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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思想)의 길라잡이 리영희(李泳禧) 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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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思想)의 길라잡이 리영희(李泳禧) 1

기념사업회 2002. 11. 1. 17:15

사상(思想)의 길라잡이 리영희(李泳禧) 1




<김성동씨 정중히 서명까지 해서 우송해 준 최근작 ‘꿈’을 고맙게 받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신문의 신간안내를 보고 궁금하던 터라서 더욱 그러했습니다.
마침 나는 7개월 전의 뇌출혈로 右半身이 半쯤 마비되어, 딱딱한 글은 일체 멀리하고 좌선하는 마음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처지여서, ‘꿈’을 조금씩 읽으며 시간을 보내려 합니다.
팔과 손 손가락의 마비가 덜 풀려서, 떨리고 아프고, 쑤셔서 더 쓸 수가 없어, 이만 그칩니다. 다시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건강하세요. 리영희.>

글씨를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삐뚤빼뚤 그러나 꾹꾹 힘주어 눌러 쓴 리영희(李泳禧)선생의 엽서를 받은 것은 작년 5월이었다. 많이 모자라는 소설명색 ‘꿈’을 보내드렸던 것인데, 풍타낭타(風打浪打) 떠돌아 다니느라 선생이 풍 맞으신 사실을 모르고 있던 이 중생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니, 큰일났구나. 이 기절초풍하고 혼비백산하는 정신의 대공황시대에 사상의 길라잡이가 쓰러지시다니.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싹쓸바람 몰려오던 저 조선조말 그 시절처럼 다시 미일중러의 각축장이 되어버린 이 땅의 중생들은 누구한테 가르침을 받는다는 말인가. 뉘 있어 사상의 죽비(竹篦)를 내려칠 것인가.

“문제의 핵심을 보는 통찰력이 없습니다. 여중생 학살문제만 해도 모두들 행정협정 개정문제만 얘기하는데, 미국의 본질을 똑바르게 봐야지요.”

여기저기 찢어지고 떨어진 데를 본드로 붙여 놓은 고물 가죽소파에서 손님맞이방 가운데 창쪽으로 놓여진 걸상에 옮겨 앉은 선생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운동을 하신다. 쇳기있는 특유의 성음에 조리가 있는 내용이며 복잡한 수치와 역사적 사실에도 막힘이 없지만, 오른쪽 팔이 아직 완전하지 못하시다. 운동신경은 살아있지만 감각이 없다. 문득 스산함 성음으로 절집에 누구 도인 같은 용한 이를 아는 이 없느냐고 묻던 선생이 미국의 본질과 우리 민족이 처한 현실을 얘기할 때는 단호하다. 목소리도 카랑카랑 하고 힘이 넘친다.

“제일 큰 문제는 민족의 생존력이, 자생력이 점점 상실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 없이는 죽는다, 미국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이 땅에 와 있다는 정신적 노예근성, 절대적 자기능력 불신의 무력증에 빠져 있어요. 뼛속 깊이 뿌리 박혀 있는 미국, 미군이 보호해 주기 때문에 살고 있다는 이 어처구니 없이 거대한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미군철수, 전부가 아니라 미군의 일부 철수 얘기만 나오면 대통령부터 국민들까지 까무러칩니다. 조선일보 등 수구신문이 부채질하고 있지요. 기득권층은 영원히 미국의 속국이기를 원하고. 조선일보를 보세요. 탱크학살 사건에 대해 입도 벙긋 않다가 미군이 위령제 지냈다는 것을 기사로 알리며 미국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태도...”

주한미국 또는 주한미군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이 존재해야 한다’고 한 김대통령의 대미인식은 아주 중요한 대목이다. 민족자주성을 표명 안한 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큰 유감이다. 남북문제의 핵심은 군사문제이다. 군사적 긴장완화 합의해서 남북간 군사위협 없애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10가지 중 한가지만 없어져도 미군의 주둔 이유가 1만큼 없어진다. 없어진 만큼 주한미군 병력 감축할 수 있다. 10년을 두고 2,3,4,5-없어지면 배타적 미군주둔 이유 없다. 미군 대신 국제군으로, 피케이오 평화유지군으로 대체해야 한다. 이런 장기적 비전 가지고 대북․대미관계 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김대통령이 방북할 때 불러서 간 청와대에서 이런 말 했더니, 김대통령이 싫어합디다. 미국 비위 거슬리는 말을 싫어해요.”

끝모를 하늘 밑에 벌레들의 탐욕을 타격한 이른바 ‘9.11테러’, 미국의 처지에서는 테러일지 모르지만 아랍의 처지에서는 독립전쟁일 수 있는 ‘바벨탑사태’에 대해서 여쭈었더니, 한마디로 정의한다. “북미합중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테러주체입니다.”

미국의 세계단독지배 강령인 ‘세계신질서플랜’이 세워진 것은 1991년 부시 아버지 부시정권 때였다. 레이건을 거쳐 아들 부시한테로 이어져 오고 있는 국가목표이니, 북미합중국의 로마제국화이다. 이란과 리비아 그리고 쿠바에 정치․경제․군사적으로 결정적 타격을 가한 것이 98년이었다. ‘세계신질서플랜’의 내용이다.

1. 미국의 유일 독자적 세계지배권에 도전했던 소련과 기타 국가들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2. 미국의 의도는 절대적인 것이어서 유엔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단독으로 집행한다.

3. 각 지역의 지배권에 순응하지 않는 국가는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가장 저렴한 전비로 없애버린다.

4. 미국의 뜻에 따르지 않는 나라에는 즉각 군사력을 동원한다.

라틴아메리카 23개국 가운데 13군데 정권을 쓰러뜨렸고, 아시아․아프리카에서 30여 나라를 쓰러뜨렸으며, 인도네시아 독립운동영웅인 스카르노를 암살하려다 쿠데타를 부추겨 쫓아냈다. 당시 스라와지강이 2달간 붉게 흘렀으니, 학살당한 인도네시아 인민 30~40만명의 피였다. 아르헨티나 인민혁명의 영웅 아옌데를 쓰러뜨렸고, 4.19혁명을 짓밟은 5.16쿠데타를 인준하였고, 김재규 장군의 10.26혁명을 짓밟은 5.18쿠데타를 인준하였고…. 코딱지 같은 아프카니스탄 정도를 뭉개버리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미국이 이른바 원조하고 지지한 나라 가운데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루어진 나라는 단 하나도 없다. 미국의 절대적 세계지배 전략인 이른바 ‘세계화’의 본질을 제대로 봐야 한다. 미국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않는 데서 출발하는 국가전략은 다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의 동북아정책은 대중국정책의 한 주변부의 현상적 상황밖에 안됩니다. 20년 후 중국이 미국에 도전할 나라로 보고, 모든 정책이 여기에 맞춰져 있습니다. 미국의 주적 1호가 중국입니다.”

미국은 중국 속의 여러 소수민족을 부추겨서 분열시키고자 한다. 중국을 흔드는 우군으로 신강성 회교도까지 포섭하며, 달라이 라마를 띄우는 게 국가정책으로 되어 있다. 소수민족을 중국에서 어떻게 떼어낼까?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중국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대만을 독립시키고자 한다. 오키나와처럼 대만을 미국의 항공모함으로 만들고자 한다. 온갖 대량살상 무기를 팔아 미국의 국부를 살찌우는 부시는 제국주의로서의 미국을 지탱하는 군산복합체의 ‘가오마담’일 뿐이다.

한반도 또는 조선반도 문제는 중․미 싸움 가운데 장기판의 차포(車包)가 안되고 마상(馬象)도 안되며 졸(卒)에 지나지 않는다. 소모품으로서의 졸로 써먹고자 절대로 지배권을 안 놓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군사력이 아무리 세계최첨단이라도-그것도 국민의 혈세로 터무니없이 비싼 값에 사들여 오는 것이지만-미국의 이익에 복무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있을 중미전쟁에서 대한민국의 군인은 미국의 용병이 될 것이다. 미군을 희생시키지 않고, 수백억달러의 군비를 안 쓰고, 한국군을 앞세울 것이다. 작전권을 안내놓는 이유가 참으로 여기에 있다. 우리 군대가 우리 국민을 지키는 게 아니라 미국의 이익을 지키는 군대로 된다는 데 우리의 비극이 있다. 우리 민족에게 미국은 손바닥으로 탁치면 떨어지는 거머리 정도가 아니라 흡혈귀로 된다.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 민족의 멱 깊숙이 꽂고 있는 빨대를 완전히 피가 마를 때까지 뽑지 않을 것이다. 어찌 무섭지 아니한가.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 게임’에 대규모의 선수단과 응원단을 보낸 것이 김정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이 답방하기 위한 정지작업인데, 스스로 ‘친미주의자’임을 자처하는 국무총리라는 사람은 대선기간 내 답방반대를 외치고 있다.

“남북관계의 진실이 밝혀져야 합니다. 설혹 남한에 불리하더라도 진실은 규명되어야지요. 남북관계의 많은 사실들이 허위에 입각해 있습니다. 이른바 북파공작대로 미귀환자가 6천7백61명입니다. 서해교전 때 원고지 2백장으로 세밀하게 분석해서 쓴 ‘북방한계선논문’을 각 언론기관에 보냈으나, ’한겨레‘만 유일하게 줄여서 보도했을 뿐 한 줄도 안나왔습니다. 소위 북방한계선이라는 것이 6.25 때 미군이 일방적으로 그어놓은 것인데, 영해침범이라는 것은 말도 안되는 헛소리지요.”

서너 해 전부터 불경을 읽으며 의도적으로 현실 문제를 멀리하고 있다. 각종 문서와 문헌자료를 못보므로 현실문제․국제문제 인식에 대한 정리의 완결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維摩不二法門>이라는 붓글씨가 벽에 걸려 있다. 백담사(百潭寺) 회주(會主) 오현(五鉉) 스님이 선생의 쾌유를 빌며 보내준 것이다. 6.25 때 신흥사(新興寺)에 간수되어 있던 경판을 지켜준 데 대한 고마움도 들어 있으니, “세상이 병들었으므로 나도 병들었다”며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을 둘로 나누어 보지 않았던 유마거사와 선생을 동렬에 놓고 본다는 뜻으로 읽힌다. 한마디로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과학’이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렇지. 김형, 그렇지.” 하며 좋아하신다. “유일신을 신봉하지 않는다면 인류가 얼마나 행복할까.” 혼자말처럼 말하는 선생은 아소교(耶蘇敎)같은 절대신(絶對神)을 절대 믿지 않고 오로지 인간의 이성의 힘만을 절대로 믿는 분이다. 무지개빛 강철처럼 날카로운 사회과학자로서 불경을 읽는다는 것이 사람들한테 어떻게 보일까 조금은 계면적었던 모양이다. 북경 ‘유리창’서 유공권금강경(柳公權金剛經)을 구해다 읽고 있는데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亡)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즉견여래(卽見如來)>라는 사구게(四句謁)를 불교사상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불교와의 인연은 6.25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통역장교로 종군하던 임시연대본부가 자리한 설악산 신흥사에서 군인들이 불경목판을 야전삽 같은 것으로 빠개어 화톳불을 놓고 있었다. 민족의 귀중한 문화재를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즉시 불을 끄고 타다 만 조각까지 판고(板庫)에 꽂아놓게 하였다. 자서전 “역정(歷程)”을 읽어본다.

<신흥사의 그 경판은 ‘은중경(恩重經)’ ‘법화경(法華經)’ ‘다라니경’, 그밖에 경명을 알 수 없는 몇 가지 경으로서 ‘은중경’은 다행히 완전히 보존되어 있고, ‘법화경’ ‘다라니경’은 많은 부분이 소각되어 없고 일부만이 남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중요한 사실은 그것들이 한자, 한글, 범어(梵語)의 세 언어로 된 것들이다. 이처럼 복합언어로 되어 있는 경판이 소장되어 있는 곳은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불교권에서도 신흥사가 유일한 경우일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화주(化主)나 시주(施主)의 이름은 알 수 없으며 그 제판 연대는 조선조 효종(孝宗) 때인 1650년에서 59년 사이이고, 완판(完板)수는 알 수 없으나 현재 남아 보존되어 있는 것은 277판임이 확인되었다.>

건봉사(乾鳳寺)에서 만났던 스님이 특히 눈에 밟힌다. 미군의 융단폭격으로 주춧돌만 남아있던 아흔아홉칸 대가람(大伽藍)의 폐허에서 권총을 빼든 미군고문관과 국군장교의 무도함을 꾸짖으며 건봉사를 지키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던 40살 가량의 그 스님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건봉사를 지키려는 스님들이 곳간에 간수해 두었던 감자 고구마 고사리와 마른 산채나물을 군인들이 다 털어가 버리자 그 스님 또한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지금도 절에 가는 일이 있어 스님들을 볼 때면 무아(無我)의 진제(眞諦)를 얻은 것 같던 그 스님이 떠오르고는 한다.

“난 좌익도 우익도 못되지만…”

해방 직후부터 겪은 바 있지만 좌우의 질적 차이가 있었다는 생각이다. 현실상황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현실적 체험 모두가 그랬다. 개인적 자질과 인간적 품성을 놓고 보더라도 좌익쪽의 인품이 훨씬 높았다. 한마디로 우익은 개인의 영달 추구를 도모하는 건달이었고, 좌익에 선 이들은 새로운 사회와 바람직하게 새로운 국가건설의 꿈에 불타고 있었다. 남쪽은 제정신 가지고 곧은 마음 가진 사람이 살 데가 아니었다. 남에 남아서 무엇을 한다고 하는 이른바 지식인은 쓰레기 아니냐, 허물없는 자리에서 친구들끼리 말하고는 하였다. (계속)

리영희

언론인 겸 사회평론가. 1929년 평안북도 삭주군 대관면에서 태어났다. 1947년 경성공립공업고등학교를 거쳐 1950년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를 졸업하고 안동공업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재직 중 6.25전쟁이 일어나자 입대하여 1957년 육군 소령으로 예편했다. 1957년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로 언론활동을 시작한 뒤 1972년까지 조선일보 및 합동통신 외신부 부장을 지냈다.

1972년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겸 중국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 교수기간재임용제도로 인해 해직되었다가 1980년 3월 복직했으나 같은 해 다시 해직된 뒤 1984년 복직하였다. 1985년 일본 도쿄대학교 초청으로 사회과학연구소 객원교수로서 연구했으며, 1987년 미국 버클리대학교의 부교수로 두 학기 동안 '평화와 투쟁(Peace and Conflict)'이라는 제목의 특별강좌를 열었다. 1988년 한겨레신문사 비상임이사 및 논설고문, 1993년 통일원 통일정책평가위원을 지냈다. 1995년 한양대학교에서 정년 퇴임한 뒤 현재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대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에 《전환시대의 논리》(1974) 《우상과 이성》(1977) 《분단을 넘어서》(1984) 《역설의 변증》(1987) 《자유인, 자유인》(1990)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 《스핑크스의 코》(1998) 《반세기의 신화》(1999) 등이 있다. 단재학술상, 자유언론상(Press Freedom Award), 늦봄통일상(1999) 등을 수상했다.

‘길’ ‘만다라’ ‘집’ ‘국수’ ‘꿈’ 등
산문집 ‘생명기행’ ‘미륵의 세상 꿈의 나라’ 등


글_김성동

1947 충남 보령 출생

1965 불교 사문으로 입산수도

1975 <주간종교> 종교소설현상모집 당선

1978 <한국문학> 신인상에 중편 ‘만다라’ 당선

1979 ‘만다라’를 장편으로 개작출간

저서 창작집 ‘오막살이 집 한채’, ‘피안의 새’ ‘붉은 단추’

장편소설 ‘길’ ‘만다라’ ‘집’ ‘국수’ ‘꿈’ 미완의‘풍적’ 우의소설‘염소’ 등

산문집 ‘생명기행’ ‘미륵의 세상 꿈의 나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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