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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책 저런책] 활동의 시간인 낮의 햇빛이 중요하듯, 휴식과 내실의 시간인 밤의 어둠 또한 중요 『모모』 본문

문화 속 시대 읽기/이런책 저런책

[이런책 저런책] 활동의 시간인 낮의 햇빛이 중요하듯, 휴식과 내실의 시간인 밤의 어둠 또한 중요 『모모』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7. 16. 17:16

활동의 시간인 낮의 햇빛이 중요하듯, 휴식과 내실의 시간인 밤의 어둠 또한 중요
『모모』(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비룡소, 2009)

글 김락희 koocoo87@live.co.kr




아내는 가끔 동네 헌책방에서 책을 몇 권씩 사온다.
그 중에 오늘 소개할 책, 『모모』가 있었다. 김만준의 노래, “모모”가 생각났다.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 바늘이다”

뜻은 몰랐지만 뭔가 철학적인 가사에, 따라 부르기 좋은 멜로디라 어릴 때부터 흥얼거렸던 노래였다. 이제야 그 노래의 뜻을 알 수 있겠네, 생각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흔한 표현이지만, 그 책에 빠졌다. 그 뒤로 두 개의 책읽기 모임에서 나는 이 책『모모』를 추천했다. 함께 모모를 이야기할 때도 즐거웠다. 사람들 마음속에서 뭔가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책이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렇다.

어느 작은 도시, 오래된 원형 경기장이 있는 마을에 모모라는 꼬마가 나타난다. 나이가 몇인지 어디서 왔는지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아이지만 사람들은 모모를 좋아하게 된다.마을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생기면 "모모한테 한번 가보지 그래?" 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게 된다. 모모는 다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 별다른 능력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모모 앞에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느새 스스로 문제의 해답을 찾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도시에 회색신사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시간을 아껴야 한다며, 낭비하는 시간들을 아껴서 무언가 중요하고 화려하고 제대로 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그들이 저축해주겠다고 한다. 회색신사들과 계약을 맺은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고 아낀다. 이발사는 손님들과 세상사는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줄이고, 키우는 앵무새를 팔아 버리고, 카페 주인은 술 한 잔 시켜놓고 종일 자리를 차지하는 동네 노인들을 정중히 거절한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한가하게 모모에게 이야기를 하러 가는 사람도 없다.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은 점점 빈곤해지고, 획일화되고 차가워져만 간다. 그리고 그 사실을 눈치 챈 사람은 모모와 모모의 몇몇 친구들 외에는 없었다. 회색신사들은 시간을 저축해주는 존재가 아닌, 시간을 훔치는 존재임을 알게 된 모모와 친구들. 사랑하는 친구들인 마을 사람들을 회색신사로부터 구해내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책은 1970년 독일에서 나왔다. 그러나 회색신사들에게 시간을 도둑맞은 작은 도시는 2012년 한국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 책에서 제일 인상적인 것이 그것이었다. 우리가 독일의 40년 전 모습을 따라가고 있는 건지, 아니면 작가의 예지력이 뛰어난 건지 모르겠다. 이 책을 처음 읽을 때 나는 혼돈스러웠다. 시간을 아낀다는 회색신사들의 이야기가 뭐가 잘못된 건지 몰랐다. 만약 회색신사들이 나에게 제안을 했다면 난 틀림없이 그들과 계약을 맺었을 것이다. 시간을 아끼라는 말은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말이고, 거기에 의문을 가져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 혼돈은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풀려 나갔다.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친구와 골방, 그리고 온전히 스스로에게 열려있는 무위의 시간이다.” (이계삼,『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녹색평론사, 26쪽)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리는 시간이 아이들을 자라게 한단다. 하!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 글을 쓰려고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보니 텃밭에 심은 호박 생각도 났다. 올해 처음 집 주차장 자리에 텃밭을 만들어 고추 상추 들깨 등을 기르고 있다. 그 중 가장 잘 자라는 애는 호박이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전날 퇴근 때보다 넝쿨이 반 뼘은 자라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꽃이 전혀 피지 않는 것이다. 옥상에 장인이 심은 호박은 벌써 호박이 20개 이상 달렸는데, 우리 밭 호박은 잎과 줄기만 무성하게 커질 뿐 호박은커녕 꽃도 하나 피지 않았다. 장인어른이 그 이유를 말씀하셨다. 텃밭 바로 위에 설치되어, 밤새 켜져 있는 가로등 때문일 거라신다. 일리가 있다. 생명에게는, 활동의 시간인 낮의 햇빛도 중요하지만, 휴식과 내실의 시간인 밤의 어둠 또한 중요하리라.

“한번 음(陰)하고 한번 양(陽)하는 것을 도(道)라고 한다”(一陰一陽之謂道) (주역)

동양에서는 도(道)라고 부르는 진리의 기준을 자연에 두었고, 자연의 이치를 한 마디로 하자면 음양(陰陽)일 것이다. 도(道)의 뜻은 길이다. 길(道)이라는 것은 벗어나면 개고생, 심하면 죽음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시간을 아끼라는 회색신사들의 논리는, 음(陰)없이 양(陽)만을 강조하며, 음양이라는 길을 벗어나 죽음과 개고생으로 사람들을 몰고 가는 것이다. 회색신사들의 논리는 다름 아닌, 현대 산업사회의 논리이다. 물질적 풍요가 세상의 최고의 가치가 되었고, 이를 이루기 위해서 생산성, 성장, 효율, 경쟁이라는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듯 보인다. 그 논리의 결과 또한 회색도시 사람들의 모습과 같다. 아니 더 참혹한 듯하다.

희망은 없는가? 모모가 회색신사를 처음 만났을 때, 회색신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찬 기운과 공포를 이기고 던졌던 그 말, 결국 회색신사를 무너뜨린 그 말에 답이 있지 않을까?

“아저씨, 아무도 아저씨를 사랑하지 않죠?”
사랑, 너무 뻔한 답인가?

(사족: 김만준의 노래 “모모”는 다른 작가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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