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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 시대 읽기/이런책 저런책

[이런책 저런책] 우리들의 말, 인간의 말을 되찾자!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2. 13. 23:38

우리들의 말, 인간의 말을 되찾자! 


 글 김락희/ koocoo87@live.co.kr


<마주 이야기, 아이는 들어주는 만큼 자란다> 박문희(2009, 보리출판사)



엄마: 민석아, 저 할머니가 90살이래.
민석: 우와! 그러면 100살까지도 살 수 있겠네.
엄마: 저 손주가 할머니 말을 잘 들어야 건강하게 오래 사실 수 있지.
민석: 내가 엄마 말 잘 들어야 엄마 오래 살아?
엄마: 그럼
민석: 그럼 엄마는 오래 살아도 나는 오래 못 살아.
엄마: 왜?
민석: 엄마 말 잘 들으려면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해야 되는데, 공부하라면 공부해야 되고, 밥 먹으라면 밥 먹어야 되고, 하지 말라면 안 해야 되는데, 그럼 엄마는 오래 살아도 나는 오래 못 살아.

동네 책방에서 책읽기 모임이 있는 날. 늦게 오는 사람들 기다리면서 판매대 위의 책들을 둘러보다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드문드문 책장을 넘기다 위 글을 읽게 됐다.

푸우하하~
말 그대로 빵 터졌다. 책을 사서 며칠 새 다 읽었다.

민경: 할머니, 애들이 때려. 엉엉.
할머니: 왜 때리노?
민경: 몰라. 괜히 때려. 엉엉엉.
할머니: 괜히 왜 때리노? 너는 손이 없나 발이 없나. 왜 못 때리고 맨날 울고 들어오나 말 이다. 엉?
민경: (양손을 내려다보면서) 할머니, 난 때리는 손 없어잉.

아이의 여린 마음에 눈물이 찔끔.
재미로 읽기 시작했는데,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
가끔 이럴 때가 있다. 큰 기대 없이 집어든 책이 마음 곳간을 든든하게 채우는.

마주이야기.
이 말은 한국글쓰기연구회 이오덕 선생님이 즐겨 쓰시고, 중요하게 강조하셨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 박문희 원장님은 이오덕 선생님한테 배운 마주이야기를 저자의 삶터이자 일터인 유치원으로 가져와 아이들의 맛있는 밥으로 만들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즐겨 듣고 따라 부르는 백창우의 시노래들(시노래집, 맨날 맨날 우리만 자래)도 이 마주이야기를 노래로 만든 것이란 걸 얼마 전에야 알았다.

아이들의 마주이야기는 우선 재미있다. 감동적이다. 말과 글에 마음이 그냥 그대로 보이니 금방 눈과 마음이 간다. 아이들이 평소 하는 “말”을 그대로 옮겨 적어 놓은 “글”일 뿐인데.

“글이 말의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의 밑에 있도록, 말을 살리고 말에 봉사하는 글이 되도록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근사한 글이 되도록 쓸까 하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말이 될까, 살아있는 말이 되도록 쓸까 하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글 가운데서 말을 가장 잘 옮겨 놓은 글, 아니, 말을 그대로 적었다고 할 수 있는 글이 소설이나 동화에 나오는 마주이야기(대화)다.”(<우리 문장 쓰기> 이오덕. 저자 인용)

이오덕 선생님의 말대로, 말을 그대로 옮기니 글이 살아나고, 말 중에도 마주이야기가 있기에 글이 더 살아난 것이다.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마주이야기를 “재미있는 글쓰기 교육” 정도로 생각했었다. 다 읽어보니 그게 아니다. 마주이야기 속에는 아이들의 생명을 활짝 꽃피우는 비밀이 들어 있다.

“세상에 태어나서 자란다는 것이 무엇을 알아간다는 것이 하나도 힘들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습니다.”(본문 78쪽)
“아이들 말을 들어주고 알아주고 감동해주는 교육을 하면, 아이들이 속 시원하게 자라고, 그 시원한 기분은 즐거운 자신감으로 쌓여갑니다. 즐거운 자신감으로 쌓이고 쌓인 자신감은 하고 싶은 것들로 가득 차오르고,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만큼 해내면서 자랍니다.”(본문 17쪽)
“우리가 주고받는 말을 잃었다는 것은 삶을 잃었다는 것이다...삶을 빼앗긴 모든 사람은 그저 주는 말만 듣고, 이야기만 듣고, 노래만 듣고 기계같이 움직인다...우리가 어떻게 하면 주고받는 말을 되찾을 수 있을까? 살아 있는 우리들의 말, 인간의 말을 할 수 있을까? 그 길은 단 하나뿐이다. 삶을 찾아 가지는 것이다. 기계가 되지 말고,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다.”(<우리 문장 쓰기>이오덕. 저자 인용)

모든 생명체는 기(氣)운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주기만 해도 살 수 없고, 받기만 해도 살 수 없다. 한의학에서는 들이고 내보내는 모든 존재의 기본법칙을 음양(陰陽)이라고 한다. 주고 받기가 잘 되면 소통이 잘 되어 건강하고, 그게 안 되면 막혀서 아프다. 문자를 쓰면, 불통즉통(不通則痛)이요, 통즉불통(通則不通)이다.

예를 들어, 살려면 공기(空氣)를 들이마시고 내쉬어야 한다. 들이마시기만 하면 터져 죽고, 내쉬기만 하면 쪼그라들어 죽는다. 또, 살려면 곡기(穀氣)를 먹고, 싸야 한다. 먹기만 하면 배 터져 죽고, 싸기만 하면 말라 죽는다.

말과 글도 기운이다. 마음이 먹는 양식이다. 주고받아야 한다. 조회 때 교장선생님 훈화말씀이 길어지면 아이들이 쓰러진다. 그것도 말을 듣기만 하고 뱉어내지를 못해서가 아닐까? 아이들 마음이 터지려고 한다. 아프단다. 답답해서 죽고 싶단다. 부모 말, 선생님 말 잘 듣기만 하면 터진다. 아이들이 시원하게 말하도록 들어주자. 마주이야기로 20년 동안 아이들을 돌본 박문희 원장님의 지혜를 빌려 보는 것을 권한다. 아이는 들어주는 만큼 자란단다. 그것도 시원하게. 하나도 힘들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게. 그게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어디 아이만 그럴까? 어른들도 좀 자라자. 키는 더 자라지 않아도, 마음은 자랄 수 있다. 마주이야기에서 한 수 배우면 어른도 자랄 수 있겠다. 연애의 맛도 밀고 당기기라고 하던데 그것도 마주이야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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