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쓰는 민주주의
직립(直立) 인간 김남주 2 어느 날 문득, 인류의 머나먼 방계조상이 벌떡 일어설 생각을 하게 된 후로, 직립은 줄곧 인간의 자존을 상징하게 되었다. 인간은 허리를 펴고 꼿꼿이 섬으로써 자신을 네발짐승과 구별했으며, 진리와 완성의 숫자 1의 형상을 닮은 수직의 자세를 취함으로써 수평의 자연에 도전했다. 끊임없는 저항과 불복종, 도전의식은 인간이 직립의 자존심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직립인간 김남주의 자존심도 바로 이 수직의 당당함에 있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무릎 꿇지 않은 자의 당당함, 그것은 처세도 기교도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단숨에 진실로 육박해 들어가고야 마는 정직한 싸움꾼의 정신이었다. 자유 좀 주세요 자유 좀 주세요 강자 앞에 허리 굽히고 애걸복걸하면서 동냥 따위는 하지 않을 것..
언제부턴가 80년대 대학을 다녔던 이들을 '386'세대 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이 정치.사회적 의미가 있든 없든 간에 80년대 청년이었던 그들도 이제는 이 사회의 기성세대가 되어 가소 그 뒤에는 또 사다른 세대의 청년들이 있다. 이른바 90년대를 '한총련세대'라 부른다면 하나하나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거북함을 드러낼지도 모르겠다. 또한 '운동'에 오랜 경력을 가진 이들 중에는 90년대를 산 '청년학생' 들을 그저 가볍게만 보는 이도 있겠지만 애정 어린 눈빛으로 이 청년들의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그림'으로 통일운동을 하고 있는 청년미술집단 은 80년대 유행처럼 번진 민중미술의 희미해진 끝자락을 옹골차게 움켜쥐고 있다고 하겠다. "운동의 역사에서 민중미술..
노동 현장의 파업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거듭되는 분신자살, 그리고 신용카드 문제로 인한 신용불량자 또는 개인 파산자의 급증등이 커다란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배후에는 IMF 이후 점점 악회되고 있는 부의 불평등 문제와 함께 빈곤계층의 증가라는 구조적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IMF라는 어려운 환경에서 지난 국민의 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건강보험 . 국민연금 . 고용 및 산재보험의 5인 미만 사업장에 확대적용 등을 시행했다. 이런 제도의 실시자체는 우리나라사회복지 역사에서 상당한 진전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지만, 한국의 사회복지제도는 서구 선진사회에비교해 아직도 개선되고 발전되어야 할 점이 많은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문제들에 관심을 갖..
직립(直立) 인간 김남주 1 휘영청 밝은 달이 캄캄한 어둠을 녹이던 어느해 추석날 밤, 술 몇 잔에 얼굴이 붉어진 키작은 청년 하나가 다짜고짜 소설가 황석영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한 손에는 집에서 '아마도 새마을 도로 가에 심어 놓은 걸 꺽어 왔을 듯핑은' 코스모스 한 다발을 들고서, 집안에 들어선 청년은 코스모스 다발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시키지도 않았는대 거기 피어 있습니다" 작달만한 키에 굽 닳은 구두, 낡은 '우와기' 에 부스스한 머리. 옷을 벗을 때마다 희고 굵은 이빨이 드러나 더욱 새까매 보이는 얼굴... 검은 뿔테 안경이라도 걸치지 않았더라면 영축 없이 시골 농사꾼으로 보였을이 구닥다리 청년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피어난 것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흔하디흔한 것들에 대한 무한..
전태일의 분신은 1970년대가 어떤 시대일 것인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드라이브에 휘말려 무작정 상경했던 이농민들은 대도시의 노동자가 되었고, 1970년대는 이제 우리나라도 본격적으로 노동문제가 커다란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는 점을 알려주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 있기 이전 민중가요의 태반은 대학생층의 것이었다. 노동자들이 노래문화를 가꿀 문화적 역량이 없어서가 아니라, 민주적인 노동조합이 자리 잡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노래를 만들고 부를 만한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대학은 어떤 노래를 불러도 크게 위험하지 않은 일종의 해방구였다. 노동현장의 민중가요는, 민주노조의 역량이 갖추어지고 집단력과 투쟁의지가 높은 곳에서부터 만들어..
인권유린의 대표적 현장, 남산 옛 안기부 터를 찾아서 은어가 많은 시대는 불행한 시대다. 불행하다는 건 행복하지 않다기보다는 견디기 어렵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현대사를 되짚어보면 특히 70, 80년대에 많은 은어가 만들어졌다. ‘남산’ 역시 그 시대에 만들어진 은어 가운데 하나다. 반대로 은어를 보면 그 시대가 어떠한지 알 수 있다. 은어란 특정한 계급 혹은 계층 사이에 통용되는 말이다. 말하자면 은어의 대상은 정작 그 은어를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국가안전기획부 사람들은 자신들의 직장을 가리켜 ‘회사’라는 은어를 사용했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곳을 가리켜 회사라고 하지 않았다. 남산이라고 불렀다. 그 시대 정보기관과 일반 국민들 사이는 회사와 남산의 차이만큼 먼 거리였다. 이렇듯 은..
“어쩌다보니”라고. 시대의 가파른 벼랑에서 벗어나본 일 없는 소설가 송기원은 늘 이렇게 말한다. 그는 또 자신처럼 ‘어쩌다’ 운동하게 되었고, ‘어쩌다’ 감옥에 가게 된 그런 이들을 좋아한다. 처음엔 그 말이 그저 심각한 좌중의 분위기를 바꿔놓으려는 심사인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거창하게 말해서 “어쩌다보니”라는 말에는 피할 수 없는 시대의 요구가 있었다. 아니, 이제 그 시대를 지나왔으므로 과거를 먹고 살지 않겠다는 진중한 제스처가 있었다. 또 그 말에는 ‘누구든 그 상황에 처하게 되면…’이라는 민중성이 녹아 있었다. 세상을 읽는 눈은 꼭 과학적 분석을 통해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때로 그것은 순간의 깨달음이나 본성적 행동양식으로 나타나곤 한다. 시대와의 불화 또한 그랬다. 70년대의 전태일..
타오르는 활화산, 함석헌 2 유영모 선생의 영향을 받은 함석헌은 선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1960년대에 함석은 서구의 퀘이커, 한국의 민중신학, 그리고 를 통해 삶의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기존의 교회조직이나 제도에 회의적이었던 함석헌이 300년 역사를 가진 종교조직 퀘이커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1959년 2월 서울에서 열리고 있었던 퀘이커 예배 모임이었다. 사람이 죽은 후에 하늘나라에 가는 것 보다 지금 이곳 세상의 평화와 사회정의를 이루는 일에 힘이 모아져야 한다는데 공감하였기 때문이다. 인종 차별 반대 운동, 노예 제도 반대 운동, 여성 참정권 주창 등 사회 개혁을 부르짖는 무교회주의였기에 참여하게 되었다. 함석헌은 퀘이커를 ‘양심의 소리’, ‘속의 소리’, ‘속의 빛’ 이며..
바그다드 카페 두 여자가 있습니다. 아주 상반된 성격에 상반된 환경에서 살아온. 그 둘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요? 바그다드 카페는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미국으로 여행온 독일인 부부가 있습니다. 무척 권위적으로 보이는 남편, 자못 순종적으로 보이는 아내, 남편은 연신 시가를 피워대고 차안에는 행진가가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무슨 일인지 남편은 사사건건 화를 내고, 참다못한 아내는 결국 여행용 가방 하나만을 지닌채 차에서 내립니다. 그녀의 이름은 쟈스민. 영화 (퍼시 애들론, 1988)는 그렇게 시작합니다. ‘Calling you'를 배경음악으로 정처없이 걸어가는 사막의 고속도로, 트럭 한 대가 호의를 보이지만 그녀는 두려운 표정으로 거절합니다. 고속도로변에 ‘바그다드 카페’라는 이름의 허름한 모텔이 있습니..
평화를 둘러싼 치열한 기억투쟁 -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과 평화기념자료관 - 양금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예산팀 과거의 일에 대하여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평가하고 기억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집단도 마찬가지로 특정한 사건을 자신들의 정체성과 정치적 지향이 상처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리한 면은 최대한 부각시키고 불리한 면은 가능한 한 잊어버리거나 숨기려고 한다. 정치세력들 간의 기억과 망각을 둘러싼 이와 같은 갈등과 투쟁, 타협의 흐름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항상 존재하여 왔다.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지상최대의 격전이었던 오키나와 전투와 그 엄청난 희생에 대하여 어떤 평가를 내리고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놓고 일본의 정치세력들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평화’의 의피를 쓰고 치열하게 투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