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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비리사건이 떠오른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0. 11. 16. 11:01

수서비리사건이 떠오른다


 

글·어수갑 eohsgkdemo.or.kr

 



가을이 깊어간다. 작년 이맘 때 지리산을 종주하다 하산 길에 산끝 유평마을에서 따온 들국화를 말려 차를 만들었다. 그 고풍스럽고 은은한 차향이라니. 그런 소소한 것들 속에도 우주는 깃들어있다. 작은 것에서 큰 것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위로한다. 흔들리는 들꽃과 부는 바람과 등굽은 능선 위로 뉘엿이 지는 일몰이 지친 삶의 위로가 된다고, 이 욕심 많은 세상을 살며 나는 굳게 믿는다. "오직 두 가지만이 영원하다. 그것은 우주와, 인간의 멍청함이다." 이것이 아인슈타인의 말이라면 다소 의외로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멍청함은 대부분 욕심에서 비롯한다. 욕심이 과하면 눈이 멀고 그래서 바로 앞에 전개될 자신의 운명조차 가늠하지 못하게 된다. 돈이나 권력에 대한 과욕은 자신뿐만 아니라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 살아간다는 이유만으로도 그와 사슬처럼 엮여진 타자들에게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언젠가 박노자 교수가 한국인들을 지배하는 실질적 이데올로기는 "민족주의도 자유주의도 아닌 냉소주의와 가족 내지 의사(擬似)가족 단위의 이기주의의 조합"이라고 비판했던 적이 있는데, 러시아 혈통의 귀화 한국인인 그의 날카로운 지적 앞에 순수 한국인으로써 솔직히 부끄러움이 앞섰던 기억이 새롭다. 그렇다. 지금 한국을 떠도는 유령은 돈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 돈을 가지고 잘 먹고 잘 사는 것, 그 이상의 가치는 실종된 지 오래다. 그것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 귀결이 비리백화점, 부패공화국이다. 베를린에 있는 NGO 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국가별 부패지수에 따르면 180개 조사국 중 대한민국의 청렴도는 고작 39위에 불과했다. OECD 국가 중 거의 끄트머리를 차지한다. 그 이유가 대체 뭘까. 너 나없이 나만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덕목이라 여기는 풍조 때문은 아닌가.

부패공화국의 비리백화점, 태광그룹 비자금 사건

태광그룹의 비자금의혹 사건으로 연일 시끄럽다. 편법 증여의 종합판이자 비자금 공장 이라는 태광그룹은 케이블 업계에서 1위 자리를 굳히고 있는 재계 40위권의 기업인데,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촉발된 태광그룹과 그룹 회장 일가의 비리 의혹이 눈덩이처럼 부풀고 있다. 내부 고발자에 의해 거론된 비자금 액수가 수천억~1조원에 이르는 데다 정·관계 연루 의혹이 제기되면서 전형적인 대형 비리 수사로 비화하는 양상이다. 주목되는 것은 방송사업 확장을 위한 로비 대상으로 청와대와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방통위 관계자들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실제 2008년 방송법 시행령 개정으로 티브로드가 큐릭스를 인수, 케이블TV 시장점유율 22%의 업계 1위가 된 것으로 볼 때 정치권이 태광그룹에 맞춤형 특혜를 줬을 개연성이 높다고 한다. 지난해 3월 태광그룹 관계자가 방통위에서 청와대로 파견된 행정관과 방통위 간부들에게 향응과 성접대를 한 사실은 이미 노출된 바 있다.

그 많던 돈은 누가 다 먹었을까?

권위주의 정권시절 큰 손들의 뭉칫돈은 대부분 대통령이 직접 챙겼다고 한다. 당시 재벌회장의 최측근 비서였던 지인으로부터 직접들은 바로는 그는 지금의 서울지방경찰청 근처에 있던 내자호텔의 약속된 방으로 가서 경호실 담당자에게 각서를 쓰고 그들의 차로 바꿔 타고 궁정동 안가로 가서 대통령에게 직접 돈을 전달하곤 했다 한다. 그런 돈의 밝혀진 일부가 예컨대 전두환의 2,205억 원이다. 그는 1997년 대법원으로부터 추징금 확정 선고를 받고도 배째라로 일관하며 단돈 29만원으로 십여 년째 살고 있다. 최근 "강연료 수입이 생겼다"면서 고작 300만원을 검찰에 납부해 1,600억 원이 넘는 추징금의 시효를 연장한 전두환 전 대통령, 참 뻔뻔하시다. 국민을 우롱함이 도를 넘었다. 노태우 정권의 6공 황태자 박철언이 챙겨놓고 어떤 여교수에게 관리를 부탁하다가 떼어먹힐 뻔 했던 괴자금 178억 원의 정체도 국민들은 추측만 할뿐 시효소멸로 추궁도 못한다. 이것이 부패공화국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여기에선 6공화국에서 일어났던 최대의 권력형 비리사건을 살펴보기로 한다.

노태우정부 최대의 권력형 비리수서사건

1991년 2월 3일 <세계일보>의 특종보도로 드러난 노태우 정부 최대의 권력형 비리인 수서택지 분양특혜 사건은 정·경·관이 유착한 대형 스캔들이었다.

같은 해 1월 21일 서울시는 강남 수서택지개발지구 토지 35,000여 평을 주택조합에 특별공급키로 했다고 발표했으나, 이 땅은 서울시가 아파트를 지어 무주택 서민들에게 분양해야 할 땅임이 밝혀졌다. 검찰 조사 결과 서울시가 발표한 특별 공급은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이 수서지구택지조합 임원과 공모하여, 조합 측으로 하여금 국회에 택지 공급에 대한 청원을 내도록 한 뒤, 국회·정부 관계자·청와대에 뇌물을 제공하고, 장병조 청와대 비서관을 통해 서울시와 건설부 등 유관 기관에 압력을 가하여 택지를 공급한 것이다. 유착에 관여된 인물이 청와대·정부·국회·서울시, 여야 정치인 등 거의 모든 정계·관계에 퍼져있다는 특징이 있고, 특히 청와대와 당시 야당이었던 평민당이 서울시에 선처 요망 공문을 보낼 정도로 정파와 정당을 막론하고 정경유착이 되어 있었다.

정·관계에 걸친 이런 총체적인 부정부패에 당시의 진보정당이었던 민중당은 3월 2일 오후 3시 파고다 공원에서 당원과 학생, 시민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수서특혜 은폐조작 부패정권 규탄대회를 가진 후, 을지로입구역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민중당은 이날 대회에서 수서비리의 본질은 청와대·행정부·여·야당·독점재벌이 빚어낸 유례없는 구조적 범죄라며, 비리의 주범을 색출 처단할 때까지 지방자치제 선거 등 정부의 정치일정을 거부하자고 촉구했다. 또 계훈제, 강희남 목사 등 재야 인사 40여 명과 함께 서울 종로구 통일문제연구소에서 이틀째 철야농성을 벌이는 도중, 이 집회에 참석한 민중당 상임고문 백기완은 특별검사제를 도입하여 수서 사건을 전면 재수사 할 것을 주장했다.

참가자들은 대회가 끝난 후 서울시청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려고 했으나, 경찰의 제지로 을지로입구역까지 행진한 뒤 해산했다. 또 광주 전남 민주연합 등 광주지역 재야 단체 인사 및 시민 200여 명도 이날 오후 1시 40분쯤 광주 화니백화점 앞에 모여 수서비리 진상규명 촉구 시민대회를 갖고 가두시위를 벌였다. 평민당의 김대중 총재도 3월 9일 보라매공원에서 열린 수서비리 규탄 국민대회에서 수서사건의 책임이 청와대에 있다며 짜맞추기 수사의혹 등을 폭로했다. 3월 16일엔 비리대책회의 주관으로 수서비리 은폐 정권 규탄 국민대회가 열려 전국적으로 국민연합, 전노협, 전대협 소속 24,000여 명이 시위를 벌였다. 수서비리 사건은 낙동강을 페놀과 염소로 오염시킨 페놀사건 등과 함께 노태우 정권 후반에 집중적으로 표출된 각종 비리의 대표적인 사례로, 정권에 대한 대중들의 분노와 반감을 부추겼으며, 물가 폭등과 주택문제 등 민생파탄의 지속으로 누적된 국민들의 분노는 다른 요인등과 함께 향후91년 5월투쟁의 배경이 되었다.

수서사건의 진상은 4년 후 노태우 비자금 사건 수사를 통해 밝혀졌다. 검찰은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이 청와대 안가에서 한보그룹 회장 정태수로부터 수서택지 분양 청탁과 함께 4차례에 걸쳐 150억 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을 밝혀냈다. 참고로 후일 노태우는 2,629억 원의 추징금 선고를 받았으며 이중 2,345억여 원을 납부해 추징실적이 전두환에 비해 좋은 편이다.

노태우가 전두환보다는 덜 뻔뻔?

부패와 비리가 판칠수록 국민들은 살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사람들은 가난한 것에 화내기 보다는 오히려 불공정한 것에 더 화를 낸다. 이미 공자가 논어 계씨편에서 말한 바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이다. 잘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지금 태광그룹의 비자금 사건뿐 아니라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비자금 사건,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 기업인 효성그룹 비자금 사건 등 현정권 들어서도 아직 전모가 밝혀지길 기다리는 비리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우리는"임기 중 어떤 친인척·권력형 비리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시시때때로 공언하곤 했던 대통령의 말씀에 주목하며 귀추를 기다린다.

글·어수갑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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