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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가 빚어 낸 착시현상 신학철 화백의 <모내기> 본문

인물/칼럼/인터뷰/문화초대석

한국현대사가 빚어 낸 착시현상 신학철 화백의 <모내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9. 1. 16. 11:27
 
 

우리 눈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착각을 착시현상이라고 한다. 누구나 체험할 수 있으며 그 원인과 조건을 알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신학철 화백의 <모내기> 가 그렇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시각적 착각 그 자체라기보다는 우리 현대사가 빚어낸 질곡의 기억이 만들어 낸 것이다. 질곡의 기억이 만들어 낸 착시 현상. 우리는 <모내기>를 통해 그런 현상에 빠져 들었다.
신 화백의 <모내기>는 1989년 이후 거듭된 재판 과정의 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사건을 잠시 살펴보면, 이 그림은 1987년에 제작되어 1989년 ‘통일염원 전’에 출품되었다가 공안당국에 의해 작가의 체포와 작품 압수로 사건화 되었다. 1, 2심에서의 무죄판결은 최종적으로 대법원의 유죄판결로 작가에 대한 선고유예가 내려졌다. 이후 2004년 UN인권위원회의 작품반환 및 손해보상 권고사항은,


어떠한 법적 이유도 없이 작품을 보는 ‘가치판단만이 다를 뿐’이라는 법무부의 입장으로 재심 사유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법률검토 결과가 나왔다. 결국 <모내기>는 이적표현물에 해당되게 되었다. 그 후 이 사건은 사법부의 판결을 둘러싼 법적 논쟁에 그치지 않고 ‘표현의 자유와 검열’ 문제라는, 민주주의 사회로 가기 위한 피해갈 수 없는 시험 무대의 리트머스 종이가 되어 버렸다.

무엇을 보는가?

 

신 화백을 인터뷰하던 중 필자는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검찰 쪽 증인으로 채택되었던 이창룡(가명)은 체포된 남파 간첩인데(1980년 5·18민중항쟁 당시 그는 목포로 내려갔다가 광주에 들어가지 못해 서울역에 다시 올라와 서성거리다 체포되었다고 한다.) 신 화백의 그림을 법정에서 증언할 때 처음에는 “자기가 본 그림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는 사실이다. 검찰에서 볼 때는 분명 그림에 한반도 지도가 그려져 있었는데 지금 여기 자료사진에는 그것이 빠졌다고 주장했다. 재판은 중단되었다. 다음 재판정에서 검찰이 보관하던 원작이 증거물로 나왔다. 물론 원작에도 지도는 그려져 있지 않았다. 증인이 보았다는 지도는 결국 착각이었다.
아마 이런 경험은 모든 사람들에게 종종 일어날 것이다. 보지 않았던 것을 보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각적 착시현상이 아니라 아마 인지적 착시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눈에 보이는 것을 착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고 생각한 것을 보았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신 화백이 넋두리처럼 말했지만 민주화운동 출신 인사들도 <모내기> 그림을 종종 그렇게 보더라는 말에서 확인된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더니 꼭 그런 셈이다. 하지만 아는 것만큼 보일 수도 있지만 상상력으로 먹고 사는 미술에선 아는 것만큼 보이는 것만은 아니다. 때때로 예술은 말하지 않는 것에서 들을 수 있고, 보이지 않는 것에서 느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귀를 통해 본다.”는 말이 있다. 일반인들은 실제로 귀(정보)를 통해 그림을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눈을 통해 들어야만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물을 보고 느낄 수는 없을까? 하지만 우리들의 일상생활은 어떤 역사적 사실들이 뒤죽박죽 엉클어진 채로 범벅이 된 상태이다. 우리 머릿속은 단지 이것들을 정리하여 인지하고 있을 뿐이다. 마치 현실도 그런 것 처럼.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전까지 통일을 말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 사람들에게 남쪽이든 북쪽이든 일방적인 한 쪽의 승리만을 의미했다. 많은 사람들은 통일에 관해 생각할 때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어쩌면 여전히 그럴 것이다. 그런 지점에서 <모내기>를 본다면 이것은 ‘이적표현물’이며 북한의 대남통일론을 선전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만약 북한에서 이 그림을 본다면 한국의 검찰 측 관점을 부정할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아는 것만큼만 보일 뿐이다.

아는 만큼만 보는 사람들

 

‘부모와 자식의 얼굴 중 어느 부분이 닮아 보이는 것은 실제로 닮은 것이 아니라 유전적으로 강한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자가 판단에서 나온 착시현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주장이 있다. 제 3자가 부모·자식의 특정 얼굴 부분이 닮았다고 하는 것은 의식적인 거짓말은 아니지만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정보를 통해 새롭게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사물을 보고 인지하는’ 영역은 서로 다르다고 한다. 본 것을 뇌에서 인지하는 것은 보는 사람의 성격과 때와 장소, 상황과 분위기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즉 인지작용 과정에서 자신이 본 것을 무시할지 받아들일지를 결정한다. 결국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가 본 것을 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지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무의식 세계 속에서 받아들이는 현상을 통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그것을 잘 아는 사람에게도 예외 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증명된 것만을 믿고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매일 같이 알지 못하는 것은 그리고 증명되지 않은 일들은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셈이다.
한국현대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있는 만큼 <모내기>를 읽게 된다. 백두산이 보이고 초가집은 평양의 만경대로 읽히게 되고, 서래질하는 농부는 자본주의의 병폐를 쓸어내는, 즉 ‘이적표현물’로만 보이게 된다. 여기서 작가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한국현대사의 질곡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한국현대사의 착시현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가치판단’이 만든 이데올로기의 착시현상이 끝나지 않는 한, 우리는 그림을 통해 새로운 것을 느끼지 못하는 불구의 상태가 지속될 것이다.


눈을 통해 들어보기

 

200여 년 전, 영국의 대표적 건축가였던 존 소운 경은 자신의 개인박물관을 국가에 기증하면서 뒤죽박죽으로 진열된 전시장을 영원히 손대지 말라고 유언했다. 근대시기의 합리적 시스템으로 구성되는 대영박물관에 반대했던 그는 유물이 뒤범벅된 공간, 그 자체에서 사람들이 느끼기를 원했었다. 그는 지식 체계로서의 유물 진열이 아니라 유물 자체의 소리를 들어보자고 했다. 그리고 20세기의 마지막 날, 런던 테이트미술관의 전시 <아브라카다브라(수리수리마수리)> 전은 전시실에 출품된 작품들이 어떤 칸막이로도 구분되지 않고, 직접조명도 없는 상태에서 열리고 있었다. 어떤 것도 구획하지 않았고 집중시키지도 않았다. 그곳은 앞과 뒤가 없었고 정보의 순서체계가 없는 곳이었다. 작품들끼리 서로 대화하는 공간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그 공간에서 작품들을 읽지 않고 무엇을 느낄 수는 없을까?
“사람들이 예술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생각을 정당화시켜주는 느낌일 것이다(배리 슈와브스키, Barry Schwabsky)”는 말은 마지막으로 신 화백의 말을 생각나게 한다.
“<모내기>는 사람들이 작품을 보고 ‘통일은 좋은 것이다’라는 느낌을 말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나도 미처 모르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글·자료사진 전승보
1963년 부산에서 태어나 런던대학교(골드스미스) 대학원 큐레이터학과를 졸업했다. <아시아의 지금-에피소드 전>, <열다섯마을 이야기 전>, <또 다른 풍경 전>, <2006 아시아미술포럼> 등을 기획했고 현재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대학에서 박물관학과 전시기획론 등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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