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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쓰는 민주주의
天網恢恢 疏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광대하여 성글어도 빠뜨리지 않는다. 도덕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구절에서 하늘을 통일로만 바꾸면 이처럼 딱 들어맞는 말이 없지 싶다. 통일을 주제로 한다는 게 이처럼 곤혹스러울 줄 짐작도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분단된 시점부터 통일운동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1988년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이 조국통일 촉진운동을 선언하면서 통일운동은 민주화운동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학생운동뿐만 아니라 노동운동, 농민운동, 빈민운동 등 부문을 초월하여 통일운동은 모든 운동의 영역에 걸쳐 있다. 서울과 지방 가릴 것 없이 한반도 전체가 통일운동의 유적지라고 해도 좋을 만큼 통일, 이 낱말 하나가 하늘처럼 우리의 머리 위에 드리워져 있다. 또한 통일은 쌍생아이다. 통일은 분단이란 낱..
남북분단과 동족상잔의 전쟁은, 많은 노래를 남기기도 했지만 또 많은 노래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어떤 노래는 남쪽에만 남고 또 어떤 노래는 북쪽에만 남았으며, 또 어떤 노래는 남과 북 어느 쪽에서도 불려지지 못한 채 오랫동안 파묻혀 있거나 사라졌다. 은 남과 북 어느 쪽에서도 공개적으로 불려지지 못한 노래이다. 이 난에서 여태까지 소개한 노래는 주로 197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 속에서 불려졌던 노래인데, 은 거기에서도 소외되어 있던 노래였다. 남과 북에서 공개적으로 불려지지 못해 이 노래를 기억하고 불러온 사람들은 1960,70년대 학생운동 출신자가 아닌, 전라남도 출신의 지식인들이었다. 빨치산들이 불렀던 노래였던 까닭에 학생운동권에 마음 놓고 유포할 수 없었던 노래였고, 또 선율이나 가사에서 독특한 사회..
■ 민주화 유적지 답사기 11 한국 민주화의 성지, 명동성당 - 1987년 6월의 명동성당, 그리고 2003년 - 명동은 새로운 것의 진원지이고, 서울 시민의 희망을 앞서 표현해내는 곳이다. 2003년 6월, 명동은 한여름 날씨처럼 후덥지근하고 구름은 낮게 깔려 분주하다. 젊은이들은 여름에 유행할 패션을 앞서 두르고 나와 명동 거리를 활보한다. 명동은 패션의 거리이고, 외국인을 포함해 각계각층의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서울의 축소판이다. 옷, 신발, 액세서리, 햄버거, 한․양식당, 퓨전요리점, 은행, 백화점, 호텔……. 새로 생기느니 쇼핑몰이요, 그 중 절반은 먹거리로 채워진다. 신세계 백화점 앞에서 걷기 시작한 길은 명동으로 접어들며 자꾸만 늦춰진다. 볼거리가 많아지기도 했거니와 인파에 묻혀 발이 묶이기 ..
대중가요권에서도 히트를 예측하기 쉽지 않은 것처럼, 민중가요권에서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히트곡이 나온다. 1987년 7․8․9노동자대투쟁 때 갑자기 부상한 인기곡 도 그러하다. 지난 달 6월시민항쟁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갑작스럽게 벌어진 새로운 상황은 새로운 노래를 필요로 했지만, 창작자들이 그렇게 빠르게 새로운 경향의 노래를 창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노동자대투쟁이라는 경험이 노래화되어 신작(新作)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88년 가을 와 부터였으니, 결국 1987년 여름부터 무려 1년 동안이나 노래의 수요공급이 불균형 상태를 이루었던 셈이다. 수요는 있는데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는 그 상황에서, 그 이전의 노래 몇 곡이 새롭게 조명되어 인기곡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 를 로 개사한 ..
슈팅 라이크 베컴 방학을 맞은 아이들에게 권할 수 있는 건강한 영화, 어른들이 함께 보아도 즐거운 영화를 고르기란 쉽지 않다. 쌍둥이 사이에도 세대 차가 있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로, 세대간 틈이 사회 문제로 거론되는 현실이니까. 여기에다 교육과 재미까지 겸비해야 한다니, 이보다 어려운 과제가 없겠다. 서울 YMCA 산하 ‘건전 비디오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건비연)에서 분기별로 선정하는 ‘청소년을 위한 좋은 비디오’가 그나마 객관적으로 권할 수 있는 작품 목록이 될 것 같다. 선정 작품들은 책자를 만들어 각급 학교와 도서관에 무료 배포하고, 또 작품 판매전도 열고 있다. 10여 년 넘게 이런 작업을 해오고 있는데, 아직도 학교나 단체의 시청각 담당 선생님들로부터 “어떤 작품을 권해야할지, 어디서..
횃불을 든 사람들 - 영원한 자유인 조영래 2 저 황홀한 불꽃을 보아라 저 참혹한 사랑을 보아라 저 위대한 분노를 보아라 아아 불길 속에 휩싸이며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외치는 저것은 죽음이 아니다 저것은 패배가 아니다 저 피 저 눈물 저 울부짖음 속에서 싸우는 노동자의 강철 같은 심장을 보아라 -장시 「노동자의 불꽃 아아 전태일」 중에서 마치 80년대 노동자 시인 박노해의 시구를 연상시키는 이 시는 놀랍게도 1970년대 작품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이 조영래의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1977년 가을, 전태일 열사 7주기에 맞춰 발표된 이 시는 최근까지 그 필자가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안목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끈질긴 주목을 받아왔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홈페이지에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문예운동사’..
횃불을 든 사람들 - 영원한 자유인 조영래 1 그립고 아쉬워도 더는 슬퍼하지 않으리다 단 한 가지 당신 마지막까지 괴로워했다는 저 이십년 세월의 저 편 불타 돌아간 전태일 씨에 대한 그 마음의 빚도 이제 숱한 노동자들 영롱한 눈빛 속에서 다 갚았으니 다 스러졌으니 오히려 고마운 새마음으로 돋아나고 있으니 안심 안심하소서 오고 감 없고 부서질 수도 죽을 수도 없는 마음이시여 -1990년 12월 13일, 김지하 시인의 「조시(弔詩)」 중에서 누구일까. 죽는 날까지 전태일에 대한 마음의 빚을 떨치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표표히 돌아간 그 사람은. 43년 생애보다 몇 곱절 긴 여운과 아쉬움을 남기고 떠난 그 사람은. ‘부서질 수도 죽을 수도 없는 마음’을 가진 그 사람은. 한국 변혁운동사에 굵직한 자취를 남긴..
실버 코미디 모든 세대와 계층이 소외감과 박탈감을 하소연한다. 어린이들은 과외에 시달리느라 유년기를 반납했다하고, 학생들은 입시 지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고 불만이다. 장애인은 마음대로 외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시위하며, 노동자는 임금과 처우 개선을 부르짖고, 여성은 일과 가사 노동의 이중고에 시달린다고 한다. 동성애자는 편견이 사라지기를 바라고, 명퇴자들은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하다고 한다. 직능과 나이별로 뭉쳐 사각 지대에 놓여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실버 세대도 빠질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직후에 했던 말로 기억한다. “모두 살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수십 년 전부터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잘 견디어 왔습니다” 정말 그렇다. 모두들 내일 당장 지구의 종말..
과 이영미 벌써 6월항쟁이 16년 전 일이 되었다. 넥타이부대와 함께 한 6월항쟁의 한복판에서는 무슨 노래를 불렀을까? 잘 생각이 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런 큰 사건들은 늘 예상치 않게 터져 나오기 때문에 그 상황에 꼭 맞는 새 노래가 나올 수가 없다. 새로운 노래를 창작자들이 준비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뿐더러, 설사 새 노래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 새 노래가 갑작스레 모인 수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불려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6월항쟁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학생들은 그냥 이었고 시민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이나 정도였던 것 같다. 이나 두 곡 모두 축축 처지는 노래여서 함께 부를 만한 힘찬 행진곡 한 편이 없다는 것이 매우 아쉽게 느껴지곤 했다. 사실 그 시기에 시민과 함께 할 가능성이 ..
영화로 보는 세상 : ‘우울한 시절’에 이런 영화 한편을… 비관하지 않고 평화와 희망을 노래한다 곽 영진(영화평론가) 이라크사태 이후 시리아, 북한 등지로 확전의 불길이 옮겨 붙을까 예의 주시하는 가운데 전 세계 반전의 물결이 지속되는 요즘. 미국의 장편 기록영화 의 한국 개봉은 폭력을 혐오하고 평화를 갈망하는 영화 팬들에게 정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은 지난 달 본 지면에 서술한 바바라 트렌트의 처럼 그 자체로 전쟁영화는 아니지만 총기나 무기의 파괴성, 반사회성을 고발한 일종의 반전영화다. 지난 3월 23일 아카데미영화제 시상식장에서 “부시, 부끄러운 줄 아시오!”란 거친 멘트로 다큐멘터리 부문 작품상 수상소감을 대신하며 전 세계에 선풍을 일으킨 마이클 무어 감독. 시민운동가이기도 한 그는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