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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 시대 읽기

<상상, 행동>전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9. 7. 17:04

<상상, 행동>전

글 / 김상규(서울과학기술대 디자인학과 교수)





2007년 10월에 접어든 어느 날 제법 많은 디자이너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공공기관이 준비한 행사도 아니었고 더구나 유명 작가의 전시도 아니었다. 그저 조그만 디자인 스튜디오가 10년 동안 작업한 내용을 공개하는 자리였으니 의외의 풍경이었다. 사업한 지 10년 넘은 디자인회사가 한둘이 아니고 또 그 회사가 10개 모였다고 이렇게 관심이 높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다시 그런 일이 가능할까 의문이 들 정도다. 그로부터 다섯 해가 지나는 동안, 디자인이 뭔지 잘 모르던 사람들도 디자인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뉴스와 신문에서 거의 매일 ‘디자인’ 얘기가 흘러나왔다. 쓸어담고 싶을 만큼 부끄럽고 한심한 내용도 있었다. 이제 디자인이라는 낱말은 입에 담기도 힘들 정도로 사나운 꼴이 되었으니 2007년, 그 전시장에서 보았던 것과 함께 나눈 얘기들이 소중해 보일 밖에.




상상하고 행동한다

시각디자이너인 김영과 장문정, 사진작가인 손승현을 중심으로 꾸려온 디자인 스튜디오 AGI는 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수백 점의 주요 작업들을 정리했고 500쪽에 육박하는 책을 함께 펴냈다. 당시 전시의 큐레이터를 맡은 김태현은 이들을 “보다 나은 세상을 상상하고 그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전시된 내용은 한 그룹의 창작품이라기보다는 10년간 “시민사회단체나 공공기관과 연대하고 대중들과 소통하는 가운데 탄생”한 결과물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전시와 함께 펴낸 책은 그 십 년의 시간을 두고두고 증언해 줄 기록이 된다.

전시가 열린 광화문 갤러리는 전시 공간이 좌우로 대등하게 나뉘어 있는데 그 특성을 살려 한쪽은 현실을 드러내고 발언했던 그래픽 행동주의를, 또 다른 한쪽은 대안을 모색해 온 문화행동 인문주의로 구성되었다. 전시는 ‘불복종의 이유’에서 ‘느린 희망’으로 변화와 확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내러티브는 80, 90년대를 겪은 청춘들에게는 당연한 흐름이었을 것이다. 1998년 지하철역에 부착되었던 포스터 <실업대자보>에서 보듯 외환위기라는 왜곡된 경제구조의 피해자들에 대한 관심부터 학력차별, 탄핵반대, 비전향장기수 등 사회문화를 가로지르는 작업들이 소개되었다.

구체적인 사안들로 보면 한국 사회에 국한된 것 같지만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경제와 정치가 변동하는 과정과 동떨어지지 않았다. 실제로 체코와 독일에서 이 작업들이 그곳의 매체와 전시로 소개되어 동시대적인 가치를 입증받기도 했다.




공공적인 것을 상상한다

이쯤에서 2001년에 열린 전을 떠올리게 된다. 그 당시에 디자인이 공공성을 갖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상상이었다. 그런 만큼 즐겁고 용감했을 것이다. AGI는 ‘대통령 선거 포스터’로 상상하고 그 결과를 전시했다. 이미지의 시대에 걸맞게 이미지 정치를 표방하던 시기에 정치적 스펙터클이 얼마나 대중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기회였다. 또한 대통령 후보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도 없을 텐데 왜 선거 홍보 포스터에는 언제나 후보가 어린이를 안은 채 ‘억지 미소’를 날리고 있어야 하느냐는 소박한 이의 제기이기도 했다.

이 당시만 해도 공공디자인 광풍이 불어오리라 예측하진 못했다. 우리가 상상했던 디자인의 공공성은 본질을 비껴간 채 표피적인 사업으로만 실현되었을 때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디자인의 공공성에 대한 상상>에서 ‘공공성’은 흔히 말하듯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디자인’이라거나 공공장소의 디자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엔, 디자인 분야가 관심 갖지 않던 부분에 디자이너가 참여하는 것 자체만으로는 부족할 뿐 아니라 와전되어 엉뚱한 방향으로 갈 위험까지 내포하고 있었다.

형식에만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부터 제안하고 참여하는 것이 필요해진 것이다.




스며들기

전시에서 후반부에 속하는 2005년 전후의 AGI의 활동은 직접 행동보다 내용의 변화에 주력한 모습을 보여준다. 출판의 경우, 책을 기획하고 내용을 함께 만들어가는 일이었는데 국어교사모임과 교과서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예가 된다. 교육 콘텐츠는 생각과 작업의 연결, 그리고 그것이 공감과 변화로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레 일어나는 좋은 매개체였다.

2007년에 전시와 도록을 준비하기까지는 이러한 내용과 형식의 결합에 한창 힘을 기울일 때였다. 그리고 시민과 디자이너가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고조되기 시작한 때이기도 했다. 그 와중에 문제의식을 공유하려는 것이 전시의 큰 의미였다.

이렇게 본다면 스며들기 전략은 잘 맞아떨어졌다고 하겠다. 적어도 그 당시는 그랬다. 디자이너들이 관심을 가졌고 토론하는 자리도 생겨났다. 2007년 10월 6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세미나실에서 열린 <시민과 디자인>이라는 이름의 세미나도 그 중의 하나였다. 오랫동안 예술가들이 고민했던 것처럼 디자이너들도 사회와 어떻게 만날 것인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대안을 찾는 노력도 있었다. 그것이 전시와 출판으로, 온라인 커뮤니티로, 프로젝트로 표출되었다.

그렇지만 한 해가 지나자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서울시와 문화부에서 시작한 공공디자인 사업은 다른 부처와 지자체까지 들썩이게 하면서 디자이너의 자발적인 노력이 관공서로 흡수되고 만 것이다. 겉으로 보면 AGI가 보여준 결과물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애초에 품었던 시민과의 연대와는 점점 멀어져 갔다.




‘소셜’해진 한국 사회

상상행동전이 열린지 5년이 지난 지금, 전시장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흥분된 표정은 지금 다시 찾기 어렵다. 어쩌면 2007년에서 한걸음도 더 나가지 못한 채 그 고민을 여전히 끌어안고 있는지도 모른다. 2008년부터 겪었던 한국사회의 혼란을 생각하면 퇴보하지 않은 것만으로도(정말로 퇴보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5년 전 전시를 통해서 지금껏 의미 있는 한 가지 결실은 전문 창작 집단들이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디자이너가 시민 운동에 참여한 일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오늘날 표현을 빌면, ‘재능 기부’와 같은 것이었다. 물론 그것의 의미가 작다는 얘기는 아니다. 상상행동전은 디자이너가 사회적, 정치적 행동에 시각 표현의 서비스를 도와주는 것에서 한 걸음 나아가 디자인 활동 자체가 사회적, 정치적 행동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러니 AGI society의 경우, 디자인회사 이름에 그냥 ‘society’를 붙인 건 아니다. 디자이너든 건축가든 스튜디오가 ‘society’라는 이름을 내걸고 또 다른 조직을 만든다는 것은 직업 이상의 태도를 표명하는 셈이다.

이제 디자이너들의 관심은 먼 땅으로 향하고 있다. 공정해야 하고 착해야 하는 것. 그것이 최대의 관심사가 된 것 같다. 묘하게도 기업과 정부가 여기에 호의적이다. 그들의 태도가 바뀐 것일까? 한 술 더 떠서 디자인이 서울을 어떻게 살릴까, 한국을 어떻게 살릴까, 제3세계 농민을 어떻게 살릴까, 지구를 어떻게 살릴까 고민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웃에 대한 고민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연스레 보호막이 형성된 것 같다. 지난 5년간 왜 이같이 묘한 상황으로 변했는지 모르지만 디자인을 포함하여 시각문화 분야가 자기검열을 강화하면서 먼 곳을 바라보는 훈련을 해온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상상, 행동>전이 열리던 그 해, 지구 반대편에서는 ‘나머지 90%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the Other 90%)이 인기몰이를 했다. 이 사건에서 오늘의 상황을 설명할 한 가지 단서를 찾을 수 있다. 9•11 사태 이후에 미국의 디자인과 건축은 이 전시로 인해서 (2차 대전 후 풍요의 시대를 연출한 이래) 다시 한 번 미국인의 호응을 얻게 되었다. 이라크 전쟁과 희생의 소용돌이에서 뒤틀어진 미국 국민의 심사가 아프리카와 남미의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으로 위로를 얻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 물결이 어느덧 ‘사회적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도착해 있다. 또 다른 경로를 통해서, 주코티 공원에서 99%를 외치는 시민의 목소리도 도착했다. 우리가 ‘사회’, ‘소셜’이라고 불렀던 그것이 90%를 위한 것인지, 99%를 위한 것인지 오늘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땐 적어도 ‘소셜’의 의미를 페이스북과 커피잔에서 찾진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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