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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책 저런책] 데이비드 스즈키의 마지막 강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상상하라 본문

문화 속 시대 읽기/이런책 저런책

[이런책 저런책] 데이비드 스즈키의 마지막 강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상상하라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5. 10. 17:13

데이비드 스즈키의 마지막 강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상상하라 

데이비드 스즈키 지음 오강남 옮김/ 서해문집 


김장환(프리랜서 편집자)



“운명의 날 시계(Doomsday Clock) 1분 앞당겨져!”
미국 현지 시각으로 2012년 1월 10일,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는 1월 11일과 12일 언론들은 하나같이 이 뉴스를 보도하였다. 2010년 초에는 핵무기와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에 희망이 보인다고 하여 1분 늦춰졌던 것이 다시 1분 당겨지며, 지구의 멸망을 뜻하는 자정을 5분 남겨두었다고 보도했다. 다시 말해 핵무기와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이 적절치 못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다름 아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이 기사를 보도하는 언론들은 한결같이 ‘섬뜩하다’거나 ‘불안하다’는 느낌을 전하고 있다. 어찌 안 그렇겠는가? 전 세계적으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는 미국 핵과학자회보(BAS)의 발표이며, 지구의 종말이 진보나 보수 어느 한 편의 일은 아닐 터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기사를 접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점이 하나 있다. 바로 2010년부터 ‘핵무기’뿐만 아니라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이 운명의 날 시계의 초침을 움직이는 동인으로 공식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기후 변화는 일부 생태주의자들의 지나친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며 경제성장과 인류의 진보(?)가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슬며시 뒤로 밀쳐두었던 주제였던 걸 생각하면 아주 긍정적인 변화인 셈이다. 이제 환경은 명실공히 우리 인류 생존의 핵심주제로 정당한 자리를 찾은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을 앞에서 이끈 사람 중에 데이비드 스즈키가 있다. 일본계 캐나다 인인 그는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유전학자이자 환경생태주의자이다. 그런 그를 알게 된 건 우연이었다.


직업 때문에 생긴 버릇으로 그날도 광화문의 한 대형 서점을 둘러보고 있을 때, 인문학 신간도서들이 진열된 곳에서 발견한 책이 바로 <데이비드 스즈키의 마지막 강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상상하라>였다. 책 표지를 훑어보다가 뒤표지의 카피가 눈길을 잡아끌었다.

“인류의 생존 가능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경제 지상주의에서 생태 중심주의로,
위(危)에서 기(機)로,
지속 가능한 미래는 가능하다!”

그렇지 않아도 현 정권의 묻지마 개발에 파괴된 이 나라의 젖줄 사대강과 전국을 빠르게 연결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산들을 허무는 도로 공사, 심지어 평화를 명분으로 전함이 기착할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는 제주 강정마을의 공사 강행 등으로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이 책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중요한 활법(活法)을 제시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167쪽 분량의 얇은 책, 그나마도 인용문과 참고문헌을 빼고 나면 157쪽밖에 안 되는 이 소략한 책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었으나, 지속 가능한 미래에 대한 궁금증은 당장 책을 사서 읽어가게끔 했다. 그리고 데이비드 스즈키를 만나게 된 것이다.

저자는 70대에 접어들어서 마지막으로 남길 말을 이 책에 담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원제는 "The Legacy"이다. 유전학자이자 실천적 환경생태주의자로 살아온 그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을 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아주 긍정적인 관점이 돋보인다. 기왕의 환경 관련 도서들이 무차별적인 성장이 빚어낼 디스토피아를 제시하면서 자각할 것을 경고하는 반면, 데이비드 스즈키의 책은 따뜻한 시선으로 차분하게 우리들에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상상하”도록 이끈다.

그는 우리가 성장 지상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가 전 세계의 인류에게 건 마법을 찬찬히 풀어설명하고 있다. 물리학자 앨버트 바틀릿을 인용하여, “‘모든 체계 속에서 성장은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하는 살벌한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또 가차 없는 성장이란 불가능이라는 수학적 확증을 무시할 수 없다고도 했다.”고 성장 이데올로기의 허구를 명쾌하게 논증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부연한다.

“성장이란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은 어느 체계의 상태를 기술할 뿐이다. 성장이 어떻게 경제의 목표나 목적이 될 수 있는가? 무엇이 성장을 가능하게 했는가? 성장한 경제가 무엇을 위해 사용될 것인가? 성장이 인간이나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등 성장이 가능하게 되는 맥락이 중요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우리들이 더 바람직한 삶의 방향을 정립하지 못하는 이유를 밝히면서 성장 지상주의의 모래성 같은 기반을 허물고 시작한다. 그리고 박테리아 음식으로 가득한 실험관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구가 닥친 위기와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우리가 지금 59분대를 지났다고 하면 정치인들이나 기업가들은 화를 낸다. ‘가계에는 물건으로 가득 찼고 사람들은 더욱 건강하고 더 오래 살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나는 내가 한 말에 대해 사과할 마음이 조금도 없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나 손자들에게 돌아갈 정당한 유산을 사용하면서 모든 것이 문제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착각을 하고 있다.”

정치인이나 기업가들은 알면서 그러는지 정말 몰라서 그러는지 알 수 없지만, 지구멸망의 시간을 5분 앞에 둔 지금도 개발과 성장 지상주의로 일관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지구가 우리의 소유가 아닌 것이 명백한 것처럼 개발과 성장만능은 곧 파멸을 부를 것이 명백하다.

이에 저자는 생태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바이오필리아(biophilia)”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자연과 동떨어져서 독자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연 환경이 주는 너그러움에 깊이 파묻혀서, 그리고 그것에 완전히 의존하여 살고 있다.”는 관점으로 변화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공기, 물, 흙, 불, 생명의 다양성과 사랑과 정신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자연 그 자체와 교감하며 살아가고 있는 존재인지를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그리고 이러한 확신을 바탕으로 인류의 오래된 지혜에서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찾으며, “우리가 우리의 보금자리를 다시 찾고, 신성한 요소들과 균형을 이루며 사는 길을 찾고, 우리들의 진정한 재산인 기쁨과 행복과 의미 같은 것에서 풍요로운 미래를 창출하는 더욱 큰일을 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고 결론짓고 있다.


▲ 얼마 전 페이스북을 통해 널리 퍼졌던 새로운 패러다임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 에드워드 윌슨의 바이오필리아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가, 인간이 자연을, 환경을 함부로 할 권리가 있다는, 아니 경제적 발전과 효용을 위해서 헤쳐도 된다는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결코 이룰 수 없는 이상이다. 이것은 환경과 관련된 주체를 인간만이 유일하다고 하는 오만과도 관계가 있다. 환경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것이니, 그 자체가 환경이면서 그 환경의 수혜자이며 그 역도 성립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자연이 그저 자연이 아니며, 우리에게 단순한 자원이나 배경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해야 한다. 나아가 그 자연이 우리와 함께 숨을 쉬고 함께 지속 가능한 삶을 이어갈 이웃이자 피붙이라는 것을 선언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데이비드 스즈키가 마지막으로 남기려 한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러한 낙관엔 인간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전제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의 책을 읽는 동안 과거 생각 없이 행동했던 나의 행동에 대해 불편한 감정 대신 내 삶의 출발점부터 다시 돌아보게 하는 긍정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운명의 날 시계를 보며 느꼈던 심각함과 초조함 대신 새롭게 할 일에 대한 부푼 기대감과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고 함께 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질 수 있었다. 데이비드 스즈키의 “남기고 싶은 말(The Lagacy)”을 오래도록 가슴에 새기고 싶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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