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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다시 보는‘민간사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0. 8. 11. 09:36

2010년, 다시 보는‘민간사찰’

 

글·어수갑 eohsgkdemo.or.kr


대통령을 비방하는 동영상을 인터넷 사이트에 퍼옮겼다는 이유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을 불법사찰하고 온갖 불이익에 처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자 관련자 몇몇이 옷을 벗었고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공직복무관리관실’로 서둘러 개명을 했지만, 국민들의 의혹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 사건의 본질이 ‘정권실세’에 의한 ‘공권력의 사병화’에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실세의 하나가 ‘영포회’란다. 영포회? 회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는 그것을 처음 듣는 순간 무슨 생선회 이름인줄 알았다.

민간인 사찰로 국정 농단하는 세력 있다면 ‘화학적 거세’ 해야

특정지역을 매개로 권력 실세와의 직거래가 이뤄지는 구조에서 감시기관인 지원관실은 공식적 업무범위나 권한에 얽매이지 않는 무소불위의 ‘사찰권’을 휘두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해관계로 뭉쳐진 그들의 추잡한 행태는 한 여당의원의 고백으로도 100건이 넘는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비정(秕政)을 일삼는 비선(秘線) 실세들의 왜곡된 ‘순혈주의’ 앞에서 그들과 애초 혈통이 다른 대다수 국민들이 느끼는 심정은 분노에 앞서 이대로 놔두다간 나라가 절단 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일 것이다. 국정을 농단하며 호가호위하는 세력에 대해 요즘 세간에 회자되는 ‘화학적 거세’라도 해서 단호한 의지를 보이지 않는 한 국민들의 신뢰는 멀어지고 정권의 레임덕은 가까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나라를 위해 불행한 일이다.

끝없이 불거지는 민간인 사찰의혹


무릇 사찰이란 대중에 대한 노이로제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우리의 곡절 많은 현대사에도 사찰의 상처는 곳곳에 있다. 민간인 대량학살이라는 가증할 범죄로 기록된 ‘보도연맹사건’으로부터 방첩대·중정·보안사·안기부·기무사 등의 이름으로 자행된 각종 사찰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정통성 없는 권위주의 정권 때나 있을 법한 민간인에 대한 사찰 의혹은 현정권 들어서도 끊임없이 불거졌다. 국정원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사찰 논란, 기무사의 민주노동당 당직자 행적 조사, 이른바 ‘좌파’ 교육감 후보 지원 상황에 대한 경찰의 조사, 기무사의 쌍용자동차 사찰, 한국노총 공공연맹위원장 미행, 방송가의 ‘블랙리스트’ 논란, 그리고 최근의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의한 민간인 사찰에 이르기까지. 국가기관들이 사찰경쟁이라도 벌인단 말인가? 열손가락으로 헤아리기도 숨찰 정도다.

윤석양 이병,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기록 공개 양심선언


과거 대표적인 민간인 사찰사건 하나를 살펴보자. 군 복무 중 보안사에 파견돼 이른바 ‘수사협조’를 해 오다 양심의 가책으로 1990년 9월 23일 탈영한 윤석양 이병은 10월 4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국군 보안사가 군 관계 정보수집 및 군 수사업무 외에 김영삼 민자당 최고대표위원, 김대중 평민당 총재, 이기택 민주당 총재 등 여야 현직 의원 등과 종교언론·문화·예술·노동·학원가 등 사회 전반에 걸쳐 1,300여 명의 민간인을 대상으로 정치사찰 및 동향파악을 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윤 이병은 이에 대한 증거물로 탈영 당시 보안사에서 지니고 나온 동향파악 대상자 색인표 1,300여 장, 개인신상카드, 개인별 동향파악 내용이 입력된 컴퓨터 디스켓 30여 장 등을 공개했다. 사찰 대상자의 개인신상카드에는 가족사항, 경력, 교우 및 배후 인물, 개인 특성 등 모두 9개 항목이 기록되어 있었고, 집의 담장 높이, 예상 도주로 및 은신처 등까지도 세밀히 파악되어 있었다. 그리고 주요 동향파악 대상자에게는 담당관 1명이 지정돼 매달 말 한 차례씩 대상자의 발언 내용, 접촉 인물 등을 담은 ‘문제인물동향관찰보고서’를 작성토록 했다고 말했다.
외대 러시아과에 재학 중이던 윤석양은 학생운동을 하다 4학년 때 제적되었으며, 1990년 5월 입대 후 운동권 전력으로 말미암아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연행되어 운동권 수사에 협조하던 중 민간인 사찰기록을 갖고 탈영한 것이다.

“민간인 사찰 책임 노태우 정권 퇴진하라”

그동안 물증 없이 추측만 했던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이 현실로 드러나자 이를 규탄하는 움직임이 광범하게 일어났다.
10월 7일 오전, 보안사의 집중 사찰을 받아 온 야당과 재야단체회원 등 70여 명은 을지로 2가 향린교회에서 대책회의를 갖고 성명을 통해 노태우 대통령이 불법사찰에 관련돼 있는지 여부가 밝혀져야 한다며 관련이 있다면 즉시 대통령직을 사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0월 8일 전대협은 “이번 사찰은 현 정권이 내각제 개헌을 하기 위해 벌인 사전정지작업”이라며 노태우 정권의 퇴진을 주장했다.v 10월 13일 오후 서울 동작구 보라매 공원에서도 ‘보안사 불법사찰 규탄과 군정 종식 국민대회’가 열렸다. 이날 대회장 연단 좌우에는 보안사 사찰 대상으로 알려진 정계, 재야, 학계 등 인사 100여 명이 흰 종이에 푸른색 매직펜으로 쓴 자신들의 사찰고유번호를 왼쪽 가슴에 붙이고 참석했다.

대학생과 국민연합, 민중당 등 재야단체 회원 및 시민 등 2만여 명은 보라매 공원 정문을 나와서 대방전철역까지 4차선 도로를 점거한 채 1시간 동안 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이날 ‘해체 보안사’, ‘타도 노태우’등의 구호를 외치며 대방동 로타리에 도착하여 저지하는 경찰과 맞섰다. 40개 중대 6,000여 명의 경찰은 시위대를 해산하는 과정에서 대학생 등 163명을 연행했다.
정국이 엄청난 회오리에 휩싸이자 국방장관과 보안사령관이 해임되고 보안사는 기무사로 개편됐다. 한편 윤석양은 1992년 9월 체포돼 군사법원에서 2년형을 선고받고 94년 11월 만기 출소했다. 이상이 20년 전에 일어났던 보안사의 민간인사찰에 대한 윤석양 이병의 양심선언 사건 전모이다.
세상의 흐름이 과거로 역류한다. 과거는 ‘오래된 미래’이던가? 하지만 역사는 과거가 아니다. 신영복 선생의 지적처럼 역사는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생환하는 것이다. 현재의 실천 속에서 생환된 역사만이 힘이 된다.

사유화된 권력은 폭력이자 인권에 대한 저주

“사유화된 권력은 이미 이성을 상실한 조폭의 힘에 지나지 않는다. 국격, 국격 하는데 사찰이야말로 국격 떨어지는 가장 저질스런 폭력이고 인권에 대한 저주”라는 작가 서해성의 일갈을 곰씹을 필요가 있다. 아주 조그만 공공기관의 말석에 있는 필자같은 범부도 글을 쓰면서 마음 속의 보안장치가 나도 모르게 작동하여 스스로 자기검열을 해야 하는 심리상태를 종종 경험한다. 내가 비정상인가, 아니면 시대가 수상한 것인가. 불특정다수가 거대한 신경증에라도 걸리는 게 오히려 당연한 시대, 알아서 기는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글·사료 어수갑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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