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민주화운동기념관/역사기념관_국내 (21)
함께쓰는 민주주의
부산지역 민주화운동을 품은 보수산 - 부산민주공원과 민주항쟁기념관 - 정호기 한국현대사회연구소 연구원 부마민주항쟁은 한국의 민주화운동사에서 박정희 정권 집권기의 마지막 민중항쟁이라고 할 수 있다. 1979년 10월 16~17일 부산에서, 그리고 18~19일 마산에서 전개되었던 이 사건은 박정희 정권의 몰락에 직접적 인과성을 갖지는 않지만 당시 시민들이 가장 많이 외쳤던 ‘유신 철폐’, ‘독재 타도’라는 구호에서 알 수 있듯이 유신정권의 폭압을 규탄하는 항거였고, 10·26사건이 발발하게 된 하나의 계기였다. 이러한 역사적 의의완 국가에 의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부마민주항쟁’ 또는 ‘부마 항쟁’ 보다 ‘부마사태’라는 명칭이 여전히 더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국가나 지배집단이..
분단 반세기! 한국전쟁의 기념관 - 동작동 국립현충원의 전시관과 용산의 전쟁기념관 - 정호기 한구현대사회연구소 연구원 프랑스를 대표하는 그림책 작가인 페프가 제1차 세계대전을 주제로 다룬「어느 날 밤, 전쟁기념탑에서......」라는 책의 일부가 2002년에 번역 후 출판되었다. 이 책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전쟁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어른들을 준엄하게 꾸짖고 있다. 이책의 주인공들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조국을 위해 조국 땡 곳곳에서 목숨을 바친” 병사들이다. 이들은 전쟁기념탑에서 빠져나와 ‘그들이 치렀던 전쟁이 과연 가치 있는 일이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아마도 이러한 의문은 전쟁이 계속되는 한, 그리고 전쟁에서 희생자가 발생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현재도 이라크를 비롯하..
한국 사회운동의 전환점 ‘5·18’과 기념관 없는 ‘5·18’ 기념사업 -국립 5·18묘지,5·18기념공원,5·18자유공원, 그리고 전남도청 일대의 기념사업- 정호기(한국현대사회연구소 연구원) 광주민중항쟁(이하 ‘5·18’)은 1980년대 한국 사회운동의 출발점이며, 변혁을 지향하는 사회운동의 인식의 전환점이었다. 그리고 ‘5·18’은 지방도시인 광주에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도시라는 상징성을 부여했다. 이는 1980년 5월의 비극적사건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꾸준히 기억투쟁을 전개한 결과이기도 하다. 즉 ‘5·18’에는 다른 민주화운동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치열한 기억투쟁인 ‘5월투쟁’ 혹은 ‘5월운동’이 있었다. 5월운동은 국가를 상대로 하는 비체계적인 인정투쟁으로 시작해서, 점차 ‘5..
한국전쟁 이후 사회운동의 서막을 연 4월혁명과 기념공간 - 국립4·19묘지, 4·19혁명 기념관 그리고 기념도서관 - 정 호 기(한국현대사회연구소 연구원) 2003년은 4·19혁명이 일어난 지 43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에 의해 ‘의거’로 격하되었던 ‘4·19’가 ‘혁명’이라는 명칭을 갖게 된지 정확히 10년이 되는 해이다. 이러한 명칭의 변화가 우리에게 어떤 실천적 의미를 갖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말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혁명’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부터 국가적 차원의 대우가 달라졌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흐를수록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4·19혁명에 대한 기억이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1960년 사건이 발발한 이후, 4월혁명에 ..
국립3·15묘지와 3·15의거 기념관 March 15 National Cemetery 정 호 기(한국현대사회연구소 연구원) 4월혁명, 4·19혁명 그리고 3·15의거 4월혁명은 한국전쟁 이후, 사회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사건이었다. 4월혁명의 시간적·공간적 범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는 이견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1960년 3월과 4월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를 항의하는 집회 및 시위와 정권이 붕괴된 후 계속된 정치·사회적 변화를 지칭한다. 이를 사건으로 국한해 보면, 1960년 2월 28일부터 4월 27일까지 전국에서 비연속적으로 전개된 일련의 집회와 시위들을 말한다. 그 동안 4월혁명보다는 2·28학생의거, 3·15의거 그리고 4·19혁명이라는 명칭이 널리 사용되었고, 익숙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4·..
민주화운동 기념관 건립의 의의와 역사성 정호기 (한국현대사회연구소 연구원) 한국의 민주화운동 해방 이후 한국에서는 한반도의 통일과 민주주의 실현이 핵심적인 과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분단이 고착화되어 가는 형태를 보이자. 적어도 남한 내에서는 민주주의라는 문제가 가장 선차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화두가 되었다. 이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이론적·사상적 논쟁과 갈등으로 표출되었고, ‘어떻게 민주주의가 실현된 사회를 추구하고 앞당길 것인가’ 라는 사회운동론적 실천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민주주의와 관련된 다양한 방법들과 논의들이 제시 및 이루어져왔고, 국가와 지배권력이 대한 민중들의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항거행위가 있어왔다. 한국에서의 민주화운동은 항거행위의..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을 위한 성찰과 토론 기념관 연재를 마치며 2003년 2월부터 한국에 있는 주요 기념공간들과 기념관들에 대한 글을 『희망세상』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해 10월부터는 해외로 시야를 넓혀 아시아, 유럽, 미국, 남미 등에 있는 주요 기념관, 박물관 혹은 기념공간들을 살펴보았다. 이 연재의 목적은 국가 폭력, 식민지의 경험, 전쟁, 독재 혹은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민중의 저항과 투쟁, 인권 등을 주제로 조성된 기념공간과 기념시설들을 우리의 현재적 시각에서 고찰하고, 시민적 관심과 애정 속에서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의 첫걸음을 본격적으로 내딛고자 한 것이었다. 이번 연재는 일관된 틀이 유지되지 못했고 계획했던 모든 기념시설들을 다루지 못해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그렇지만 현재 추진하고자 ..
우리의 기념관, 민주화운동기념관 돌이켜 보면 지난 20세기 우리의 100년은 세계 역사상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짧은 시기에 온갖 격변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던 혼란 속에서 굳건히도 우리 것의, 우리 정체성을 모색하는 시기였다. 조선의 멸망과 식민통치 36년, 해방과 분단,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한국전쟁, 혁명과 쿠데타, 독재와 항쟁……. 특히 분단구조에서 단기간에 이루어낸 압축성장으로 인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의 변화는 가히 혁명적 변화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 폭과 깊이가 넓고도 큰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를 추동한 핵심이었던 민(民)이 역사와 사회의 대상에서 진정한 주체로 우뚝 서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1960년 4·19혁명과 1970년 전태일의 분신, ..
일본군위안부역사관 [日本軍慰安婦歷史館 , The House of Sharing]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에 있는 역사 자료관. 1998년 8월 14일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 나눔의 집에 개관한 세계 최초의 성노예 주제 인권박물관이다. 잊혀져 가는 일본의 전쟁 범죄행위를 고발하고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회복을 위하여, 그리고 후손들에게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지상 2층 지하 1층, 약 350㎡ 규모로 일반시민과 뜻있는 일본인들의 성금을 모아 건립되었다. 설립연도 : 1998년 소재지 : 경기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 65 규모 : 총 350㎡ 관람시간 : 오전 10시∼오후 5시 설립배경과 과정 나눔의 집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한국사회에 제기되던 90년부터 태평양전..
전쟁에 관한 사적과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1991년에 착공하여 1994년 6월 개관한 기념관. 설립연도 : 1993년 12월 완공, 1994년 6월 10일 개관 소재지 : 서울 용산구 용산동 1가 8 규모 : 연건평 2만 5천 평 관람시간 : 3~10월 09:00- 17:00 (1) 배경 우리민족은 개국 이래 오늘날까지 5천여년의 긴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주변국가들로부터 외침을 받아 전쟁으로 많은 시련을 겪었으나 슬기롭게 이를 극복하고 세계에서 보기 드문 단일민족국가로서의 정통성을 유지하여 왔다. 이와 같이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에는 외침으로 나라가 위태로울 때마다 강인한 민족정신과 희생정신으로 목숨바쳐 싸운 수많은 선열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후손들은 선열들의 호국전쟁에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