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민주화운동이야기 (85)
함께쓰는 민주주의
마음속 한 자락 들춰내. 그마저 아쉬워. -고문피해자 치유모임과 재단법인 진실의 힘 글·김양기 저는 전남 여수시에 살고 있는 김양기입니다. 86년 2월 21일 보안대 지하실에 끌려가 간첩으로 조작되어 7년형을 선고받고 징역을 살았습니다. 43일 동안 불법 감금 되어 있었으며, 고문을 당한지 24년이 지났습니다. 2008년 광주고등법원에 재심청구를 하고 개시되기만을 기다리는 중에 고문피해자 치유 모임에 참여 해보지 않겠는가 하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그동안의 진실을 밝히려던 나의 노력이, 말로는 다 표현되지 않는 모든 억울함과 고통들이 과거사위원회의 종이 몇 장의 조사보고서로 끝나는 것인가... 끝이 보이지 않는 허탈감속으로 깊이 끌려내려갈 무렵이었습니다. 막연히 모임 장소인 서울 삼성동 봉은사로 찾아갔습니..
우리 모두 행동하는 양심, 각성하는 시민이 됩시다. 그래야 이깁니다. 그래야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살려낼 수 있습니다. 그 길은 꼭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행동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바르게 투표하면 됩니다. 인터넷 같은데 글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 민주주의 안하는 정부는 지지 못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위기일 때, 그것조차 못한다면 좋은 나라와 민주국가 이런 말을 우리가 할 수 있겠습니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사 중에서
1987년 6월민주항쟁은 정치의 민주화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의 민주화를 촉진시켰다. 경제발전의 역 군이었으면서도 경제발전의 성과 배분에서 소외되고, 권력과 사업주가 요구하는 대로 열악한 조건 에서 장시간 노동을 해야 했던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익을 위해 6월항쟁 직후부터 수많은 사업장에 서 투쟁을 벌였다.
‘학살·2’ 중에서 김남주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날 낮이었다 낮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낮 12시 거리는 한 집 건너 울지 않는 집이 없었다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다 낮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 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리 처참하지는 않았으리 그 악마의 음모도 이리 치밀하지는 않았으리
학우여 대답하라 차라리 내가 쓰러질 것을, 당신이 가다니... 친구여 대답하라! 돌아간 벗이여 어서 말해 보시오. 상아탑을 뛰쳐 나와 정의를 외치며 썩어 빠져 문드러져 가는 내 나라를 바로 잡으려다 꽃다운 청춘을 총 앞에 버린 학우여! 못다하고 간 말이 있으면 어서 해보시오. 사나이로 태어나 끝내 남을 위해 일하겠노라고 외치던 그대가 아니었던가 쓰러지면서, 죽어 가면서, 죽었어도 외친 자유와 민주의 부르짖음이 아니었오 봄은 와도 당신의 다시 피지 못할 슬기롭고도 꽃답던 얼은 우리와 함께 우리에게만 살아 있오. 이제 어둡고 괴로웠던 칠흑의 저쪽에 먼동이 텄오이다. 진구렁 속에 처 박혀 숨막혀하던 민주주의도 잠을 깨기 시작 했오이다. 무어라고 말 해 보시오. 큰 일을 해 보겠다던 당신의 음성이 들리오 당신이..
다른 희망을 이야기 합니다 글·최현정 chhjung@paran.com 역사가 숨긴 고통이 당사자의 개인사가 아닌 모두의 아픔이 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역사의 트라우마라고 부를 힘을 얻게 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에게 고통을 가하는 실체에 반대하며, 앞으로 있을 고통의 연쇄를 끊어낼 수 있는 소중한 순간들을 체험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절박하게 그 체험을 바람에도, 그런 순간들을 탄생시키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때로 우리는 무언가를 희망할 수 없을 만큼 슬프고, 무력하고, 냉담합니다. 어떻게 희망하고 또 무엇을 희망해야 하는 것인지 싶을 때가 있습니다. 신년 초, 어느 방송사에서는 새해를 맞이하여 ‘희망’을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했습니다. 방송에서는 끊임없이 희망을 외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