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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곧 역사’리영희 선생의 행적 본문

사료이야기/사료(구술) 이야기

‘개인이 곧 역사’리영희 선생의 행적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9. 6. 19. 10:48
 
 
기념사업회 사료관에 소장되어있는 70여만 점의 사료 중에 리영희 선생이 기증한 사료를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개인이 곧 역사’인 경우에 해당하는 삶을 살아온 이다. 지난해 봄 전화를 해서 기증 의사를 밝혔고 그 후의 과정은 사료수집 담당자들을 통해 추진되었는데 바쁜 일들로 모두들 잊고 있었다. 그러다 올 초에 선생께서 <민주화운동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 보낼 자신의 몇몇 신상자료를 사료관에 기증했으니 찾아달라는 연락을 해서 조사하는 과정에 상고이유서를 비롯하여 옥 중에서 어머니 영전에 드리는 눈물에 얼룩진 편지 등 귀한 사료들을 발견했다.
적지 않은 그의 법정자료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수난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리영희 선생의 표현에 따르면‘반문화적 권력의 박해’에 대한 확실한 물증이 바로 여기 소개하는 사료들이다. 민주화운동 관련 사료들이 그렇듯이 리영희 선생의 그것이야말로 한 때 이 나라의 권력층과 그들이 만들어 낸 체제에 길들여진 의식 없는 사람들의 편견의 역사이기도 하려니와, 선생의 파란 많은 사회적행적의 증언인 셈이다.
리영희 선생에 대해 새삼 소개한다는 것은 객쩍은 일이다. 그는 평생을 언론인과 학자로서 살았다. 사람들은 그를‘행동하는 지성’또는 한 단어로 뭉뚱그려‘자유인’이라 일컫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자유인』은 그가 1990년 상재(上梓)한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는 사표 없는 시대의 진정한 스승이었으며 모두가 숨죽이고 자신의 생존만을 지키기에도 어려운 시대에 그가 쓴 기사 한 줄과 그의 책 원고 한 획 한 획은 그대로 살아 있는 사자의 포효였고 한 시대의 우뚝 선 좌표였다. 그가 쓴 많은 책들은 반공법의 법망에 1차적으로 포획되었다. 우리가 친미와 반공으로 세뇌 받고 무장되었을 때, 그리하여 지금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거나 존재하지 않는이름인‘중공’이나‘월맹’을 타도해야 할 원수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때『8억인과의 대화』나『전환시대의 논리』로 우리사고의코페르니쿠스적전환을일으키게했다.
 
 
그가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초청으로 독일에 잠시 거주할 때가 57세였다. 당시 필자는 하이델베르크의 네카 강위쪽‘하이덱거의 숲’이라일컫는풍광좋은그이의거처에 동료들과 함께 찾아가 술도 얻어 마시고 여행도 다녔다. 그에게는 혹 그때가 잠시 다가온 인생의 호시절이 아니었을까. 4년 후인 그는 환갑을 앞두고 또다시 구속되는 수모를 겪는다. 한겨레신문 창간기념으로 북한취재단 방북을 기획했다는 이유였다.
필경 그의 사주엔 입옥살(入獄煞)이 단단히 끼었던지 이미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였던 36살인1964년에 필화사건 ‘( 유엔총회 남북한 동시 초청 안’이란 지극히 사실적인 기사 때문이었다.)으로 구속된 것을 필두로 그 후 끊임없이 교도소행과 언론사로부터의 강제해직과 교수직 강제해직을 번갈아 당했다. 1977년엔 그의 책『전환시대의 논리』,『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로 구속·기소되어 징역형2년을선고받는다. 물론반공법위반이었다.
독재정권 시절 그들이 저지른 현대판 분서갱유로 무수한 책들이 이른바 판금도서목록에 오르는데 박정희 정권시 대표적인 판금도서 제일 앞에는 그의 책과 이름이 적혀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지만 지식인들은 책을 읽으며 그들이 꿈꾸는 민주주의의 세상과 만난다.
우리의 비루먹은 지성은 올바르고 균형 잡힌 지적 인식욕에늘목말라했다. 그래서몰래숨죽이며판금된책을구해 읽으면서 인식의 지평을 넓혀갔던 것이다. 편견의 장막을 걷어버리는데 그의 글만큼 명확한 근거와 진실만이 가질수있는도도함에견줄만한게드물던시절이었다. 그로부터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의 왕성한 집필은 뇌출혈로 인한 우측반신마비로 종언을 고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형형한 눈빛으로 시대의 전조를 꿰뚫고 예언자와도 같은 모습으로 우리 안에 우뚝 서 있다.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르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향방 잃은 우리들을 때론 준엄하고 때론 자애롭게 다독인다. 그는 지금 경기도 수리산 자락에서 격변의 역사를 살아오느라 헤진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조용히 생의 여적(餘滴)을 음미하는 중일 터이다. 스승 없는 세상, 그이가 새삼 그립스승 없는 세상, 그이가 새삼 그립다. 오래오래 사시길 바란다.
 
글/어수갑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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