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민주화운동이야기/이야기가 있는 사진 (42)
함께쓰는 민주주의
서울 정동 세실 레스토랑 세실 레스토랑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 관련이 깊은 이유는 6월민주항쟁 등 민주화운동 역사의 과정에서 기자회견, 성명서 발표 그리고 큰 일을 앞둔 민주 인사들의 회동 장소로 자주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10일, 세실 레스토랑은 숱한 민주화 운동사의 사연만 남겨놓고 문을 닫았다. - 사진제공 경향신문
2·4보안법 파동 1958년 제 3차 보안법 개정으로 촉발된 2·4 보안법 파동으로 수많은 시민과 야당의원들이 시위 과정에서 폭력적인 경찰에게 연행되고 부상자가 속출했다. 야당 국회의원들조차 무장 경찰에게 연행되는 상황이었으니 일반 시민들의 처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전국에서 국민들이 보안법 개악을 규탄하는 규탄대회와 시위를 벌였으며, 온몸으로 항의하기도 했지만 정권유지를 위한 최후의 수단이라고 판단한 이승만 정권에게도 다른 대안이 없었다. 한국 민주주의는 이렇게 처절한 과정을 거치며 생명력을 갖고 성장해왔다. 2.4 국회파동을 규탄하며 민권사수 구호가 적힌 유인물을 뿌리는 민주당원 사진제공 경향신문
부마항쟁 1978년 12월 12일 실시된 제 1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집권 공화당의 관건, 금권 동원에도 불구하고 제 1야당이던 신민당이 총 유효표 가운데 여당보다 1.1% 더 득표하였다. 이는 박정권의 장기독재와 개발독재를 반대하는 민심의 반영이었다. 이러한 민심이반 현상은 1979년 10월 부마항쟁으로 표출되어 유신체제의 몰락을 재촉했다. 시민과 학생들의 시위가 번지자 박정희 정권은 장갑차를 탄 무장 군인들을 투입할 정도의 위기 의식을 느끼게 된 것이다. 사진제공 동아일보
위수령 1965년 4월 한일협정이 가조인되자 고등학생, 대학생들의 반대데모가 폭발하였다. 그 결과 휴교 조치와 조기방학 조치가 취해짐으로써 데모는 잠시 잠잠해졌다. 그러나 8월 22일 개학이 되면서 다시 학생데모는 시작되었고 더욱 격렬해졌다. 경찰병력으로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박정희 정권은 서울 일원에 위수령을 발동했다. 이에 따라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에 휴업령이 내려지고, 정치교수라는 이름으로 일부 교수가 학교에서 추방되었다. 사진제공 동아일보
사진제공 경향신문 광부일기 1 검게 벌린 아가리 속으로 꾸역꾸역 밀려들어가 카바이트 칸데라 불빛 벤또 뚜껑 물 한 모금에 가족들 얼굴 떠올리고 - 시 이상훈
1987년 7·8월노동자대투쟁 1987년 7·8월노동자대투쟁은 한국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파업투쟁으로 발전하면서 노동자들의 생활향상과 노동운동의 발전에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울산지역의 현대그룹 노동쟁의에서 상징되듯이 대공장과 중공업 부문의 노동자들이 대거 노동운동의 중심세력으로 부상하면서 향후 본격적인 대중적 노동운동의 출발을 예고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사진제공 경향신문
1987년 여름 시청광장 1987년 이맘때 쯤, 시청 앞 광장에서는‘독재타도’와‘직선제 개헌’등 정치적 민주주의를 바라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엄마 품에 안긴 채 “거짓 없는 나라에 살고 싶어요”라고 외치는 듯한 아이의 얼굴이 이채롭다. 이 땅에 살고 있는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가 21년이 지난 2008년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사진제공 경향신문
6월항쟁으로 민주주의의 큰 길이 열릴 수 있었던 것은 학생운동권, 재야민주인사, 야권이 민주대연 합의 큰 틀 속에서 합심해 투쟁했기 때문이다.…… 6월항쟁은 3·1운동 이래 시위 참여자가 가장 많 았고 3·1운동처럼 전국 각지에서 각계각층이 참여했다. 일반 대중이 이처럼 많이 참여한 것은 독재 정권의 장기화나 독재정권의 통제, 17년 전까지 있었던 직선제가 실시되지 않고 계속 체육관대통령 이 나오는 것에 대한 불만이 컸기 때문이었다. - 『한국현대사 60년』(서중석) 사진제공 경향신문
5·18민중항쟁 1980년 5월 그날의 남도를 표현하기에 이 사진 한 장이 너무도 부족하지만 수많은 민중들의 넋이고스란히 배어 있는 그곳의 5월은 뜨겁기만 하다. 장갑차를 앞세우고 총칼을 든 계엄군 앞에서 민중 들은 어떤 저항을 할 수 있었을까, 평범한 직장인과 교복을 입은 여고생, 구멍가게 아저씨와 세탁소 아주머니까지 그날 그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5월민중항쟁 중 자식을 먼저 보낸 어미가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이 온통 주름살로 짓붉었다. 사진 김녕만 사진제공 (재)5.18민주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