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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책 저런책]몰락선진국 쿠바가 옳았다. 본문

문화 속 시대 읽기/이런책 저런책

[이런책 저런책]몰락선진국 쿠바가 옳았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4. 13. 13:03

『몰락선진국 쿠바가 옳았다』

(요시다 타로 지음,  송제훈 옮김/ 서해문집, 2012)

 

 홍순성(회사원) 





“잔치는 끝났고, 이제 우리는 잔치 이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봐야합니다. (중략) 지난 수백 년 동안 값싸고 풍부한 화석연료와 몇 가지 환상 덕분에 우리사회에 형성되었던 어떤 특이한 생활방식이 이제는 끝나간다는 의미입니다” (에른스트 슈마허, Good Work)

슈마허가 “잔치는 끝났다”고 대중강연한 후 대략 40여년이 흘렀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화석연료와 성장의 환상 속에서 특이한 생활방식으로 살고 있다. 저자 요시다 타로의 몰락(沒落)은 하강, 탈(脫)성장이고 슈마허의 ‘잔치가 끝났다’는 선언과 같은 말이다.

이 책에 이르기 전, 나는 경쟁지상의 자본주의와는 다른 대안적 모델은 없을까 궁금했다. 그동안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경제성장, 개발이 발전이고 진보라고 배워왔고, 그것을 믿어왔다. 나의 생각이 흔들린 건 작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의 핵발전소 붕괴 이후다. 핵은 값싸고 안전하며 무한한 전기에너지의 공급원이라는 허구를 맹목으로 믿어온 데는 암암리에 순응된 과학기술 만능주의에 대한 동조가 있었다. 후쿠시마 이후 핵 방사능 없는 세계를 더 이상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수 없게 되었다는 현실을 자각한 것이다. 핵발전의 존립근거가 바로 성장에 대한 순응에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안은 없는지 알아보게 되었다. 탈핵, 협동조합, 북구의 복지국가, 쿠바의 이웃공동체에 관한 책도 접했고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도 만났다.

책머리에서 저자가 밝히듯 석유가 봉쇄된 경험을 가진 세 나라(제 2차 세계대전의 일본, 소련붕괴 직후 북한과 쿠바)중 의미 있는 수준의 탈석유 사회로 전환한 특별한 나라가 쿠바다. 저자는 쿠바를 세계유일의 초저공비행국가로 부른다. 고속으로 비행하는 제트기가 아니라 최소한의 동력으로 저공비행하는 글라이더나 복엽기에 비유한다. 쿠바는 세계자연보호기금(WWF)의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생태발자국(footprint)이 1.8글로벌 헥타르 이하인 세계유일의 지속가능한 국가다.


쿠바는 GDP가 높지는 않지만 교육, 의료, 문화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안전한 사회다. 석유와 비료가 없는 그래서 전기도 귀한 사회의 생존 비결에는 수준이 높은 교육과 의료체계가 있다. 여전히 쿠바인들은 육식을 좋아하고 곡물 수입비율도 높지만 도시 곳곳에서도 유기채소를 키우는 유기 농업국이다. 공동체 건축가들은 로마시대의 지혜로 만든 친환경 건축재로 소통하며 집을 짓는다. 쿠바는 모유육아를 위해 1년간 출산 휴가 할 수 있는 나라다. 요시다 타로에 의하면, 쿠바는 “돈과 물질보다 문화를 소중히 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쿠바에도 문제는 많다. 특히, 제 기능을 못하는 수직적 관료주의는 공무원의 천국을 만들었다. 그 폐해의 대표적 사례로 농지의 7할, 경작지의 6할을 소유한 협동조합형 농장인 UPBC를 든다. 그들은 소유한 농지의 절반만을 경작하고 있다. 이러한 비효율은 쿠바의 전체적인 식량자급률 침체의 원인이라고 한다. 또 다른 사례로 사탕수수가 원료인 제당업의 경우도 유사한 비효율의 사례다.

수직적 관료주의가 만드는 폐해와 대조적으로,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 민간부분에서는 상당히 긍정적이다. 지렁이 퇴비와 하우스에서 나오는 작물찌꺼기 퇴비를 활용하고, 담배에서 추출한 타바키나로 생물적 방제를 하는 등 유기농에 집중하고 있다. 품종개량에 있어 농민들의 참여부분은 시사되는 바가 크다. 농민들은 우수한 품종을 선별하여 키우기보다는 많은 품종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그들은 모든 “품종이 다 쓸모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태생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가족이라면 모두 잘 기르려는 부모의 마음으로 작물 품종을 대하는 것이다. 그런 농부들의 순수한 마음이 낳은 결과는 놀랍게 다양한 품종이었다.

유엔이 선정한 재난방재의 모델국가인 쿠바는 상습적인 허리케인의 내습에도 주변국가와 극히 대조적이다. “거듭되는 허리케인의 내습으로 막대한 물질적 피해를 입으면서도 사상자는 내지 않고”, 애완견과 함께할 수 있는 안전한 대피소가 곳곳에 있어, “피해자들도 길거리를 방황하지 않는” 덕분에 “그들은 대부분 해외로 망명하는 일없이 행복하게 사니”, 쿠바가 재난이 많은 일본의 모델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후쿠시마 이후 관서지방으로 대이동 심지어는 타국인 한국으로까지 집단으로 거주지를 옮긴다던지, 내각총리가 수도 이전을 고려한다는 뉴스를 보면 상당히 동의된다.

요시다 타로는 전작인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에서 쿠바를 환상적인 유기농업의 천국으로 수도 아바나를 도시농업의 이상향적인 성공 모델로 그렸다. 이 책은 전작 이후의 변화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있다. 그는 일본의 타산지석으로서 쿠바를 다루고 있다. 근대화이전 ‘느린 라이프스타일’의 에도시대와 현재의 쿠바를 오버랩하기도 한다. 나는 저자의 일본과 쿠바 오버랩을 한국과 쿠바로 바꾸어 생각해 본다. 지금 우리는 너무 빠른 사회에 살고 있다. 소비가 미덕이고 성장이 당연한 시대에 살고 있다. 금령신(金鈴神)은 수백 년 전 봉건시대에도 있었지만 지금은 스스로 자발적으로 자기를 착취하는 시대다. 사람의 존엄이 화폐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사회인 것이다. 그래서 ‘요시다 타로의 쿠바’를 읽고 물질적 안락함이 제거된 사회의 시민들이 살 수 있는 귀감을 얻을 수 있었다.

성장이 불가능한 고난의 시대가 역설적으로 그들이 ‘사람이 존엄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든’ 것일지 모르지만, 역시 쿠바 사람들과 그들의 공동체가 노력하고 헌신한 밑바탕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 사회가 지속가능한 사회가 되려면 안락함의 늪에서 벗어나는 개개인의 전환이 필요한데, 그 단순한 단어를 이루기 얼마나 힘든 것인지 생각할 때, 몰락선진국 쿠바인들에 대한 경의가 절로 생긴다. 그들에게 무한한 축복이 있을 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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