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쓰는 민주주의
80년 서울의 봄 그리고 시뻘건 『무크 실천문학』 본문
1980년, 그 해 봄은 유난히 어수선하고 뒤숭숭했다. 정국의 향방은 오리를 넘어 십리 안개 속에 있었고, 온갖 억측과 소문이 발 없이도 한반도 남쪽 땅을 뒤덮었다.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을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구명 작업이 은밀히 벌어지는가 하면, 벌써부터 진원을 알 수 없는 쿠데타설이 생각 있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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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마저 감히 ‘역사에 던지는 목소리’였는데, 한술 더 떠, 제목 바로 밑에는 작지만 선명한 활자체로 감히 ‘민중의 최전선에서 새 시대 문학운동을 실천하는 부정기간행물(MOOK)’이라고 적어 놓고 있었다. 모든 게 낯설기만 했다. 아니, 낯선 정도를 넘어서서, 마치 만져서는 안 되는 미끈등한 남의 살을 만졌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실천, 역사, 민중, 최전선, 문학운동, 부정기간행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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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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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실패투성이였다. 장발은 잘리고, 청바지는 찢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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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순, 황석영, 이시영, 송기원 등이 그 단체의 주요 멤버였고, 당시 유일한 진보적인 문학지로서 외로운 싸움을 벌이던 계간 『창작과비평』과 별도로 문학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쳐나갈 진지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창간되었고, 무단은 그 단체의 대표 간사 고은의 필명이었고, 고은은 한때 제주에서 일 년에 천 병의 소주를 폭음한 『해변의 운문집』의 그 성(聖) 고은이었고,
무크(MOOK)라는 낯선 체제는 정기간행물이 필연적으로 지니게 되는 여러 가지 제약을 과감히 부숴 버리자는 의도로써 정기간행물(잡지: Magazine)과 단행본(책: Book)의 머리글자를 짜맞추어 만든 신조어였고, 그런 만큼 비상한 시국에서는 유격전의 선봉에서 탄력 있게 싸워나갈 수 있겠다는, 어찌 보면 무모하리만치 용감한 도전 정신의 산물이라는 사실 등등.
용감한 도전정신의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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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는 날 오후 같은 때, 해직기자 출신 사장이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문득 빠져든 회상 속에서 나를 건져내곤 했다.
보안사 요원들이 나를 잡으러 온 것도 그 실천문학사였다.
그렇게 해서 『실천문학』은 여리디 여린 문학청년이었던 내 운명까지도 송두리째 바꾸어놓게 되는데…… 한 권의 불온서적이 생을 좌우한다. 독자들이여, 어쩐지 불온한 기운이 감도는 책은 부디 신중하게 펼쳐보시기를! 그런데 요즘도 그런 책이 있기는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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