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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 시대 읽기/이런책 저런책

[이런책 저런책] 즉흥성을 두려워 하지말자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2. 11. 01:08

즉흥성을 두려워 하지말자

『즉흥연기』 _ 연기와 숨어있는 상상력에 관한 이야기
키스 존스톤 지음 / 이민아 옮김 / 지호출판사

장종관/ zazajan8@gmail.com




아이들은 매 순간 역할 놀이를 하며 자란다. 그러다 교육 시스템에 들어가면서 연기와 놀이를 분리하게 된다. 연기는 배우들만 하는 것으로 여기며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배우만 연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사회 질서에 순응하고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게 살아가기 위해 연기를 하고 시간이 흐르면 자신의 연기처럼 자신의 역할을 규정하며 살아간다. 죽을 때까지 사회적 역할을 해내기 위한 연기를 하며 살아가야하는 삶, 때론 자신의 역할에 상상력을 불어넣어 보는 것은 어떨까?

『즉흥연기』는 연기를 하는 배우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자기표현 능력을 개발하는 데 두루 적용 할 수 있다. 하지만 교육 시스템 속에서 일반적으로 성장한 사람들은 이 책의 내용을 적용해 보려 할 때 여러 어려움에 직면한다. 이 책의 저자가 표현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벗어나야 할 ‘둔한 태도’는 나이에서 오는 불가피한 결과가 아닌 정규 교육 과정에서 오는 것이라 하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또한 표현 능력을 거세당하고 지적 능력을 신봉하는 교육 시스템 속에서 성장해 왔다.

지적 능력의 우월함에 길들여진 사회에서 정형화되지 않은 창작 활동을 하는 것은 뼈를 깎는 고통이다. 창작 활동을 할 때 영감이 떠오른다는 말을 한다. 영감이 작동하는 건 지식이 많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대상을 머리로 생각하는 동시에 가슴으로 느끼면서 그 느낌을 표출하고자 할 때 작동한다. 그렇지만 교육은 창작 활동을 가로막는 지식을 강조한다. 저자는 ‘시’를 알아가는 과정을 예로 들며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시를 느끼게 하기보다 분석하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시에 대한 지식을 강조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나또한 수많은 ‘시’를 배웠지만 ‘시’ 한 줄 써 보지 않고 지적 능력을 신봉하며 '좀 더 많은 시를 알고 난 후에…, 좀 더 완벽해진 후에…,' 라고 하면서 창작 활동을 자의 반, 타의 반 억압해 왔다.

공동 육아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지식교육보다 놀이를 강조하는 공동 육아의 이념이『즉흥연기』에 나오는 방법론을 실천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해 준다는 생각이 든다. 놀이로 관계 맺음하는 아이들을 보며 예술의 방법론을 생각해 보게 된다. 『즉흥연기』이론은 아이들의 세계와 창작 활동의 상관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책에 나오는 방법론은 예술뿐 아니라 정치, 사회, 교육, 문화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일상을 다각도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 중 '지위 거래 놀이'가 인상 깊다. 지위 거래 놀이는 배우들이 연기를 연습하는 방법론이지만 삶을 통찰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내가 올라가면 너는 내려간다.'라는 '시소' 원리를 이용한 배우들의 연기 수업에서 어느 한쪽이 계속 위에 있는 게 아니라 시소처럼 서로의 지위가 오르락내리락 한다. 여기서 세상의 지위들이 시소 놀이처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창조성이 아니라 ‘즉흥성’이다. 왜냐하면 창조성은 축적된 즉흥성의 결과물로 나오기 때문이다.

책에서 시종일관 강조하는 즉흥성을 연습하기 위한 방법에는 ‘즉흥 이야기 만들기’가 있는데 이 또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더 잘 이해된다. 왜냐면 정규교육 과정을 밟지 않은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아이 자신의 욕망과 잠재적 현실을 잘 드러내면서 '즉흥 이야기'를 만들며 놀기 때문이다.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말하는 것이며 이는 내면의 소리를 내는 것이다. 내면의 소리를 낸다는 건 자기 검열이 없을 때에 비로소 가능하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은 그 힘든 자기 검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내면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어 그 순간 현실과 괴리되지 않은 창조성을 지닐 수 있다.

창조성을 추구하는 창작의 궁극적 목적은 타인과의 소통이다. 즉흥성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내고 상대방과 깊은 소통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소통을 하기 위해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라고 조언하지만 정작 자신의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없다면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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