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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 시대 읽기/영화 속 시대읽기

슈팅 라이크 베컴

기념사업회 2003. 7. 1. 16:03

슈팅 라이크 베컴


방학을 맞은 아이들에게 권할 수 있는 건강한 영화, 어른들이 함께 보아도 즐거운 영화를 고르기란 쉽지 않다. 쌍둥이 사이에도 세대 차가 있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로, 세대간 틈이 사회 문제로 거론되는 현실이니까. 여기에다 교육과 재미까지 겸비해야 한다니, 이보다 어려운 과제가 없겠다.

서울 YMCA 산하 ‘건전 비디오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건비연)에서 분기별로 선정하는 ‘청소년을 위한 좋은 비디오’가 그나마 객관적으로 권할 수 있는 작품 목록이 될 것 같다. 선정 작품들은 책자를 만들어 각급 학교와 도서관에 무료 배포하고, 또 작품 판매전도 열고 있다. 10여 년 넘게 이런 작업을 해오고 있는데, 아직도 학교나 단체의 시청각 담당 선생님들로부터 “어떤 작품을 권해야할지, 어디서 구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문의가 들어온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온 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정보가 넘쳐나 취사선택의 어려움을 하소연하게 될 텐데, 이처럼 무심하다니.

봄과 여름 시즌 선정 작품 중 자신 있게 추천하고픈 영화로 <슈팅 라이크 베컴 Bend It Like Beckham>을 꼽고 싶다.

 

슈팅 라이크 베컴


인도소녀와 영국소년의 
축구사랑과 우정

이민 2세대인 인도 소녀 제스(파민더 나그라)와 영국 소녀 줄스(키이라 나이틀리)는 축구 선수를 꿈꾼다. 그러나 부모님들은 “요리를 배워 얌전하게 시집가라, 여자다운 옷차림으로 남자들과 데이트를 해라” 라며 잔소리를 퍼붓는다. 여성 축구단의 앞날도 불투명해보이는 데다 축구 코치(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에 대한 연모로 두 소녀의 우정마저 삐꺽거린다.

미남 축구 스타 베컴처럼 멋진 슈팅을 꿈꾸는 인도 소녀, 뽕 브래지어보다 스포츠 브래지어를 택하는 영국 소녀. 두 소녀가 세대, 인종, 문화, 여성에 대한 편견을 넘어서 축구로 우정을 돈독히 하고, 미래를 함께 개척해가기까지의 과정을 밝고 재미있게 그린 영화다.

 슈팅 라이크 베컴
 

<슈팅 라이크 베컴>은 재미와 교훈의 두 요소를 잘 안배한 장점 많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흥행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정말 이해하기 힘든, 화가 나는 부분이다. 혹시나 제시 언니의 결혼식을 중심으로 한 인도 색채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슈팅 라이크 베컴>과 같이 비교해볼 수 있는 <나의 그리스식 웨딩 My Big Fat Greek Wedding> 역시 미국에서의 놀라운 흥행 성적과는 달리 국내 흥행 성적이 형편없었다. 이 역시 그리스식 결혼 소동극이라 외면당한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에선 헐리웃 이외 영화, 흑인이 나오는 영화는 흥행이 안 된다는 오랜 불문율이 있다. 그러니 인도 소녀가 축구를 한다거나, 그리스식 결혼 소동극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가장 저렴한 비용과 시간으로 다양한 문화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영화의 기능이, 왜 우리나라에선 이처럼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는 것일까. 혹 그것이 단일 민족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폐쇄성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학대,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 사람들에 대한 멸시와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인종, 문화, 여성에 대한 편견을 넘어선

다양한 문화의 공존을 유머러스하게 그린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단일 민족인 것이 속상할 정도로 부럽다. 똑같은 얼굴의 사람들과 똑같은 생활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그것도 반동강 난 반도에서 사는 것이 숨 막히게 느껴질 때, 더더욱 문화 공존을 찬미하는 영화들이 부럽게 다가온다.

물론 <슈팅 라이크 베컴>은 다양한 문화의 공존을 일방적으로 찬양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여러 인종과 문화가 어울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토로하는 영화다. 인종이나 문화뿐만 아니라 이민 1 세대와 그 자녀들의 가치관 차이, 영국과 영연방의 주종 관계, 성에 대한 고정 관념으로 생긴 직업 분류, 계급 차별, 동성애에 대한 편견까지, 다양한 차이와 차별을 묘사한다. 물론 이 모든 다름에 대해 넋두리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헤쳐나가야할 가치가 있는 즐거운 과제임을 상기시킨다. 이 과제 수행에는 부모님이건 자식이건, 영국인이거나 인도인이거나, 남성이거나 여성이거나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이같은 교훈을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 인도계 영국 여성 감독 거린더 차다는 유연한 연출을 구사한다. 차다는 DVD의 코멘터리에서 영화 제목이나 영화의 주요 소재로 영국의 축구 스타 베컴을 등장시킨 점, 특히 Bend라는 단어를 쓴 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베컴은 성실한 가장 이미지와 동성애자들에게마저 인기를 얻고 있는 너그러운 의외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 베컴의 슈팅은 약간 굽은 곡선인데, 상대로 하여금 예측을 어렵게 하는 커브에서 유연함이 느껴진다” 직구보다는 커브 볼, 즉 강경한 발언보다 축제와 같은 흥겨운 분위기로 주제를 전달하려한 감독의 우회적인 연출 방향과 맞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슈팅 라이크 베컴>이 축구 열기와 베컴의 이미지에 관해서까지 토론할 수 있는 좋은 텍스트가 되고 있다.

이민 2세대인 감독의 경험  

<슈팅 라이크 베컴>에는 이민 2세대인 감독 자신의 경험담이 녹아있다. 감독 역시 제시처럼 직업, 여성성, 가치관의 모든 면에서 부모와의 갈등을 경험했다고 한다. 차더 감독은 이 저예산 영화를 찍을 때 부모님은 물론 친척, 남자 친구, 친구들을 동원했다. 엑스트라 비용 절감을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덕분에 자신의 직업에 대해 가족과 주변의 이해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제시의 친구인 영국인 소녀 줄스의 어머니가, 축구를 좋아하는 딸을 이해하기 위해 축구 규칙을 배우는 장면이 진솔하게 다가오는 것도, 이런 감독의 체험담 덕분일 것이다.

넉넉하게 생긴 차더 감독의 호탕한 영화 해설은 영화못지 않게 유쾌하고 재미있다. 감독에 대한 이해 덕분에 영화를 한 번 더, 기꺼이 보게 된다는 점도 <슈팅 라이크 베컴>의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글 옥선희
DVD 칼럼니스트
oksunny@ymc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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