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쓰는 민주주의
지적인 배우, 딴따라라서 행복한 오지혜 본문
아줌마의 수다는 거침이 없었다. “참, 제발 ‘우리가’라고 하지 말아 줬으면 해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최한 행사에서 몇 번 사회를 보았다는 오지혜 씨는 “사회를 볼 때, 항상 ‘우리가 해냈다’라고 읽으면서 마음이 쓰였다.”고 말했다. 자신은 ‘우리가’라는 주어의 주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난 아니에요. 연애만 하던 여대생이었어요. 관심은 있었지만 나서지는 않았어요. 학교문제 말고는 시국집회에 나간 적도 없었어요. 그런데 자꾸 ‘우리가’라고 하니까 어쩐지 불편해요.” 그리고 덧붙인다. “물론 여러분께 너무나 감사해요. 여러분 덕분에 저도 불심검문 당하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고, 라디오에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 다하는 세상이 됐죠.” 배우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 뿐 배우 오지혜는 자신을 ‘운동가’로 보는 시선에 조금은 지쳤다. 그는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커밍아웃했고, 파병반대 1인시위에 나섰으며, 시민사회 단체가 주최하는 집회의 사회를 맡았다. 그러면서 이중의 갑갑함을 느꼈다고 한다. 사회단체에 가면 너무나 엄숙한 분위기에 불편했고, 어떤 사람들로부터는 “정치하려고 그러느냐?”는 불편한 질문도 받았다. 서서히 지쳐갔고, 이제는 살살해야지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솔직히 평생을 크리에이티브한 분위기에서 살다가 갑자기 무언가를 주장하는 일에 연루됐다.”며 아지(agitation)가 끝나면 솔직히 허무함도 느낀다고 말했다.
“참, 내 팔이 짧아서……. 같은 말 쓰는 사람들한테 어쩔 수 없이 정이 가요.” 그는 평양의 ‘빵 공장’ 홍보대사다. 남쪽의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와 북쪽의 민족화해협의회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대동강 어린이 빵 공장’. 지난해 5월에는 평양으로 견학도 다녀왔다. 그리고 북한의 핵실험 문제가 터졌다. 그는 “나도 ‘우리는 하나’라는 노래에, 단군의 자손이라는 말에 불편함을 느끼지만, 북한 어린이라고 해서 돕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잖아요.”라고 답답해했다. 인도 어린이든, 남한 아이들이든, 북한 소년소녀들이든, 굶주리는 아이들에 대한 연민은 하나라는 것이다. 아무리 사람들이 오해를 해도, 삐뚤어진 시선으로 보아도, 세상의 아픔을 외면하지 못하는 것이 아줌마의 마음이다. “핵폭탄 보다 무서운 게 터져도, 내일 당장 전쟁이 나도, 애들은 먹여 살려야죠.” 핵폭탄은 핵폭탄이고, 빵은 빵이다, 그의 신념이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묻는다. “언제부터 사회에 관심을 가졌어요?” 질문에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너 같은 ‘딴따라’가 예전에는 사회에 관심이나 있었겠느냐”는. 그는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내가 변한 게 아니라 비로소 마이크를 얻은 것뿐이죠.”라고 답했다. “만약 예전의 제가, 스물일곱의 무명 배우가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누가 귀를 기울이겠어요. .
‘딴따라’는 문화지식인이다
마침 올해, 1987년 6월항쟁 20주년을 맞는다. 그의 학번은 87. 스스로 연애만 생각했던 여대생이라고 말하지만, 대학시절부터 사회에 무관심했을 리 없다. 그의 주류사회에 대한 삐딱한 시선은 스무 살 무렵부터 시작됐다. “제 첫사랑이 운동권 선배였어요.”라며 웃었다. 당시를 재현하면, 바야흐로 때는 1980년대 후반 여대생 오지혜는 짝사랑하던 선배와 사랑이 마침내 이루어져 떨리는 가슴으로 택시에 올랐다. 오지혜의 떨리는 가슴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배가 그를 데리고 간 곳은 다름 아닌 명동성당이었다. 거기서 그는 광주항쟁 비디오를 보았다. 당연히 충격을 받았고, ‘언제나 올곧은 지식인이라고 생각했던 아버지는, 대학생이었던 사촌오빠들은 도대체 그때 뭘 했지’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반항하는 딸이 됐다.
배우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요즘엔 자꾸만 우정출연 섭외가 들어와 속상하다. 그는 “우정 안 쌓아도 되니까 우정출연 그만 할래요.”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렇게 탄탄한 배우의 내공을 썩히는 것은 사회적 손실이 아닐까.
글 신윤동욱 한겨레21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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