한 것이다. ‘Don’t’, ‘Stop’ 같은 글을 그림 속 성모마리아의 얼굴과 가슴 그리고 곳곳에 써대기 시작했다. 그는 경비원들에게 체포될 때까지 준비해온 잉크로 낙서를 했다. 관람객들의 신고로 체포된 노신사는 은퇴한 수학교수였다. 그는 경찰에 인계되어 수갑을 찬 후 경찰의 왜 그랬냐는 질문에 “그것은 신성모독…….”이라고 대답했다. 다행히 미술관 측의 작품 보수로 그림은 큰 탈 없이 원상 복구되었다.
이 해프닝의 발단은 그 직전에 브루클린미술관에서 전시 준비 중이던 작품 중의 하나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뉴욕 시로부터 전시 중지 명령을 받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당시 뉴욕시장 루돌프 줄리아니는 전시개막전 VIP 초대에서 ‘센세이션전’에 출품된 작품들을 보고 “더러운 것들”이라 부르며 특히 오필리의 코끼리 똥을 사용해 그린 그림 <성모마리아>를 지칭하면서 “성모마리아에 대한 모독”이라며 매년 84억 원에 달하는 박물관 운영비 지원을 중단할 수 있다는 경고를 하였다.
또한 시청 소유인 브루클린미술관의 건물 임대 계약을 종료하겠다고 말했다.(필자 주 - 지난달 19일(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관광객을 포함한 미국 내 모든 외국인들에게 사진과 지문 등 생체 정보가 담긴 신분증 소지를 의무화시키며, 카드를 소지하지 않은 외국인은 미국에서 추방할 것을 대선 공약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술관 측은 예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며 뉴욕 시에 즉각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이 사건은 법원에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 미술관에 승소판결을 내렸다.
아무튼 이 사건을 둘러싼 논쟁은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의 영부인 힐러리 여사 또한 뉴욕 시의 처사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조속히 그 전시가 개최되기를 기대한다면서 미술표현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예술의 자유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그 자체로 순수하게 자율적으로 자가 증식하는 것이라고 발표했다.

 



크리스 오필리 '성모마리아' 종이콜라주, 유채, 코끼리 똥, 243.8*182.9cm, 1996년

 
코끼리 똥은 소중한 삶의 에너지
 

크리스 오필리는 테이트 갤러리(영국 국립현대미술관)에서?그 해에 뛰어난 전시를 보여준 작가에게 수여하는?터너상 수상자 중 최초의 흑인 수상자였다. 무엇보다 오필리가 돋보인 것은 그만의 정체성을 찾은 것이다. 화면에 구현한 성모마리아를 백인의 모습이 아니라 흑인 성모마리아로 표현한 것이었다. 또한 오필리는 짐바브웨의 바위 그림에서 발견한 반복적인 고유의 문양과 아프리카에서는 소중한 에너지인 코끼리의 똥을 그림의 재료로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과 문화적 갈등 문제를 다루었다.
이것은 성모마리아 상에 하나의 상징으로 아프리카 문화를 접맥시킨 것이었다. 성모상의 배경에 붙인 여성의 성기 사진들은 포르노 잡지에서 오려 붙이긴 했지만 실제 그 의미는 생의 원천을 상징하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소중한 가치 그것이다. 그래서 성모마리아의 가슴에 떡하니 올라앉아 있는 코끼리 똥과 성모상 배경의 여성 성기 사진이 더럽고 불경스러운 물질이라고 느끼는 것도 어쩌면 주관적인 편견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은퇴한 수학교수와 뉴욕 시장 줄리아니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상대방의 문화적 가치에 대한 이해 없이 그들의 편견으로서만 그림을 보았던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바미안 마애불상 파괴

“동북쪽 산의 후미진 곳에 돌로 만들어진 부처님의 입상이 있다. 높이는 140∼150척이며 금색이 찬란하게 빛나고 온갖 보배로 장식되어 눈을 어지럽힌다.” 서기 630년경 16년 동안 서역을 여행하고 돌아온 중국의 현장법사는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바미안에 있던 석불의 아름다움을 『대당서역기』에서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1500년 동안 사람들에게 종교적 경배의 대상이 됨과 동시에 인류의 문화예술 유산으로 남아있던 바미안 마애불상은 그러나 2001년 3월 10일 한 순간에 폭파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당시 아프간 이슬람 통신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세계 최대 크기인 바미안의 불상을 폭파했다.”고 보도했다. 불교역사 유적으로서만이 아니라 전 인류의 문화재로 인정받는 불상을 탱크, 로켓포, 다이너마이트 등을 동원해 흔적도 없이 파괴하고 말았다. 수도 카불에서 북서쪽으로 130킬로미터 떨어진 바미안 지방의 절벽에 높이 52.5미터의 세계 최대 마애불과 36미터의 고대 석불은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졌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했던 탈레반 정권의 정보문화장관은 “석불의 머리와 다리 부분은 어제 이미 파괴했다. 남아있는 몸체 부분도 우리 병사들이 열심히 파괴 작업을 벌이고 있어 곧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석불 파괴 준비 소식을 들은 유네스코의 특별 사절단이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하여 파괴 중지를 호소하기도 했지만 허사로 끝나고 말았다.


바미안의 석불이 파괴되기 전의 모습

일본, 스리랑카는 물론 파키스탄, 이란, 이집트 등 이슬람 국가들도 불상 파괴를 중단할 것을 요청했으며,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불상 보존을 위한 유물의 국외 이전을 호소한 바 있었다. 탈레반 정권은 바미안 석불이 우상이며 이슬람 교리에 배치된다고 간주하여 폭파한 것이다. 신은 하나뿐이므로 불상이 숭배될 수 없다는 것이 탈레반의 지도자 무함마드 오마르가 밝힌 바미안 석불의 파괴 이유였다. 이와 함께 바미안 석불 파괴 2주일 전에 수도 카불의 남서쪽에 있는 또 다른 불교 유적지인 가즈니 지역의 유적도 파괴된 것으로 밝혀졌다.(탈레반의 경악할 불상 파괴를 CNN 방송으로 본 세계인들은 그로부터 꼭 6개월 후 알카에다가 저지른 9·11테러 참극을 생방송으로 보게 된다.) 탈레반의 행위는 편협성과 배타성에 가득 찬 종교의 이름으로 타 종교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파괴한 행위이다. 물론 이슬람의 교리는 탈레반의 원리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문제는 탈레반이라는 원리주의자들이 타 종교에 대해 보편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데서 출발했다. 나와 타인의 다름과 다양함을 용인하는 것은 그래서 이 시대에 더욱 생각나게 한다.

 

글·자료사진 전승보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 칼리지) 대학원 큐레이터학과를 졸업했다. <창원 2007아시아미술제>, <2006아시아미술포럼>, <아시아의 지금 - 에피소드 2004>, <열다섯마을 이야기>전 등을 기획했다. 현재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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