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민주화운동이야기/이야기가 있는 사진 (42)
함께쓰는 민주주의
12월 섣달 이제 농가는 비로소 두 다리를 뻗고 휴식에 들어갑니다. 한 해 농사를 잘 갈무리해 결실을 얻은 농가에서는 웃음꽃이 피고, 어쩔 수 없이 아픔을 겪은 이들은 이듬해를 기약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네 모두가 온갖 병충해와 비바람에도 아랑곳없이 제 주어진 몫을 성실히 해냈다는 데 있습니다. 그럴 즈음 저는 한 산골 마을을 지나다가 사진에서 보는 풍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옥수수 알갱이를 섞어 밥을 지어줬던 마을에선, 마침 매밀 부침개를 서로 나눠 먹으며 섣달의 정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타관살이로 힘들 자식걱정도 하고 이웃마을 병든 김씨를 안타까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늙고 튼 손을 맞잡으며 서로를 의지하는 모습이 이 도회 사람 눈에는 더없이 정어린 모습으로 비쳐졌습니다. 한 해 농사가 이렇게 순..
11월 갈무리 비어 있었습니다. 장마와 뙤약볕을 이겨내고 결실 맺었던 풍요로운 들은 이제 긴 휴식에 들어갑니다. 그러면서도 촌사람들은 겨우살이 준비로 바쁜 하루를 보냈습니다. 피붙이 일가붙이 가릴 거 없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논 두둑 길로 추수한 볏가리를 싣고 돌아오는 할배의 경운기가 보입니다. 볏짐 탓에 짐칸에 타지 못한 손자 손녀가 뒤를 따릅니다. 늙은 할아비대신 기운 써야할 아비는 큰 도회로 돈벌러 간지 오랜 세월 흘렀습니다. 깊은 산 높은 곳엔 어느덧 첫눈이 왔다고 합니다. 그날 밤, 쌀쌀한 초겨울 바람이 툇마루 넘어 문풍지를 스쳤습니다. 고샅 쪽을 향해 가만히 귀를 기울이던 아이들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입동입니다. 충청남도 당진에서 찍었습니다. 글·사진|노익상 photree@hanma..
10월 가을걷이 대체로 요즘 농가에선 탈곡한 나락을 건조 과정 없이 바로 내는 ‘산물벼’ 출하를 많이 합니다. 제 값에 어림없는 끔인데도 서둘러 내는 것은 그만큼 어려움에 처한 농가가 많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는, 나라에서 팔아주는 곡식이 해마다 줄고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 그나마 있던 정부 수매마저 곧 없어지는 절박함이 앞서서입니다. 하지만 십여 년 전만 해도 우리는 길가나 너른 뜰에서 벼를 말리는 정겨운 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사진도 그렇습니다. 한 해 한번뿐인 농사에 온 가족 목숨이 걸려있는 물벼를 가을 햇살에 고슬 하게 말리는 할미 낯이 더없이 평화로워 보입니다. 해를 거듭해 물정이 바뀌어도, 이처럼 고운 햇볕이 내리쬐는 가을날 천천한 걸음으로 곡식을 뜰에 내는 정겨운 풍경이 ..
9월 결실 무더운 여름이었고 그만한 시련으로 알차게 곡식이 영글었습니다. 찾아간 산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된비알 가난한 따비밭이어도 그곳에서 자라는 고추와 배추는 제 양껏 푸르고 붉은 빛을 뽐냈습니다. 옹색한 밭 아래로는 작은 시내가 있었습니다. 물가에선 사내아이 두엇이 미역을 감고 있었습니다. “할마닌 쩌-게 아직 계시는데-에요. 저는…… 더워나 먼저 왔세에-요.” 파인더로 아이를 보며 두어 걸음 물러섰던 거 같습니다. 벗어놓은 단출한 옷가지 곁으로 호미 두 자루가 풀밭에 놓여 있었습니다. 아이 것이었습니다. 강원도 미탄에서 찍었습니다. 글·사진|노익상 photree@hanmail.net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칼럼니스트로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주로 제 땅과 집을 떠나 살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
8월 깃발 올벼를 심은 논에선 입추 무렵 이삭이 패기 시작합니다. 벼꽃이 피면서 열매가 영그는 것입니다. 그럴 때면 벼농사를 짓는 농부들 마음 또한 분주해 집니다. 다가올 추석도 그렇지만 때늦은 폭풍우나 태풍 그리고 멸구나 도열병 같은 병충해가 애가 쓰여서 입니다. 그 걱정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새입니다. 이삭을 향해 무리지어 대드는 새들은 농부들의 애를 태우기에 충분할 만큼 큰 피해를 줍니다. 보다 못한 한 농부가 제 아이와 함께 깃발을 들고 나섰습니다. 펄럭이는 줄무늬 깃발은 새들의 방향성을 교란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저어따 박고 와라! ‘새’ 자슥들! 햇가덩 허게 씨게 박어야 헌다.” 이 날의 수고로움으로 다가올 우리들의 추석이 풍요롭다 하겠습니다. 전라북도 김제에서 찍었습니다. 글..
7월 배추 섭씨 삼십 도를 웃도는 무더운 여름 날씨는 벼를 비롯한 여러 농작물이 튼실하게 자라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주변 장터에서 쉬이 눈에 띄는 배추는 서늘한 기운이 두루 넘쳐야 잘 자라는 좀 별스러운 채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름철에는 배추를 기를 수 없어서 더위에 잘 자라는 열무 같은 채소를 김치 삼아 담가 먹기도 했습니다. 그럴 즈음, 화전민이 본격 소개되던 1960년대 말부터 미처 산림으로 복원하지 못한 산간에서 채소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고랭지 배추나 무가 그것입니다. 700에서 1,200미터에 이르는 고산지대의 서늘한 날씨 덕에 무더운 여름철에도 배추김치를 밥상에 올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물론, 추분 무렵 심어 입동어름에 거두는 가을배추에 견주어 무르긴 합니다...
보리 6월 겨울을 넘긴 보리는 대체로 망종 어름에 수확을 합니다. 여기에서 알곡을 털어낸 보릿대는 집으로 가져오지 않고 논에서 태워버립니다. 볏짚과 달리 질기고 억세 짐승을 먹이기 사납고, 서둘러 모를 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즈음, 보리 알곡은 신작로 가장 자리나 농가 마당에서 건조 과정을 거칩니다. 이 집 할배도 그렇게 보리농사를 지어 제 집 마당에 보리알곡을 널었습니다. 할배는 마당에 널린 작은 알갱이를 맨발로 밟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쪼깐헌 것이 워뜨게 춘 결을 넘기는지, 내- 이적꺼지 신기허요!” 벼가 한여름을 이기고 보리는 추운 겨울을 견디는 게, 할배는 그 나이 팔순에 새롭다고 했습니다. 여름과 장마가 한달음에 찾아오는 유월입니다. 전라남도 구례에서 찍었습니다. 글·사진|노익상 ph..
5월 모를 내는 시기는 고을 마다 차이가 있겠으나 대체로 입하 즈음해 모를 심습니다. 물론 이년 삼모작을 하는 삼남 지방에선 보리 수확 여부에 따라 다소 시기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망종 무렵 보리를 거둔 논에서는 달포 가량 늦은 늦벼를 심고, 지난겨울을 그냥 넘긴 논은 올벼를 심는 것입니다. 그래야 추석 전에 거두어 논을 한 달쯤 묵힌 다음 보리씨를 뿌릴 수 있어서 입니다. 마침 마을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었습니다. 정오를 앞 둔 무렵, 찬거리를 파는 자동차 확성기에서 송대관의 노랫가락이 경쾌하게 들려왔습니다. 순간, 이앙기를 다루던 늙은 할배가 두렁에서 판 모를 손보던 할미를 보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따! 국시가 쪼까 먹고자픈디, 거~또 파까!” 할배 말을 들은 할미는 서둘러 길가로 나섰습니..
4월 대체로 조방농업에 기대는 산골 농사는 ‘부덱이’로 불렸던 화전으로 부친 땅에서 출발해 숙전화(熟田化)한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이렇게 마련된 밭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경우가 많고 경사가 심해 농기계를 쓰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갈이를 할 때도 소를 부려 쟁기를 끌게 하거나, 형편이 여의치 않은 농가에선 사람이 ‘극젱이’로 부르는 쟁기를 끄는 ‘인걸이’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갈이를 하면, 깊은 경운이 어려워 수확량이 현저히 떨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팔순을 앞 둔 이 늙은 부부는 저녁 어스름까지 밭을 갈았습니다. 한없이 가냘 퍼 보였던 할미의 양 어깨엔, 어느덧 손 바닥크기 만한 땀이 꽃무늬 옷감을 물들이며 베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사진기를 든 나를 보며 웃으며 ..
장날 3월 경칩을 앞둔 무렵 읍내에 장이 섰습니다. 들과 내 그리고 골짝에 자리 잡은 여러 마을 사람들은 이 날을 꼽아 이른 아침부터 서두르기 마련입니다. 지난 가을 거둬 채 팔지 못한 참깨며 말린 고추를 장에 내려는 채비를 하기도 하고, 농가에 소용될 여러 물품을 살 맘도 이날 하게 됩니다. 지금은 승용차가 집집마다 마련되고 대중교통 또한 편리해 장에 나서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불과 이십여 년 전만 해도 이 날은 닷새걸이 생활에서 가장 큰 행사였습니다. 소달구지를 타고 모처럼 장을 나선 노부부의 정어린 모습에서 당시의 소박한 일상이 묻어나는 듯 합니다. 1988년 경상남도 합천에서 찍었습니다. 글·사진 노익상 photree@hanmail.net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칼럼니스트로 196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