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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 언니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8. 12. 23. 11:29

연옥 언니
사람들은 살면서 무수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데 그중에는 정말 보고 싶은데 못 보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여자에게 연옥 언니는 보고 싶어도 못 보는 그런 사람이다.


아버지가 남의 집 과수원 일을 해주며 겨우겨우 살아가는 집의 장녀였던 여자는 사실 고등학교도 겨우 다닐 수 있었다. 여자에게는 아래로 동생이 셋이나 있었다. 여자와는 한 살밖에 차이가 나질 않던 남동생은 공부를 썩 잘했다. 여자는 돈을 벌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열아홉 겨울, 아직 고등학교 졸업식도 안 끝난 여자는 어느 새벽 청량리행 열차를 타기로 하고 가방을 싼다. 여자의 아주 오랜 친구 명희가 환타 한 병과 정말 동그랗던 보름달 빵을 사서 건넨다. 병에 든 환타를 기차 안에서 어떻게 먹어야 하나 여자는 잠시 난감했다.
기차를 타기 전 여자는 남동생의, 지금은 제목이 생각 안 나는, 영어 참고서 속에 삼천 원을 끼워 둔다. 만두를 좋아하는 동생이 그 돈으로 만두를 사 먹었으면 했다.


그렇게 밤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온 여자는 카오디오를 만드는 공장에 취직을 했다. 여자는 컨베이어벨트가 다른 라인보다 빨리 돌던 A라인에서 전동드라이버로 나사못 박는 일을 했다.
연옥 언니는 여자와 등을 맞대고 납땜을 하던 다른 라인의 언니였다. 새까만 단발머리에 동그란 눈, 정말 터질 것 같았던 스물네 살의 연옥 언니. 굉장한 애연가였으며, 푸진 웃음을 가졌던 연옥 언니와 어떻게 친해졌는지 여자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처음에는 공장 탈의실에 바투 붙어있던 옷장을 같이 쓰면서 눈인사를 주고받았겠지. 그러고는 오전에 십 분, 오후 십 분씩 쉬던 그 짧은 시간에 서로 등을 돌려 깔깔거리기도 했겠지. 푸석거리는 점심밥을 먹고 나서 공장 3층 커피자판기 앞에서 만나 수다를 떨기도 하면서 친해졌겠지. 볕이 아주 환하게 들던 신화전자 3층.


여자는 공장 기숙사에서 살았다. 공장 옥상에 가건물로 지은 기숙사 방에는 앵글로 짜서 만든 2층짜리 침대가 있었다. 야근을 하고 난 밤에 자려고 누우면, 여자는 군불을 넣어 뜨끈뜨끈하던 고향집 아랫목이 그리웠다.
기숙사 방친구들이 빠져나간 일요일은 썰렁하니 더 추웠다. 별달리 갈 곳이 없었던 여자는 찬물만 나오던 공동 세면장에서 빨래를 하거나, 이불을 돌돌 만 채 엎드려 책을 읽었다. 유난히 추워서 호호거리던 일요일에는 어김없이 연옥 언니가 전화를 걸어 여자를 불러냈다. 따뜻하던 연옥 언니의 자취방은 시장 안쪽 맨 끝방에 있었다.


벙어리장갑을 낀 연옥 언니 손을 잡고 스무 살의 여자가 시장 길을 걸어 올라간다. 둘은 그 자취방에서 고등어를 구워 먹기도 하고 어느 날은 돼지고기를 빨갛게 양념해서 볶아 먹기도 했다. 여자는 늘 배가 고팠고 이상하게도 그 방에서는 뭐든지 맛있었다.
연옥 언니의 자취방에서 여자는 인애 언니랑 미선이와 함께 잔업이 없던 월요일과 금요일에 『노동의 역사』를 읽었다. 서로 돌아가며 발제를 하고 밤을 새워가며 이야기를 했다. 밤 10시까지 들어가야 했던 기숙사엘 못 들어가는 날엔 여자는 연옥 언니 자취방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자다가 깨보면 연옥 언니는 늘 엎드려서 책을 읽고 있었다.
“언니, 왜 안 자요?”
잠이 묻은 목소리로 스무 살의 여자가 묻는다.
“응, 잠이 안 와서.”
스탠드 불빛 아래 어둡게 흔들리던 연옥 언니의 얼굴을, 그 무수한 밤들을, 여자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공장 안에서 연옥 언니가 안 보였다. 며칠 뒤 여자는 다른 사람에게서 연옥 언니가 ‘공문서 위조’라는 이유로 공장에서 강제 사직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언니는 대학생이었으며, 위장 취업자였으며, 가짜 이름을 쓰고 있었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여자가 알고 있는 연옥 언니는 연옥 언니가 아니었던 거다.


여자는 연옥 언니의 진짜 이름이, 혹은 어느 대학을 다녔었는지, 그런 건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연옥 언니가 보고 싶었다. 아무런 인사도 없이 사라진 언니가 정말 보고 싶었다.
그러다 몇 년이 지난 어느 겨울, 까만색 외투를 입은 연옥 언니를 한번 만난 적이 있다. 잔업을 끝내고 공장 문을 나서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총총총 걷는 여자를 누군가 불러 세웠다. 연옥 언니였다. 언니의 머리와 어깨 위에 하얀 눈이 소복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여자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옛날에 자주 가던 술집에 마주 앉았다. 소주 두 잔을 연거푸 들이켠 연옥 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때 그냥 아무 말 없이 사라져서 미안했어.”
연옥 언니가 여자의 손을 잡는다. 여자는 눈물이 조금 났다.
“있지…… 대학 들어가서 처음 구로공단에 유인물 작업하러 나가던 날, 맘이 너무 아프더라. 낮이라 썰렁하던 공단을 그냥 마구 걸어 다녔어. 저녁이 되니까 솜털 보송보송한 내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막 쏟아져 나오더라. 창피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더라. 봄이었어.”
연옥 언니의 동그란 볼이 발그스름했다.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어. 그들과 함께 하고 싶었어.”
여자는 창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 밖으로는 쉬지 않고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헤어진 뒤 여자는 다시 연옥 언니를 볼 수 없었다. 연옥 언니가 알려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면 다른 사람이 받았다. 자꾸만 전화를 거는 여자에게 전화를 받는 사람은 화를 내기까지 했었다. 그렇게 여자는 연옥 언니를 만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여자는 늘 언니가 생각났고 늘 보고 싶었고 늘 궁금했다.


얼마 전, 여자는 인애 언니에게서 연옥 언니 소식을 들었다. 작년에 혈액암으로 다시 오지 못할 세상으로 갔다는. 여자의 마음이 낮게 가라앉았다. 그렇게 만나려고 애를 써도 안 만나지더니…….
연옥 언니, 다음에 좋은 세상에서 우리 꼭 만나요. 이제 다시 봄이다.


 

사진 황석선

글 류인숙

1969년 경북 안동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삶이 보이는 창 」에 글을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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