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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해방의 바윗물 김금수(金錦守) 2 본문

인물/열사 이야기

노동해방의 바윗물 김금수(金錦守) 2

기념사업회 2003. 2. 1. 17:00

노동해방의 바윗물 김금수(金錦守) 2


『발이 저리냐?』

중앙정보부에 끌려갔을 때, 정보부 사람들이 한 말이었다. 「한국노총」에 들어가는 골칫거리를 놓고 『밥이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 어떻게 생각하느냐?』하고 운을 떠봤더니, 되묻던 말이었다. 그때에 마흔 줄에 접어든 김금수가 한 대답이 이러하였다.

『발만 저린 게 아니라 온몸이 다 저리다. 당신들이 하는 살인적 고문 앞에서 발 안저릴 사람이 있겠느냐?』

수많은 선배와 동무와 후배들이 죽어나오고 병신 되어 나오는 정보부 수사관들 앞에서 그런 당찬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강철같은 믿음이 있었던 때문이었다. 「암장」때 읽었던 레닌의 말이 그 믿음의 뿌리였다. 『인민해방투쟁은 기본계급을 그 밑뿌리로 한 대중토대가 있어야 한다. 기회주의자들의 집단인 어용노동조합이라도 그곳에 해방시켜야 할 노동대중이 있으므로 들어가는 것이 옳다. 들어가서 사업해야 한다.』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이제 되돌아 봐도 잘 들어갔었다는 생각이다. 그곳에서 민주노동운동의 싻을 틔우는 토대구축 사업을 하다가 그만두게 된 것이 9년만이었다. 76년에 들어갔다가 85년에 나왔는데, 해직이었다. 정보부에서 했던 말처럼 「한국노총」에 들어가 숫되게 밥만 먹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 모꼬지를 만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노동자 의식화사업을 하는 것을 경계한 정보부의 압력에 따른 것이었다. 「한국노총」에서 쫓겨나 만든 것이 <한국노동교육협회>였다. 「노동해방의 바윗물 김금수」한테 한시반시도 떠나지 않는 화두(話頭)는 「대중토대」였다. 민족해방과 인민해방투쟁의 제단에 몸을 던졌던 일제와 이승만체제때의 선배와 박정희와 그 적자(嫡子)인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군사팟쇼 아래서 동무․후배들의 꿈이 깨어지고 꺽이며 그 맥이 끊어진 것들이 다 대중토대가 약했던 탓 아니던가. 의식의 미분화 상태에 있는 노동대중과 의식만 앞서 있지 「노동조합」을 모르는 청년학생들을 책자를 만들어 지속적인 학습과 훈련으로 교육시켰다. 이렇게 싻틔우고 물뿌리며 잡초 뽑아 북돋운 노동자들이 단일대오를 이루어 일떠섰던 것이 87년 노동자 대투쟁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87년 이후 노동운동의 주체가 되었고, 그렇고 다져진 힘을 모아 이뤄낸 것이 95년 「민주노총」건설이었다. 백무산시인의 싯귀처럼 「고압선 이글거리는 어두운 공단」거리마다 「쇳물처럼」울려 퍼지던 「늙은 노동자의 노래」였다.

 

나태어나 이강산에 노동자되어

꽃피고 눈내리길 어언 삼십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죽어 이강산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못올 흘러간 내청춘

작업복에 실려갔나 꽃다운 이내청춘

 

아들아 내딸들아 서러워마라

너희는 자랑스런 노동자의 자식이다

좋은 옷 입고프냐 만난 것 먹고프냐

아서라 말어라 노동자의 자식이다

아- 다시못올 흘러간 내청춘

작업복에 실려갔나 꽃다운 이내청춘

 

『문제는 사람이지요. 세계를 변혁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강철같은 신념으로 무장된 사상이 있어야 합니다.』

변혁운동의 고갱이에 대하여 여쭈었을 때 선생이 하신 말씀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무엇보다도 먼저 믿음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었다. 겉껍데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 바뀐 것으로 보이는 세상의 흐름, 곧 시류(時流)에 따라 발빠르게 모습을 바꾸고, 세태의 흐름에 따라 재빠르게 변신하는 사람은 아무도 믿지 않으며, 그런 사람의 부르짖음을 따라 자기 운명을 통째로 걸어야 하는 변혁운동의 가시밭길로 나설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른바 「계급정당」을 띄웠던 사회변혁운동세력의 맹장이라던 사람들이 군사깡패집단과 자본가계급이 야합해서 세운 정당에 들어가 국회의원이 되고, 수구기득권세력의 나팔수가 되는 세상이다. 벼랑끝에 내몰린 농민과 어민의 거덜난 삶을 대변하겠다던 사람이 군사깡패자본가정당에 들어가 그 기관지에 『지금까지 저는 잘못된 사상의식을 가지고 세상을 잘못 살았다.』고 반성문을 쓰더니, 그 공으로 국회의원이 되어 농어민을 수탈하고 착취하는 기콧구멍이 막히는 짓거리를 이 중생은 보고 있다. 골칫거리는 사상이다. 사상이 세계를 변혁하는 근본동력으로 되자면 북풍한설이 몰아쳐 오고 산더미 같은 물고개가 덮쳐와도 끄떡하지 않는 강철 같은 신념으로 안받침 되어야 한다.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되는 개력을 하더라도 자신이 가려잡은 사상에서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어야 한다. 이것이 변혁운동의 모든 어루더듬과 옥신각신에 앞서는 원칙이다. 이 원칙을 앞세운 바탕에서 변혁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운동의 갈피를 파고들고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변화된 사회, 이 머리칼이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게 무서운 자본주의 막판사회를 어떤 식으로 변혁해 나가느냐,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도틀어 묶은 어려움 속에서 이 사회를 다시 깨어나게 하는 구실을 노동자를 머리지은 진보적 청년학생들이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 하는 골칫거리들이 참되고 알차게 어루더듬어져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명백하게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사상이 세계를 변혁한다고 해서 어느 사상이나 다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이지요.』

사상 얘기가 나오니까 공중 거시기해진다고 웃음의 말을 했더니, 선생은 웃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과 근본지향에 잘 맞고 이를 이뤄낼 수 있게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 있는 사상, 인민을 중심으로 세상을 대하고 인민대중의 힘에 바탕해서 세상을 변혁하려는 사상만이 운동하는 사람들이 신념으로 삼을 사상이지요. 이렇게 보는 자리에서 모든 운동은 철저하게 사상적일 때만이 가장 아름답고 인간적일 수 있으며, 가장 인간적으로 아름다울 때만이 인민대중과 민족 나아가서는 인류 전체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해방위업에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이데올로기」가 「패션」이 된 세상이다. 「소비에트」가 뜯어헤쳐지고 동구권이 무너졌다고 해서, 북미합중국 일극패권주의를 그 알맹이로 하는 「비바 자본주의!」가 되었다고 해서, 이제까지 살아오던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달리하는 것이 하나의 흐름으로 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근본문제」에 대해서 처음부터 다시 따져보고 더욱 다져봐야 하는 것이 사상의 힘으로 세계를 변혁하려는 사람이 지켜야 할 근본자세일 것이다. 그런 뜻으로 읽혀지는 선생의 말씀이다.

『이번 대선에서 민노당 표가 제일 적게 나온 데가 호남입니다. 이른바 정몽준파동이 일어나면서 노무현후보가 떨어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왔던 거지요.』

민족이 일통되기 전에는 민주노동당이 의회를 통한 집권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해 줄 수 있는 합법기구가 필요하다. 바깥 쪽의 대중투쟁만으로는 이른바 따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수구우익세력이 쳐놓은 가시철망 시멘콘크리트벽이 너무 두텁고 높다.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것이 정치적 다릿막이다. 의회진출 말이다. 「전민항쟁」, 곧 대중투쟁의 성과를 합법의회의 틀 속으로 집어넣어 운동역량을 드높여야 한다. 브라질에서 「노동자당」이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데는 우리의 「민노당」같은 「구찌」의 힘이 컸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브라질과 다르니, 분단체제인 것이다. 지구 최후의 분단체제 아래서 브라질과 같은 의회진출을 통한 사회변혁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데 골칫거리가 있다. 노무현정권 탄생이 「전민항쟁」과 「의회투쟁」에 얼마나 영향을 줄까?

『전에 노무현씨가 찾아와서 이런 말을 합디다. 김대중정권이 탄생했을 때였는데, 김정권이 할 일이 두 가지다. 남북문제의 실마리를 잡아 통일의 초석을 까는 것과, 진보세력의 의회진출 허용이다. 지켜보겠습니다.』

「한국노총」에서 쫓겨나 남대문시장에서 꽃장사를 하는 등 벌잇줄에 시달리다가 「한겨레신문」비상근 논설위원으로 들어간 것이 88년이었다. 99년 정년으로 그만둘 때까지 노동관계 칼럼을 쓰는 것으로 노동운동에 이바지하였다.

『민주주의 심화라고 합디다. 소련식 국가사회주의와는 다르다는 거였지요.』

브라질 대통령이 된 룰라를 만났던 97년에 들은 말이었다. 2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눴는데, 『당신이 하고 있는 노동자당의 내용이 뭐냐?』고 물었을 때였다. 브라질과는 경우가 다르지만 우리의 경우 진보세력들이 현실문제에서 자기모순에 빠진다는 게 골칫거리다. 입으로는 사회변혁과 전민항쟁을 부르짖는 진보세력들이 현실의 구체적 삶에서는 오히려 보수적으로 된다. 근본적으로 자기개혁을 못하는 탓이다. 이점이 어렵다. 마오가 왜 「영구혁명론」을 부르짖었는가 알 것 같은 대목이다.

『인민대중의 잠재역량을 어떻게 조직화 하는가? 이것이 관건이지요. 문제는 노동대중과 연대해서 도화선이 되어줘야 할 학생대중들이 잠들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른바 「아엠에프시대」를, 그 깜깜했던 맞뚫레를 지나왔다고 한다. 참으로 그러한가? 한가지 뚜렷한 것은 북미합중국의 「세계지배 신질서플랜」인 신자유주의의 앞장꾼이 바로 「아이엠에프」라는 점이다. 「아이엠에프 구제금융」이 실시된 나라치고 노동운동이 각개격파 되지 않은 나라가 드물다. 뿐만 아니라 민중들에게 높은 실업률과 물가고, 그리고 부익부 빈익빈이 강제되지 않은 나라가 또한 드물다. 우리 또한 「아이엠에프」의 올가미에 걸려 가히처럼 끌려다니는 괴로움과 슬픔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역사의 시계바늘은 6공․5공을 거슬러 유신독재시절로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민중의 힘은 위대하니, 거꾸로 돌아가는 역사의 시계바늘을 꽉 움켜잡은 것이 요번 대통령선거인 것이다. 청년학생운동의 위대함은 선도성과 행동성에 있다. 4.19과 6.3, 그리고 80년 봄과 6월항쟁이 그것을 웅변하여 준다. 그런데 이제는 어떠한가? 청년학생운동이 위기에 몰린 정도가 아니라 숫제 사라져버리었다. 「한총련이적성문제」하나 뚫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운동의 시대」가 가고 난 다음 대학교정을 휘몰아치는 것은 「영어학습」과 「고시광풍」이다. 언제나 깨어 있는 얼로 민족문제․민중문제를 놓고 괴로워해야 할 「지성의 본산」임을 팽개친 것이다. 청년학생들은 스스로에게 찬찬히 물어봐야 한다. 참말로 나는 역사 앞에 진실한가? 내 사상은 참으로 무엇이며 민족해방과 인간해방에 대한 믿음은 있는 것인가? 믿음이 흔들림 없다면 그 믿음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전략․전술은 옳게 세워졌으며, 적의 약한고리를 찾아내어 괴멸적 타격을 입힐 수 있을만한 중심고리는 올바르게 잡아내고 있는가? 옛꼴 그대로의 버릇대로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가?

『소위 관료주의 결과 아니겠습니까? 사회주의라는 것이 민주적 토대 없이는 완성될 수 없는 체제인데, 너무 굳어버렸어요』

소비에트가 뜯어헤쳐지게 된 까닭을 여쭈었을 때 선생이 한 말이다. 덧붙여 말하는 선생의 착 가라앉은 성음은 처음과 똑같았으니, 강철 같은 신념을 바탕으로 자기사상과 철학의 발판을 딛고 선 사람 특유의 것으로 보인다.

『세상이 변했다고들 말하고, 노동개념 또한 달라졌다고들 말합니다. 노동운동에 미래가 있는가? 이런 말들을 많이 하는데, 노동운동 자체가 미래 아닌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것이 일하는 사람들의 꿈임으로,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인간의 기본욕구가 있는 한 노동운동에 내일은 있습니다.』

노동운동이라는 것이 맴돌아 자본과 노동, 곧 서로 버티는 힘의 판가름관계인데, 운동이 변화를 어떻게 따라잡느냐가 골칫거리로 된다. 힘의 판가름관계에서 밀렸을 때 자본가는 보따리를 싸야 되지만 운동권은 그렇지 않으므로 대응자세가 느린 것이다. 자본주의체제로 일통된 현실에서 근본변혁은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전술적 유연성을 지녀야 한다. 멀리 보고 분명한 걸음으로 걸어가야 한다. 노동계급을 두리로 한 변혁운동세력에서 해내야 할 급선무로 3가지를 꼽는 선생이시다.

『혁명에 가까울 정도로 자기개혁을 해야 하고, 권위를 찾아야 하고, 주눅든 노동계급의 자존심을 되찾아야지요.』

정규노조가 아닌 노동조직, 비정규직 노동센터, 노동미디어, 전태일기념사업회 등을 모아서 「노동네트워크」를 만들 생각이다. 그렇게 밖에서 지원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생각하고 있다. 『세계노동운동사』를 쓰고 있다.

 

우리말풀이

○골칫거리 : 문제. ○숫되게 : 단순히. ○모꼬지 : 놀이나 잔치 또는 그 밖의 일로 여러 사람이 모이는 일. ○고갱이 : 핵심. ○물고개 : 파도. ○개력하다 : 산천이 변하여 옛 모습이 없어지다. ○가려잡다 : 선택하다. ○머리지은 ○어루더듬다 : 모색하다. ○갈피 : 일의 갈래가 구별되는 어름. 이치. ○도틀어묶은 : 총체적. ○따논자리 : 기득권. ○다릿막 : 교두보. ○벌잇줄 : 생업. ○맞뚫레 : 「터널」○앞장꾼 : 첨병. ○가히 : 「개」의 본딧말. ○맴돌아 : 결국. ○판가름 : 대결. ○두리 : 하나로 뭉치게 되는 중심의 둘레.


 글_정도상

1960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전북대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국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 단편소설 <십오방 이야기>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창작집 <친구는 멀리 갔어도>, <아메리카 드림> 등이 있고 장편소설로는 <그대여 다시 만날 때까지>, <푸른 방>, <누망> 등이 있다. 현재 사단법인 통일맞이 늦봄문익환목사기념사업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라디오21(www.radio21.co.kr)의 <정도상의 문학 속으로>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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