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운동의 길을 연 김봉준, 깡순이 이은홍의 국가보안법 구속
이은홍 <사장과 진실> 중에서, 1986년 |
필자가 김혜린의 『북해의 별』에 빠져있었던 게 1983년의 일이다. 19세기 스칸디나비아의 가상 국가 ‘보드니아’에서 일어난 혁명과 그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였다. 만화가 지닌 대중성과 선동성을 실제로 유감없이 보여준 사례다. 당시에 운동권 대학생들의 필수 독서목록에도 오른 유일한 대중 만화책이었다. 하지만 『북해의 별』은 여전히 만화였다.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팔등신 혁명가들은 여전히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귀족들이었고 사랑을 꿈꾸는 청춘들에게는 비극일 뿐이었다. 물론 당시 정황에 그 정도의 은유를 용납할 수 없다면 지나친 일이다. 『북해의 별』 정도에서도 새내기 대학생들은 충분히 시대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인생의 행로에 대하여 고민할 수 있었다. 1960, 70년대 개발독재 당시의 만화는 저급문화의 상징이었다. 지금이야 정규대학에서도 만화학과가 당당히 인기학과가 되었고, 만화유학을 떠나는 학생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지만 1980년대까지도 만화는 천대받고 있었다. 이런 풍토에서 미술대학을 나온 청년작가들이 만화를 그린다는 것은 선뜻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북해의 별』같은 대중만화가 아닌 ‘노동자 만화작가’란 ‘노동자시인’보다 더 상상하기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노동자 만화가의 등장
노동자 만화작가는 1970년대 노동운동의 일선에서 일하던 노조의 실무진들이 처음 찾아 나섰다. 노동운동가들은 ‘노동법’을 만화로 그려 노동자들에게 보급하고 싶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일을 하기에 기성 만화가들은 ‘의식화’되어있지 못했고, 작업에 필요한 예산을 노조에서 만들어 줄 수도 없었다. 마침내 미술대학을 휴학하고 1978년 동일방직 노동조합의 문제를 마당극으로 연출했던 김봉준이 처음으로 그 일에 착수했다. 김봉준은 노조 실무자들과 교류하며 1978년 섬유노조연맹에서 제작한 ?노동조합이란?? 책자에 만화삽화가로 참여하게 된다. 1979년에는 대한전선 노동조합에서 조합원 교육용으로 만든 만화슬라이드 제작을 장진영이 하게 된다. 물론 그 이전에도 언론의 시사만평을 통해 만화가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의식적인 민주화운동으로서는 첫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김봉준의 목판화 <어머니 돌아왔어요>, 1981년 |
1980년 ‘서울의 봄’과 함께 민주노조운동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노동자 교육용 학습만화와 슬라이드 제작의뢰가 곳곳에서 있었다. 김봉준, 장진영, 김주형은 함께 만나 의견을 교환하며 적극적으로 이에 응했다. 청계피복노조, 화학노조연맹 그리고 미조직 노동자들의 크고 작은 노동자 모임에 필요한 학습만화가 제작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연속적으로 발전하지는 못하였다. ‘빛고을의 항거와 죽음’ 이후 민주노조는 남김없이 파괴되고, 노조 실무자들은 삼청교육대로 끌려갔기 때문이다. 김봉준은 기독교농민회의 농민들과 함께 『농사꾼타령』(1981년)을 제작하였고, `농민만화집을 압수당하기도 했다. 탁영호는 가톨릭농민회에서 『학마을 사람들』(1982년)을 만들었으며, 최민화의 만화 『세 오랑캐』 또한 공안당국에 압류당하기도 했다. 특히 김봉준은 기존의 만화형식과는 다른 새로운 만화형식(마당극적 전개의 만화형식)을 실험하며 펜그림이 아닌 붓그림으로 우리민족 고유의 만화틀(이야기 그림틀)을 창조하고자 애쓰면서 그 속에 농민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나갔다.
이은홍의 <노동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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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김봉준의 대학 후배인 <깡순이> 작가 이은홍은 1986년 5월 ‘이적표현물 제작’ 혐의로 구속되어 6개월 동안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 만화를 그려서 국가보안법에 저촉된 최초의 사례이다. 이은홍은 당시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 구로동맹파업에 참가하여 구속된 노동자들을 주축으로 청계피복 노조, ‘노동운동 탄압저지 투쟁위원회’, ‘구로지역 노조민주화 추진위원회’가 결합해 1985년 8월에 결성한 조직)의 <노동자신문>에 만평과 함께 네 칸 만화 <깡순이>를 연재했다. 그의 만화는 마치 김지하의 ‘똥바다’에서의 그것처럼 독재권력과 독점재벌에 대해 매섭고 날카로운 풍자를 가하고 있었다. 바로 이 무렵, 이은홍은 동료인 김주형, 이기연과 함께 서노련의 노동자 교육용 학습만화 『사장과 진실』을 만들게 된다. |
『사장과 진실』의 내용은 노동자의 임금협상 사례를 담고 있었다. 결국 이 책으로 공안당국은 요주의 인물로 꼽고 있었던 만화가 이은홍을 구속하게 된다. 서노련은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보다, 노동자들의 정치적 각성과 투쟁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노동자 대중조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노련은 정치적 노동운동을 시도하였고 이를 위한 노동자대중의 정치적 각성을 위해 노동자신문을 발간하고 만평을 싣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이은홍은 바로 이 서노련의 노동자신문에 <깡순이>와 만평을 연재하고 있었다. 이 신문은 구로공단 주변 노동자 주거지역에 배포되었다.
장진영의 <내 마음의 뱁새, 내 마음의 황새> |
임금인상 투쟁과 노동조합 결성 지원활동 그리고 노동운동 탄압에 항의하고 정치적 민주화를 요구하는 집회와 시위(1986년 3월의 가리봉동 모세미용실 점거 시위, 4월의 전태일기념관 농성, 5월의 구로공단 일대 노동절 시위 등) 등을 전개하는 데 <노동자신문>은 커다란 공헌을 하게 된다. 이런 일로 서노련은 공안당국의 집중적인 감시대상이 되는데, 조직이 결성되자마자 연이어 활동가들이 구속되고 수배되는 등 계속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가 서노련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규정한 공안당국에 의해 관련자들이 대거 구속된 일명 서노련사건이 일어났고, 체포된 사람들은 만화가 이은홍을 비롯 당시 서노련 지도위원이었던 김문수(현 경기도지사)와 심상정(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등 단체의 중심활동가들이었다. 그 외에도 두렁의 성효숙이 『봄을 찾는 사람들』(1985년)을 만화 극화집으로 묶어냈다. 『봄을 찾는 사람들』은 봉제공장 여공들의 삶과 임금인상 투쟁을 다룬 작품인데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며 넓게 보급되자 금서목록에 오르며 판금조치를 당한 최초의 만화책이기도 하다. 한편, 만화운동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간파한 제 5공화국은 반(半)합법적으로 출간되는 만화작품을 압수하고 작가를 구속시키기도 하였다.
원풍모방노조 회보 20호 삽화, 1985년 10월 |
1980년대 민중미술은 사실 만화와 함께 출발했다. 1960년을 전후로 유럽과 미국의 팝아트가 대중상품들의 광고 사진과 만화의 양식을 주로 취했다면, 우리 민중미술 작품들도 이런 만화 형식을 차용한 경우가 많았다. <20대 힘> 전에 문제가 되었던 손기환의 <타, 타, 타>, 오윤의 <지옥도>, 강요배와 민정기의 그림들 그리고 김봉준을 비롯한 ‘두렁’의 그림들은 사실 만화의 형식에서 그 힘을 입은바가 크다. 그것은 풍자와 해학을 통해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좋은 양식이기도 했지만, 민중미술이 새로운 미술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다는 입증이기도 하다. 특히 미술전시회가 직접 탄압받았던 <20대의 힘> 전에 발표된 김우선, 손기환, 장진영 등의 작품들은 만화를 예술의 한 범주로 끌어들이는 하나의 사건이기도 했다.
글·자료사진 전승보 1963년 부산에서 태어나 런던대학교(골드스미스) 대학원 큐레이터학과를 졸업했다. <아시아의 지금-에피소드 전>, <열다섯마을 이야기 전>, <또 다른 풍경 전>, <2006 아시아미술포럼> 등을 기획했고 현재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대학에서 박물관학과 전시기획론 등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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