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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칼럼/인터뷰/문화초대석

스크린을 향해 몸을 날리다 무술감독 정두홍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9. 1. 16. 13:39
 

태권소년, 스턴트맨의
길에 들어서다.

 

자동차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오토바이. 허공으로 떠 오른 오토바이는 지하주차장 천정에 그대로 쳐 박힌다. “이젠 끝이다 쇠고랑 차겠구나” 하고 머리를 쥐어뜯는 <비트>의 제작자 차승재. 하지만 죽은 줄 알았던 오토바이를 몰던 사내는 며칠 후 다시 쌩쌩한 얼굴로 현장에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정두홍. <비트>, <쉬리>, <유령>, <무사>, <공공의 적>,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주먹이 운다>, <짝패>의 화려한 액션 시퀀스를 연출한 무술감독 정두홍이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영화에서 스턴트맨은 ‘으악새 또는 몽둥이를 든 백정’에 불과했다.
“누가 스턴트맨한테 보험을 가입시켜줘?” 오랜만에 만난 국가대표 무술감독 정두홍(40)의 첫마디다. 스크린에서 불구덩이에 몸을 던지거나 툭하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스턴트맨들의 실제 삶은 영화만큼 위험하고 힘겹다. 촬영현장에 스텝들의 안전과 생명보장을 위한 보험이 도입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나마 스턴트맨들은 직업란에 자기 직업을 곧이곧대로 쓰면 보험가입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일보다 어려워진다. 실제로 정두홍 감독도 무명시절 보조연기자로 생명보험을 가입했다. 후일 작품과 방송을 통해 유명해진 그를 보험사에서 호출했다. 정두홍은 사망 후 1,000만 원만 지급되는 보험으로 계약서를 고쳐 써야 했다.
이나영과 양동근이 출연한 <네 멋대로 해라>의 개성 넘치는 연기와 최근 개봉한 <짝패>의 화려한 액션 연기로 대중에게 얼굴이 알려진 무술감독 정두홍의 꿈은 원래는 태권소년이었다. 충남 부여군 임천면 칠산리에서 태어난 수줍은 소년 정두홍의 인생이 바뀐 건 고등학교 시절 학교 근처에 문을 연 태권도장 때문이다. 현재는 세계격투기연맹 사무총장이 된 이각수 관장은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형편에도 매일 도장을 찾아와 땀을 흘리는 정두홍의 노력이 가상해 공짜로 태권도를 가르친다. 정두홍은 이후 대학시절에는 태권도 시범단으로 활약했고, 군대 무술교관, 국회의원 수행요원으로 일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 수행요원 선배가 스턴트맨 일을 권한다. 어린 시절부터 1970년대 액션스타 이대근과 백일섭의 영화에 매료됐던 정두홍의 인생은 그 순간, 다시 한번 요동친다.

냉정한 현실에 몸을 던지며
액션의 시스템을 꿈꾸다

 

하지만 현실은 냉엄했다. 1990년대 스턴트맨은 정두홍의 표현대로 “엑스트라와 함께 영화현장에서 가장 사람 취급 못 받는 소외된 사람들”이었다. 현장에서 가방과 장비를 옮기며 한달을 보낸 정두홍은 현장 일을 그만두고 홀로 체력단련에 돌입한다. 무도가 최배달처럼 혼자서 몸을 갈고닦은 지 3개월. 정두홍에게 기적처럼 기회가 찾아온다. <장군의 아들>에서 김두한에 맞서는 김동회의 무술 대역. 피눈물로 다져진 정두홍의 몸놀림은 영화관계자들의 기억에 깊이 새겨진다. 이후 대역 연기자와 무술지도로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한 정두홍은 <장군의 아들> 시절 머리를 깎는 문제로 강하게 부딪치다가 친해진 김동빈 감독의 <테러리스트>로 본격적인 무술감독의 입지를 확보한다. 최민수의 액션 대역도 맡은 정두홍은 당시에는 보기 힘든 롱 테이크에 담긴 긴 호흡의 액션을 구사한다. 보통 액션영화의 3~4배 길이의 액션 시퀀스를 구성하는 일은 합을 맞추기도 힘들고 촬영하기는 더 힘들다.

 

 

<런 어웨이> 현장에서 쇄골이 부러진 채로 자동차와 부딪치는 장면을 다섯 번이나 재현하는 정두홍을 보고 김성수 감독은 “미친 놈 아냐, 미친 놈”이라며 경악했다. 하지만 정두홍의 새로운 무술에 대한 열정은 김성수 감독과 만나며 꽃을 피운다. 고속촬영과 넓은 화면 그리고 스텝 프린팅에서 이뤄지는 액션 <비트>, 권투액션을 보여준 <태양은 없다>로 무술감독 정두홍은 확고한 자신의 액션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김성수 감독과 정두홍 무술감독의 필생의 역작 <무사>가 탄생한다.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무사>는 한국 무협영화의 획을 긋는 다양한 액션 시퀀스가 담겨있다. 김성수 감독은 “이젠 액션장면은 믿고 맡길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무사> 때는 아예 카메라 한 대를 주고 알아서 찍으라고 했다.”고 술회했다.
정두홍은 화면 속의 보기 좋은 액션을 만드는데만 집중하지 않았다. 김성수 감독과 대표작들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는 동안 그는 1988년 자신이 홀로 운동하던 보라매공원에 서울액션스쿨을 개설한다. 서울액션스쿨은 한국 최초의 전문 스턴트맨, 무술감독 양성학교다. “열댓 명쯤 무술감독이 배출됐다. 독립해서 나간 친구들도 두어 명 있다.”고 정두홍은 말한다.

 

  서울액션스쿨을 통해 후배 양성과 액션의 시스템을 구축하려 했던 정두홍이 1999년 <쉬리>를 필두로 모습을 드러낸 블록버스터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의 액션을 감당한 일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공공의 적>, <실미도>, <한반도>의 액션을 그에게 맡긴 강우석 감독은 “정 감독은 무술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무술감독이다. 드라마, 카메라, 연기 모두를 알고 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태권도 유단자였던 <테러리스트>, <나에게 오라>의 김동빈 감독은 “액션이 한국영화의 흥행 장르로 자리매김한 배경에는 정 감독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무술감독이 모여 만든 액션영화 <짝패>
그리고 <컴백>을 준비하며

 

지난해에 개봉했고, 베니스영화제에도 진출한 기묘한 액션영화 <짝패>는 정두홍 무술감독에게 각별한 영화다. 10년 전 인터뷰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스턴트맨들을 다 모아, 몇 년 뒤 직접 액션영화 한편을 만들겠다.”던 정두홍의 꿈을 실현시킨 영화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피도 눈물도 없이>, <아라한 장풍대작전>, <주먹이 운다>를 함께 했던 지우 류승완 감독이 그와 함께 출연했다. 서울액션스쿨이 처음으로 공동 제작한 영화이기도 하다. <짝패>는 아마 한국영화사상 가장 많은 무술감독이 출연한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베니스영화제에 참석했던 정두홍 무술감독은 <짝패>를 관람했던 서양인 노부부와 우연히 극장 밖에서 마주쳤다. 그들은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너희가 최고”라고 말했다. 정두홍이 이유를 묻자, 그들은 “홍콩이나 헐리우드도 요즘은 가짜 액션에 의존하는데 너희는 진짜로 치고받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오랫동안 한국액션을 세계에 보여주길 바랐던 정두홍에게 그보다 기꺼운 찬사는 없었다.
당분간 ‘인터뷰는 사절’이라는 정두홍에게 2007년은 다시 중요한 분기점이 될 듯하다. 헐리우드 진출작이자 연출 데뷔작 <컴백>이 준비되고 있기 때문. 그가 <컴백>을 연출하는 건 감독으로서의 욕심이 아니다. “무술감독을 더욱 잘하기 위해 연출을 하는 것이다. 연출을 해봐야 현재와는 다른 무술감독이 되는 것이다. 본업은 영원히 무술감독”이라고 정두홍은 단언한다. 류승완 감독은 “정두홍 액션은 화려한 동작보다는 상황에 맞아떨어지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굉장히 충실하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나는 그가 정소동이나 원화평이 그랬듯이 자신의 작품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본격적으로 정두홍이라는 이름을 걸고 영화를 만들면 뭔가 달라도 다르지 않겠나”라고 말한 바 있다. 인터뷰 당일에도 <주몽>의 후속드라마가 될 가능성이 높은 본격액션 드라마 의 무술연출을 위해 홍콩을 다녀왔고, 황야에서 벌어지는 활극이 될 차기작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디지털 콘티를 가슴에 품은 정두홍의 얼굴에는 이소룡과 성룡에게 홀린 듯한 소년의 표정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12개의 볼트가 꿈틀거려도
정두홍은 멈추지 않는다.

 

1990년대 초반부터 50편에 가까운 액션영화를 뒷받침했고, 매번 몸을 날렸던 정두홍 무술감독의 육체에는 12개의 볼트가 박혀 있다. 뼈가 부러져도 촬영에 임하며 신음하지 않던 그의 오기와 투혼이 남긴 상흔이다. 해외를 나갈 때마다 공항검색대에서 소동을 치뤄야 하고, 아침에 몸을 일으킬 때면 접골원에 들른 환자처럼 뼈를 맞춰야하는 고난이 계속된다. 좌골신경통을 앓는 정두홍은 인터뷰 당일에도 한쪽 다리가 끌릴 만큼 지쳐보였다. 얼마 전에도 교통사고를 겪은 후 매주 모이는 축구모임에 나타난 정두홍을 보고 후배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사건을 언급하자 정두홍 무술감독은 “타박상이니까 운동으로 풀어야지.”라며 해맑게 웃는다.
<피도 눈물도 없이>의 DVD를 보면 종반부 자동차 추격 장면에서 그가 몰던 자동차가 구조물에 충돌하고 날아가는 장면을 담은 메이킹 필름이 있다. 제대로 된 안전장치도 없이 전속력으로 달리던 자동차는 휭 하고 전복된다. 류승완 감독을 비롯해 사색이 된 스텝들은 자동차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간다. 액션영화의 한 장면처럼 자동차 문이 천천히 열린다. 먼지를 툭툭 털며 내려서는 정두홍 무술감독이 무뚝뚝하게 말한다. “감독님, 다시 한번 갈까요?” 그 순간처럼 액션영화를 향한 정두홍의 날개 짓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김수경 씨네21 기자
사진 이원우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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