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함께쓰는 민주주의

여성 가장들의 홀로서기 아낙과 사람들 본문

희망이야기/풀뿌리 운동 현장을 가다

여성 가장들의 홀로서기 아낙과 사람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8. 12. 20. 02:40

여성 가장들의 홀로서기 아낙과 사람들

“열 잔 먹으면 한잔 무료야”
“푸~~우 쉬이~”
능숙하게 테이크 아웃 커피 카푸치노를 만들어내는 ‘아낙과 사람들’의 최혜린(48) 상임이사는 인터뷰 도중에도 간간히 학생 손님들을 맞아 분주하게 움직인다.
“하루에 벌이가 얼마나 되요?”


“6~7만원 정도, 요즘엔 방학이라 좀 덜하지만 여기 ‘하자센터’ 개학하면 손님이 더 많지. 그래도 한달에 100만원 정도는 수입이 되니까 괜찮은 거죠.”


시립청소년 직업학교 ‘하자센터’ 건물 1층에는 카페 ‘그래서’가 있다. 카페라고 해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세련된 인테리어로 꾸며놓은 카페가 아니다. 한쪽 편에 나무를 둘러 주방을 꾸려놓고 그 안에 커피를 제조할 수 있는 기계만 있을 뿐이다.

 

의자라고 해야 ‘하자센터’ 학생들이 편하게 앉을 만한 나무책상과 의자 두 개가 전부다. 이 곳 카페 ‘그래서’를 운영하기 시작한지는 1년이 좀 안된다. ‘하자센터’에서 여성 가장들의 자활을 돕는 비영리 단체인 ‘아낙과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임대를 해 준 것이다.

 ‘프리워’에서 출발한 여성 가장들


‘아낙과 사람들’은 지난 1998년 ‘프리워’라는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 모임 안에 기혼 여성들의 모임을 따로 만들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홀로 서야하는 여성 가장 실직자들 중에는 이혼을 했거나 사별을 했거나 남편의 사고 등으로 가정을 책임져야하는 절박한 상황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동병상련의 아픈 마음을 서로 이해하며 함께 경제적 자립을 위한 활동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여성 가장이란 것은 예고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직장 생활을 하던 상황도 아닌 상태에서 닥친 경제적 상황에서는 누구나 막막할 뿐이었다. 우선 갖가지 사연(?) 많은 여성 가장들을 모아 놓고 실태를 파악했다.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기 위한 것이다. 각자의 능력을 찾아내다보니 어떤 이는 요리를 잘하는 이가 있었고 어떤 이는 집에 과자를 만들 수 있는 요리기계가 있었다. 회원들은 그때부터 과자를 구워 파는 일을 시작했다.


“그저 처지가 비슷한 이들끼리 만나 먹고 살 방법을 고민하다보니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거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우리는 경제적 이득도 중요하지만 내 아이들과 가족이 먹는다는 심정으로 과자를 만들었어요. 재료도 순수 100% 우리밀로 여타의 재료들을 섞지 않고 만들다보니 여기저기서 주문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아낙과 사람들’은 우리밀로 과자를 만들어 판매를 해서 경제적 자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기여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독거노인과 노숙자, 결식아동들에게 우리밀 과자를 지원해 주는 일이었다. 그들이 처음 과자를 만들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이뤄지고 있는 사업이다.

 

녹녹치 않은 여성 가장들의 현실


『희망세상』 인터뷰를 위해 충남 천안에서 왔다는 안덕자(48) 씨와 강원도 원주에서 온 고길순(52) 씨가 오랜만에 해후를 해서 그런지 그간의 소소한 사연으로 대화가 끊이질 않는다.




 

“한곳에 정착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질 않으니까 정기적인 모임을 하는 일이 쉽지 않아요. 그렇지만 몸은 비록 떨어져 있어도 연결고리는 늘 이곳 ‘아낙과 사람들’에 있는 거죠. ‘아낙과 사람들’을 거쳐 간 사람들이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흩어져 있지만 한곳에 뭉칠 수 있는 구심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그 일을 최혜린 씨가 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또 새로운 일을 얻어 자리 잡고 있으니 든든하죠.” 고길순 씨는 현재 원주 의료생활협동조합 재가복지사업단에서 일주일에 두 번 씩 독거노인을 만나러 다니는 일을 하고 있다.

노동부에서 제공하는 사업에 그이가 참여를 하게 된 것이다. 비록 월수입은 많지 않지만 대학생인 아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안심이 된다고 했다. 
“저 같은 경우는 사별하고 살다가 ‘아낙과 사람들’ 회원으로 활동을 하면서 사회생활에 더 적극적으로 변했죠. 사실 여러 가지 상황이 있었지만 경제적으로 내가 돈을 벌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처음에는 너무 막막하고 힘들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고 우울증 같은 게 생기기도 했고 그런데 ‘아낙과 사람들’ 모임에 참여하고 최혜린 씨도 만나고 교육도 받고 하면서 어떤 ‘의지’ 같은 게 생겼어요.” 

‘아낙과 사람들’은 이렇듯 자활의 의지를 갖고 있는 여성 가장들을 위해 우리밀 과자를 만들어 판매를 하거나 시민단체의 행사 등에 과자를 팔아 재원을 마련하기도 한다. 특히 여성민우회를 비롯한 여성 단체들은 ‘아낙과 사람들’의 든든한 후원이 되기도 했다. 때로는 자신들이 가장 필요한 경제적 지원을 사회에 돌린다는 일이 쉽지마는 않았을 텐데 이들은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


최혜린 상임이사는 이렇듯 여러 상황 때문에 회원들의 들고 나는 일이 잦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고 말해준다. 많을 때는 몇 십 명도 나와서 일을 하고 또 어떨 때는 서너 명 남짓 일을 할 정도로 편차가 있다. 이렇듯 자리부침이 크다보니 과자를 굽는 일은 열흘에 하루만 한다. 그래도 우리밀로 만든 과자를 판매하고 싶어 수량을 늘려달라고 요청하는 중간 상인들도 있지만 현재 ‘아낙과 사람들’의 구조상 그 일을 감당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성 가장이 바라는 복지 혜택


여러 가지 일로 복잡해서 며칠 전부터 잠시 일을 쉬고 있다는 안덕자 씨도 ‘아낙과 사람들’ 초창기에 과자 굽는 일을 함께 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돈도 돈이지만 사람들에게 너무 상처를 받고 치어서 당분간은 쉬고 싶다는 말을 했다.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고 그냥 공황 상태라고만 하는 그는 구체적으로 말을 하진 않지만 최혜란 씨와 고길순 씨는 그 심정을 안다는 듯이 맞장구를 쳐 준다.

“얼마 전까지 병원에서 환자 돌보는 간병사 일도 하고 최근에는 출판 유통하는 일을 하기도 했는데 생각한 만큼 쉽게 일이 풀리지 않았어요. 저는 믿고 일을 시작한건데 여성 가장이라는 걸 교묘히 이용을 하기도 하고 그래서 상처도 받고 지친 거죠. 만성우울증 같아요. 그런데 오늘 이런 기회가 생기니까 오히려 속내도 이야기 하고 여기 ‘아낙과 사람들’ 초기 멤버들 만났으니 이런저런 얘기도 좀 하고 천안에 내려가려고요.”


안덕자 씨의 푸념 섞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최혜린 상임이사가 맞받아친다.
“‘아낙과 사람들’ 회원 대부분은 정부가 시행하는 모성보호법의 혜택을 받질 못해요. 자식이 스무 살이 넘었으니 기초생활대상 보호자가 아니라 하고 일 때문에 쓰는 다 낡은 경차가 있어도 안 된다하고 가장 돈이 필요할 때가 애들이 대학을 다닐 때 아닌가요? 그런데도 우리는 복지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거지. 기초생활수급도 받을 수 없으니 우리 같은 여성 가장들한테 주는 사회복지예산이 있기나 하는 건지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대화의 초점이 흐려졌다. 하지만 여성 가장들의 고단한 마음이 어찌 이것뿐일까만 ‘아낙과 사람들’ 회원들의 상황은 대개 비슷한 실정이다.


다시, 새롭게


열흘에 한 번 과자를 굽는 작업장에서는 두 세 명의 회원과 최혜린 상임이사가 계속 일을 한다. 카페 를 운영하는 일과 과자 굽는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우리밀 과자 만드는 일은 계속 진행할거예요. 물론 예전처럼 회원들이 많이 모여 일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아낙과 사람들’의 대표적인 상품이기도 하고 처음 과자 만들 때 마음처럼 이 단체를 운영하고 싶은 거죠.” 또한 그는 “우리밀 과자를 통해 먹거리 운동을 해나가면서 그 틈새에 여성 가장들의 일거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일을 새롭게 모색하고 있어요.”라고 한다.

조금은 투박한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아낙과 사람들’ 회원들은 다시 옷매무새를 추스린다. 여성 가장들을 보듬어 줄 사회적 환경을 기다리기에 그들이 헤쳐가야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글 / 사진 황석선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