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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질박함과 끈끈함의 세계, 블루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3. 6. 26. 10:52

어떤 질박함과 끈끈함의 세계, 블루스

 

글 서정민갑(대중음악의견가)/ bandobyul@hanmail.net

 

 

한국에서 블루스(Blues)만큼 오해받고 있는 음악이 있을까요? 블루스라고 하면 대부분 이른바 무도장에서 남녀가 바싹 붙어서 느리게 추는 춤만 떠올리곤 하니까요. 물론 블루스라는 형식의 춤이 없는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블루스는 단순히 춤만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블루스의 시작은 분명 흑인 음악이었고 춤도 그 음악에서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블루스를 음악이 아니라 남녀가 사랑을 확인할 때 추는 춤으로만 생각하더군요.
블루스에 대한 오해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많은 분들은 블루스를 뭐랄까 좀 더 질박한 느낌의 트로트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대전부르스>를 비롯해서 한국에서 ‘블루스’ 혹은 ‘부르스’라는 단어를 포함해서 발표된 400여 곡들 가운데 대부분의 곡들은 블루스 음악이 아니라 트로트 음악이거든요. 그래서 어쩌면 블루스를 그냥 트로트 음악에서 곡 제목을 붙이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계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는데요. 아닙니다. 블루스와 트로트는 엄연히 다른 음악입니다. 한국에서 왜 블루스가 트로트 음악에 제목으로 자주 사용되었는지는 반드시 연구해봐야 할 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블루스는 대체 어떤 음악일까요? 다음이나 네이버, 구글 같은 포털 사이트에서 블루스를 검색해보면 비슷하게 나오는 말이 있는데요. 블루스는 흑인 음악입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건너와 미 대륙에 원래 살던 인디언들을 강제로 쫓아낸 다음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들을 많이 끌고 왔고 지금 미국에는 그들의 후예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블루스는 바로 그 흑인 노예들이 시작한 음악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노예들은 당연히 영국에서 건너온 유럽인들의 음악이나 인디언들의 전통음악이 아니라 자신들이 아프리카에서 듣고 부르던 노래들을 불렀습니다. 구전 음악의 전통이 강한 아프리카의 민요는 우리나라의 민요들이 그렇듯 선창하고 따라하는 구조로 되어 있었고 가사 역시 우리나라의 민요들이 그렇듯 삶의 애환을 진솔하게 담은 노래들이었습니다. 음악의 정서도 당연히 아프리카적인 질감이 배어 있었습니다. 미국의 흑인들은 목화를 따고 엄청난 노동에 시달리면서 아프리카에서 그랬던 것처럼 일할 때마다 노래를 불렀습니다. 당연히 그 노래 가사는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자신들의 비참한 삶과 슬픔을 노래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노래는 일할 때뿐만 아니라 흑인 교회의 예배와 찬양 같은 흑인들의 일상으로 이어져 흑인 영가 스타일로 발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흑인들의 블루스는 미국의 컨트리 웨스턴 음악을 만나 음악적으로 다듬어지면서 한 번의 중요한 변화를 겪게 됩니다.


그런데 흑인들이 노예 해방을 거친 뒤에는 약간의 자유를 얻게 되었고 흑인 사회에서 노래를 잘하는 이들은 흑인사회를 벗어나서 노래를 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 정도의 자유는 생긴 것이지요. 흑인들이 부르던 노래, 블루스는 유럽에서 온 노래들과 감성도 다르고 구조도 달라서 백인들이 듣기에도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유럽에서 온 음악들이 클래시컬 하거나 경쾌한 음악이었다면, 블루스는 아프리카 흑인들에게서 온 음악답게 훨씬 질박하고 원초적이며 육감적인 정서가 있었으니까요. 그것은 블루스의 멜로디가 3도와 7도에서 반음 내려가기 때문이기도 했고 음악이 아프리카에서 왔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블루스는 8마디나 12마디를 기본으로 해서 노래하고 따라하는 구조를 갖춰서 쉽게 익숙해질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흑인 사회의 주점이나 시장 같은 곳을 떠돌며 공연하던 아마추어 흑인 블루스 음악인들, 이른바 블루스맨들이 계속 공연을 하게 되면서 차츰 전문화되고 백인들에게까지 알려지면서 레코딩까지 하게 되었고 더욱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미시시피 지역을 중심으로 시작한 포크 블루스는 도시로 가서 재즈를 만나고 또 다른 음악들을 만나면서 더욱 활기찬 음악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떤 음악이든 시간이 흐르고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게 되면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세상의 모든 음악이 다 그런 식으로 달라진 것인데 블루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흑인 사회의 작은 공간에서 연주하느라 포크 기타로만 연주하던 블루스가 다른 지역으로 건너가 더 많은 이들 앞에서 노래하려다보니 일렉트릭 기타를 사용하게 되고, 랙타임이나 재즈처럼 도시에서 유행하는 다른 음악 양식까지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블루스의 양식과 표현 기법은 더욱 다양해졌고 블루스 음악의 원조격인 뮤지션들도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 이후 스킵 제임스(Skip James), 티 본 워커(T-Bone Walker), 무디 워터스(Muddy Waters)를 비롯한 전설적인 블루스 뮤지션들은 블루스라는 음악을 대중음악의 중요한 양식으로 만들어냈습니다.


블루스가 중요한 것은 영미권의 대중음악 가운데 초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블루스가 컨트리(Country) 음악이라는 백인 음악을 만나서 록큰롤(Rock N Roll) 음악을 만들어냈고 이 록큰롤 음악이 바로 지금의 록(Rock)으로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앤비라고 부르는 리듬 앤 블루스(Rhythm And Blues)도 블루스에서 시작한 음악입니다. 대중음악에서 중요한 양식들이 블루스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래서 블루스는 영미권에서 만들어낸 대중음악 양식 가운데 가장 원조격의 음악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대중음악을 배우는 학생들이 블루스 스케일과 코드를 반드시 배우는 것도 그것 때문이고, 록을 하기 위해서는 블루스를 알아야 한다고 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록커들은 블루스를 익히면서 록을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록커들은 블루스 곡들을 자주 연주하곤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초기의 블루스 음악을 잘 들을 수 없었습니다. 블루스 음악이 인기를 끌던 시대에 한국에서는 트로트 음악이 더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것이 일본 문화가 더 가까웠기 때문인지, 아니면 흑인들의 음악 스타일이 한국 사회나 한국인의 정서와 맞지 않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한국에서 블루스가 그나마 인기를 끌기 시작했던 것은 1970년대에 블루스가 록과 만난 뒤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 뮤지션이 블루스 음악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에 싱어송라이터인 이정선 등이 블루스의 감성이 담겨 있는 음악을 내놓기 시작하고, 1980년대에 신촌블루스가 한국적인 감성으로 다듬어진 블루스를 내놓은 그 즈음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990년대에도 김목경이나 한상원처럼 블루스 스타일의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이 있었지만 한국의 대중음악계에서는 소수라고 불러야 할 만큼 블루스는 대중적이지 않은 음악이었습니다.

  

 

 

 

그래서 최근 서울 홍익대학교 앞의 인디 신과 재즈 신을 중심으로 블루스 음악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이 흥미롭습니다. 그 대표적인 증거는 지난 해 인디 레이블인 붕가붕가 레코드에서 내놓은 [블루스 더, Blues] 음반입니다. 이 음반은 지금까지 한국에서 들을 수 있었던 한국적 블루스만이 아니라 미국에서나 만들어졌던 델타 블루스와 시카고 블루스를 비롯한 다양한 블루스 음악들을 함께 담아내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김대중, 강허달림, 로다운30, 하헌진, CR태규, 조이엄, 림지훈, 김마스타, 깜악귀, 전성기, 김태춘, 강산에가 참여한 이 앨범은 그 전부터 홍대 앞의 라이브 카페와 클럽 등에서 활동하는 블루스 지향의 음악인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대중적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한 현상을 발 빠르게 포착해낸 결과물이었습니다.

 


 이 앨범에서는 특히 김대중이 부른 <300/30>이라는 곡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주류 대중음악 시장에 존재하지 않은 장르의 음악을 대부분 해내고 있던 인디 신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었던 블루스 뮤지션들이 제법 되고, 블루스 음악이 재미있다는 것을 대중들이 확인하게 되면서 김대중, 하헌진을 비롯한 블루스 뮤지션들의 공연도 더욱 많아졌습니다. 주로 어쿠스틱 블루스 음악을 들려주는 이들은 초기의 블루스 음악 같은, 솔직하고 멋 부리지 않는 적나라한 가사와 스타일을 통해 다른 대중음악들이 들려주지 못한 블루스만의 정서와 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아직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블루스 음악은 여전히 소수에 가깝지만 화제와 관심은 예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블루스 음악에 대해 짧게 말씀드렸는데 블루스를 제대로 알려면 역시 직접 블루스 음악을 듣고 느껴 보셔야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블루스 더, Blues] 음반이나 김대중의 음반을 한 번 들어보시면 어떨까요? 처음엔 이상할지 몰라도 계속 듣다보면 블루스만의 매력을 느끼게 되실 겁니다. 한국의 블루스 음악이 익숙해지시면 그 다음에는 해외의 블루스 음악으로 건너가 보세요. 음악은 그렇게 천천히 뿌리를 찾아올라갈 때 더욱 재미있답니다. 건투를 빌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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