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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쓰는 민주주의
초가을 비 굿은 날의 연속이라……. 토요일 낮 경기도 의정부 예술의 전당 광장에는 오페라 공연과 브레히트의 연극 공연, 모차르트를 위한 클래식 공연 등의 커다란 대형현수막 속에 요란하지 않은 작은 현수막 하나가 눈에 띈다.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을 위한, 그것도 의정부라는 지역에서 소수자들을 위한 문화제를 한다고 하니 선뜻 그 내용에 심적 동감이 갔다. 악기를 짊어 메고 가는 장애인의 모습도 보이고 민속의상을 입은 외국인 여성노동자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1년에 한 번, 이제 겨우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치루는 문화제인데 속절없게도 비가 내린다. 스스로 소수자가 되어 “비가 계속 와도 모든 행사는 실내에서 예정대로 진행할 겁니다. 문화제에 참석하는 이분들은 오늘을 위해 1년을 기다린 분들이거든요.” 행사를..
일상적 공간을 예술적 공간으로 공공미술프리즘 기념사업회 사무실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시립미술관에서는 한 외국 유명 작가의 전시가 한창이다. 방학을 맞이해 아이들에게 좋은 전시를 보여주려는 부모와 학생들로 하루 종일 북새통이다. 요새는 방학숙제 중 하나로 전시회 입장권 한 장 쯤은 가져가야 한다니 더더욱 난리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도 수많은 사람들 틈에 치어서 여유 있게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고 제대로 된 작품 설명을 듣는 일 조차 힘들다. 이 모습들을 보면서 미술을 생활 속에서 보다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마침 사무실 선배로부터 공공미술의 작업 중 하나로 족구장을 만드는 친구들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재밌겠군!’이라며 ..
공부방에서 교육을 품다 쌀보리 공부방 지루한 장맛비가 도대체 앞으로의 날씨를 가늠하지 못하게 한다. 횡성 가는 중앙고속도로는 2킬로미터에 한 번씩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비가 내린다. 그리고는 또 젖은 해가 뜬다. 취재 일정에 맞춰 아이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사진을 찍을 요량으로 인터넷 기상청 홈페이지를 수시로 드나들며 얻어낸 그나마 나은 날인데도 하늘은 도움을 주지 않을 모양이다. 강원도 횡성, ‘쌀보리 공부방’에는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아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후텁지근한 날씨에 땀 흘리며 벌겋게 달아 오른 채로 공부방에 들어온 아이들은 선생님들을 보자 넙죽 인사를 한다. 들어오자마자 주방을 기웃거리는 아이들의 얼굴은 마냥 뭔가를 기다리는 눈치다. “선생님, 오늘 간식 뭐예요?” “오늘은 수박하고 ..
건강한 농민을 위한 건강한 약사들 이야기 약을 사갈 시간이 훨씬 지났건만 노인은 여직 젊은 약사와 이야기 중이다. 무슨 이야기를 그리 오래할까 자세히 들어보니 대부분 한평생 땅 파다 망가진 자신의 쇠한 몸 이야기뿐이다. 간혹 동네 어른 소식을 묻는 약사의 말에 노인은 그이도 어느 곳이 자신과 똑같이 아프다며 반색을 하기도 하고, 그제는 허리가 아팠고 어제는 몸 전체 뼈마디가 욱신거리고 오늘 새벽부터는 또 다른 곳이 아프다는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또 그 말에 일일이 답해주는 약사의 모습이 도시 약국에서는 볼 수 없는 드문 풍경이다. 그리고는 못내 다 하지 못한 듯 아쉬운 표정으로 버스를 타러가야 한다며 노인은 한참 만에 짐 보따리를 들고 일어선다. 오늘은 홍천읍내 오일장이다. 농민을 위해 만든 농민약국 “..
이주 노동자의 아픔을 치유하는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중국동포 배충용(당시 26세) 씨는 한국에 온지 3개월 만에 폐렴으로 사망했다. 불법체류자라 건강보험카드가 없고 진료비가 너무 비싸 병원에 갈 엄두를 못 내고 감기를 진통제 몇 알로 버티다가 패혈증으로 발전한 폐렴으로 끝내 이 세상을 떠났다. 몽고인 바트센트(당시 35세) 씨는 갑작스런 복통에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돈도 없고 의지할 데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아 진통제로 버티다 주변의 신고로 병원에 실려 갔다. 진찰한 결과 급성 맹장이 터져 복막염이 되었고 수술을 했음에도 결국 패혈증으로 숨졌다. 스리링카인 서짓 쿠마라(당시 27세) 씨는 작업 중 발등에 부상을 당했는데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방치했다가 결국 무릎 밑을 절단하였다.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
지역문화운동을 아이들과 함께 그이가 걷는 길, 탈춤 봄 날씨가 요란하다. 바람 불다 비 내리고 다시 황사바람이 일고……. 계절상으로 보면 아이들이 야외에서 뛰어 놀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지만 이런 변덕스런 날씨엔 노는 거 좋아하는 아이들도 난감할 것이다. 경기도 과천시 문원동 마을에는 바깥의 날씨와 상관없이 아이들의 춤사위가 한창이다. “낙양~동천 이화~정” 덩더쿵 쿵덕! 장구를 치며 실내의 훈기로 얼굴이 상기된 선생님의 목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아이들의 입 모양이 곧 따라붙는다. “낙양~동천 이화~정” 덩더쿵 쿵덕! 목소리를 너무 크게 내서 그런가 가까이서 지켜보던 아이 하나는 얼굴이 벌게진 채 목에 잔뜩 핏대가 섰다. 그래도 저희들끼리 경쟁이라도 하듯 추임새를 넣는 아이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요즘 ..
깊숙한 인천지하철 1호선 ‘예술회관’역을 빠져나오자, 거리의 모든 것들이 봄바람에 나부낀다. 바다가 가까워서 그런지 유난히 바람이 심하다. 별로 낯설지 않은 골목길을 짚어 옥탑에 있는 작은 사무실로 들어서자 귓속에 울려대던 바람소리가 잦아든다. 낮은 천장이 다정하게 느껴진다. ‘월미산대책위’를 꾸리며 활동 책상 위에는 눈이 시리도록 파란 바탕에 ‘역사와 문화와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인천의 도시공간을 위하여’라는 하얀색 글자가 도드라져 보이는 인천도시환경연대회의의 회원가입 신청서가 놓여있다. 회원가입 신청서가 너무 예뻐서 회원가입 안 하고는 못 배기겠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만난 집행위원장 이희환(41) 씨는 동그란 뿔테 안경을 끼고 있었다. 생후 50일만에 인천으로 올라와 송림동에서 자랐다는 그는 지금은 ..
여성 가장들의 홀로서기 아낙과 사람들 “열 잔 먹으면 한잔 무료야” “푸~~우 쉬이~” 능숙하게 테이크 아웃 커피 카푸치노를 만들어내는 ‘아낙과 사람들’의 최혜린(48) 상임이사는 인터뷰 도중에도 간간히 학생 손님들을 맞아 분주하게 움직인다. “하루에 벌이가 얼마나 되요?” “6~7만원 정도, 요즘엔 방학이라 좀 덜하지만 여기 ‘하자센터’ 개학하면 손님이 더 많지. 그래도 한달에 100만원 정도는 수입이 되니까 괜찮은 거죠.” 시립청소년 직업학교 ‘하자센터’ 건물 1층에는 카페 ‘그래서’가 있다. 카페라고 해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세련된 인테리어로 꾸며놓은 카페가 아니다. 한쪽 편에 나무를 둘러 주방을 꾸려놓고 그 안에 커피를 제조할 수 있는 기계만 있을 뿐이다. 의자라고 해야 ‘하자센터’ 학생들이 편하..
볼륨을 높여라 이주노동자방송국 어둠이 빨리 내리는 겨울저녁, 일민미술관 5층 영상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이주노동자방송국’ 박경주 대표는 짧은 커트머리에 아담한 체구를 가진 이였다. 그곳에는 박경주 대표 말고도 방송국 친구들 여러 명이 컴퓨터 앞에서 사진 파일을 올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난 10월부터 영상미디어센터의 후원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이주노동자 시민기자 양성을 위한 미디어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친구들이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친구들을 기다리며 그네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마치 친자매들처럼 다정하고도 정답다. 기다리는 친구들은 금방 도착하질 않는다. 다국어 라디오방송 계획하고 있어요 외국인상담소에서 태국어 통역을 하고 있는 쥴리아는 한국에 온 지 12년이나 됐다. ‘이주노동자방송국’에서 ..
살아있는 글쓰기 삶이 보이는 창 르포 문학모임 ‘구로’라는 지명은 서울의 한 자치구다. 그럼에도 ‘구로구’라는 지명보다는 ‘구로공단’이란 명칭으로 더 빨리 인식하는 것은 지난 85년 구로동맹파업과 87년 노동자대투쟁 등 활발한 노동활동의 근거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여전히 저소득층이 많이 살고 ‘코리안 드림’을 안고 온 이주노동자들의 생활 터전이 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지역의 역사와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진보문예지 『삶이 보이는 창』(삶창)이 구로에 있다는 것이 그다지 낫설지가 않다. 삶창에서 진행하는 르포 문학모임에 오늘 강사는 소설가 이인휘 씨다. 대 여섯 평 됨직한 작은 강의실에 앳된 대학생부터 다양한 연령대의 얼굴들이 속속 자리를 차지한다. 저녁 7시 40분,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