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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 시대 읽기/이런책 저런책

[이런책 저런책] 책, 권력을 재구성하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4. 11. 19. 00:42

책, 권력을 재구성하다

‘권력’을 키워드로 한 신간 소개


글 김남희(knh08@kdemo.or.kr)

 

 

 

권력은 왜 줄곧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일까.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의 시대에서 언제부턴가 권력은 모두가 아닌 소수를 위한 것이라는 불만이 나오고, 소외되는 사람들이 늘어 가고 있다. 오늘날 직면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시대의 권력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서점가에 새로 나온 책들 중에 바람직한 권력에 대한 고민이 담긴 책들을 꼽아 소개한다. 이 책들이 권력의 끝이 아니라, 권력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적을 찾는데 일조하게 되기를 바란다.


     

▲도덕적인 정치를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가

  <워터게이트>, 밥 우드워드/칼 번스타인, 오래된 생각, 2014년 9월

 

▲도덕적인 정치를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가 <워터게이트>, 밥 우드워드/칼 번스타인, 오래된 생각, 2014년 9월


권력에 대한 과도한 욕망은 때로 부정행위를 부른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국 대통령 이던 리처드 닉슨 측이 1972년 재선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상대 후보에 대한 불법적 첩보활동과 선거운동 방해공작, 이를 은폐하려는 공작 등의 사건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책 <워터게이트>는 워싱턴포스트의 풋내기 기자들인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워터게이트 불법침입으로 시작해 닉슨 대통령 사임이라는 특종을 보도한 이들의 치열한 취재 기록이며 드라마틱한 미국의 역사이다. 


닉슨을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린 것은 도청 사태 그 자체는 아니었다. 하원의 닉슨 탄핵안의 사유는 사법 방해와 직권남용죄였다. 결국 닉슨 낙마에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은폐와 부인이었다. 번역본 절판 뒤 30여 년 만에 국내에 재출간된 이 책은, 우리사회와 정치권에 정의로운 사회와 도덕적인 정치를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하마터면 ‘3류 좀도둑 사건’으로 끝날 수 있었던 사건을 한 나라의 대통령직을 흔드는 사건으로 비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28, 9세의 신참 기자들의 공로이다. 그들은 사건의 열쇠인 돈줄을 추적해 불법선거자금의 돈세탁 과정을 폭로하고, 재선위원회 직원 명부를 입수해 저녁때마다 야간 방문 취재를 통해 쉽사리 말하려 하지 않는 취재원들에게 진정성으로 호소하고, 선거 방해 사례들(케네디 상원의원 스캔들 캐기, 민주당 머스키 후보 투서 조작, 맥거번 후보 사찰, 국방부 문서를 폭로한 엘스버그의 정신과의사 사무실 불법침입 등)을 수집하며 그 사건들이 단순한 개인적 일탈 사건이 아니라 권력을 쥔 정권의 최고위층까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양파껍질 벗기듯이 하나하나 밝혀나갔다. 이미 탐사보도의 고전으로 유명한 책의 진가는 이러한 순간순간들마다 발휘된다.

 

 

▲위로부터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사람을 중심으로 한 전쟁사 읽기

  <가면권력>, 한성훈, 후마니타스, 2014년 9월



▲위로부터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사람을 중심으로 한 전쟁사 읽기 <가면권력>, 한성훈, 후마니타스, 2014년 9월



이 책은 한국전쟁 시기 국가가 자국민, 특히 민간인을 학살했던 대표적인 두 사건인 국민보도연맹 사건과 거창양민학살 사건을 다룬다. 단순히 전쟁의 부수적·우연적 피해라기보다 국가가 이들을 자국의 ‘국민’이 아니라 ‘내부의 적’으로 범주화했고 상부의 명령에 따라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이 두 사건은 국가와 국민(시민)의 관계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필자는 1999년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문제를 접한 후 희생자와 가족, 가해자들을 직접 만나고 현장을 다니면서 활동가와 연구자, 기자, 변호사 등과 함께 이듬해에 시민단체인 민간인학살진상규명범국민위원회를 조직했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일했다. 따라서 책은 필자가 발로 뛰어 얻은 풍부한 정보들을 담고 있다. 사건의 배경과 경과, 희생자의 특징, 가해 기관의 역할과 명령 체계 등을 상술하면서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의 실상과 구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가에 대한 성실한 기록과 더불어, 사건의 가해자, 피해자, 생존자 및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저자는 가해의 책임을 말할 때 ‘국가’를 지목하는 것은 지극히 추상적이며, 그 결과 불처벌이라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직접 가해자는 학살을 집행한 군인과 경찰 등이지만, 위계 구조에서 명령을 내린 최고위층 또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저자는 이승만 정부의 최고위층, 검찰, 경찰, CIC 등의 역할을 증언과 자료를 통해 보여 주며, 어떻게 평범한 사람이 가해자가 되는지를 살펴본다. 희생자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어떻게 ‘내부의 적’이 되었는지, ‘망각에 저항하는 기억의 투쟁자들’로서 생존자와 유가족들이 정권이 몇 번이나 바뀌고 60여 년이 넘도록 진실을 규명하고 위령비를 세우기 위해 싸워 왔는지를 보여 준다.


사건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올해 들어 국민보도연맹 사건과 관련해 중요한 두 건의 판결이 있었다. 2014년 9월 3일 부산고법 민사5부는 울산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희생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항소심에서도 법원이 국가에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했다. 또한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형사부는 국민보도연맹원 열 명과 관련해 국민보도연맹 사형 판결이 난 지 64년 만에 재심 결정을 내렸는데, 국민보도연맹원 희생자에 대한 재심 결정은 작년 2월 충남 지역에 이어 두 번째다. 유해 발굴도 아직 진행 중이다.

 


 

▲권력과 자본에 맞선 한국 시민운동의 20년사

  <사건으로 보는 시민운동사>, 차병직, 창비, 2014년 9월


▲권력과 자본에 맞선 한국 시민운동의 20년사 <사건으로 보는 시민운동사>, 차병직, 창비, 2014년 9월


     

20세기의 마지막 10년, 한국의 민주주의는 격변기에 서 있었다. 19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의 거대한 흐름 후에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지면서 민주화시대가 성큼 다가온 것만 같았다. 그러나 권력형 비리, 정경유착의 어두운 고리는 끊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민주화는 더딘 걸음으로 진행되었다.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한국 시민운동은 이러한 배경 아래서 탄생했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들의 열망은 정치·경제 분야는 물론이고 일상생활의 영역까지 파고들며 변화를 이끌어냈다. 한국 시민운동사 주요한 사건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책 <사건으로 보는 시민운동사>(이하 <시민운동사>)가 반가운 이유다. 


책의 1~2부는 기존 연구 문헌들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한국 시민운동의 여러 장면들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사법사상 최대의 스캔들로 불리는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 당시 시민사회 역량을 총집결해 당사자 책임을 물었던 일부터, 한보철강에 대한 제일은행의 위법한 특혜대출의 책임을 묻기 위해 시작된 소액주주운동 등이 그것이다. NGO의 주장과 관심이 직접 영향력을 행사한 드문 예로 꼽히는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도 있다. 무엇보다 저자인 차병직 변호사가 참여연대 창설 당시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으로 시작해 참여연대의 요직을 두루 거쳤던 만큼, 한국 시민운동의 가장 큰 축을 담당했던 참여연대의 20년사에 대한 기록이 치밀하다. 


한국 시민운동단체의 활동가들은 큰 이데올로기 보다는, 소외된 작은 권리를 찾기 위한 치열한 싸움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를 받아 안고 최전선에서 싸워온 사람들일 것이다. 책의 3부는 창설 당시부터 깊이 관여해온 참여연대에 초점을 맞춰 창설부터 이어진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시민 속으로 파고들기 위한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의 논쟁을 다룬다. 4부에서는 폭발적인 활동과 성장 이후의 내부 결속력 문제부터 운영자금 및 활동공간에 대한 현실적 제약까지, 시민운동가라면 누구나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다뤘다. 

 

 

▲99%의 시민이 알아야 할 진짜 권력의 세계

  <권력의 거짓말>, 강해인, 모아북스, 2014년 7월


▲99%의 시민이 알아야 할 진짜 권력의 세계 <권력의 거짓말>, 강해인, 모아북스, 2014년 7월


한국의 정치 권력자들의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되는 것은 언제나 정당성의 문제였다. 한국의 역대 지도자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정치권력을 획득함으로써 민주주의 자체를 무력화시켜, 사회 발전에 쏟아야 할 에너지를 모두 권력 유지와 해체에 쏟아 부어온 것이 지금까지의 한국 정치사였다.


또 하나의 문제로 지목되는 것은 과도한 권력 집중. 일부 기득권층에 힘이 집중됨으로써 다양한 사회 세력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없었고, 국민은 국가이익을 위한 하나의 부속품으로 전락했으며, 그것이 국민의 행복할 권리를 빼앗고 정치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힘의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은 한국 사회는 구성원을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누고 정치권력은 철저히 지배층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면서 현재 사회를 극도로 분열시켜 놓았다.


<권력의 거짓말>은 한국 정치와 권력의 거짓을 돌아보며 한국 정치의 후진성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살피고, 미래지향적인 정치를 논의한다. 현직 정치부 기자의 시선으로 정치권의 이모저모를 살펴봄으로서 현재의 사회 모순을 파악하고, 그동안 국내외 권력의 세계에서 벌어진 대표적인 사건들을 통해 여전히 부당한 권력이 건재하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는 권력에 대한 분석서다. 


한국의 정치는 아직도 정권교체가 주요 관심사. 대통령 하나 바꾸는 데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으며, 이것이 정치적인 불안정으로 이어지고 갖가지 사회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게끔 만들고 있다. 국민들의 삶과 직접 관련된 법안들이 정치 셈법에 의해 국회를 표류하고, 정치권의 에너지는 엉뚱하게도 간첩을 잡아내고 사회를 분열시키는 데 쓰이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 사이 고통을 받는 건 서민들이다.


그러나 희망은 건전한 시민사회에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여러 권력자의 사례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권력을 가진 자도 못 가진 자만큼이나 권력 관계의 굴레에 갇혀 구속을 받는다. 따라서 한국 정치인들이 갇힌 굴레를 풀어주어 온당한 정치가 이루어지도록 만들 수 있는 이는 권력을 움켜쥔 자들이 아닌 바로 국민들이라는 것이다.


이제 한국도 정치권과 국민들 모두 더 발전된 정치를 누려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권력에 접근하고자 하는 사람과 불온한 권력을 해체하고자 하는 사람, 양쪽이 함께 우리 정치 현실에 대한 미래지향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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