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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 시대 읽기/다큐 리뷰

[오늘의 다큐] 모든 것을 바꾸는 한가지, 신뢰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9. 27. 10:51

[오늘의 다큐] 모든 것을 바꾸는 한가지, 신뢰

오예지 / yeejio@naver.com



사람들이 붐비는 광화문 한복판, 한 남자가 다급한 표정으로 당신에게 다가온다. 말끔히 차려 입은 남자는 자신이 지갑을 잃어버렸다며 만원을 빌려달라고 요청해온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선뜻 지갑을 열어 만원을 빌려줄 것인가 아니면 거절하겠는가?


이 돈 빌리기 실험은, KBS에서 기획한 사회적 자본 시리즈 중 첫 번째 주제인 “신뢰”편에 나오는 첫 장면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준다는 행위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한국사회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어 왔지만, 이와 함께 여러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한 사회가 신뢰하고 소통하여 협력하는 사회적인 역량을 <사회적 자본>이라고 한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엘리노 오스트롬에 따르면, 사회적 자본이란 “무언가 다른 것을 가능케 하는 무형의 자산”이며,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는 것을 촉진시키고 돕는 능력” 이다. 이 사회적 자본이 풍부할수록 사회에 바람직한 거래나 교환이 촉진되며, 이는 경제성장의 동력이 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협력 및 소통의 사회, 보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기반이 된다.

우리가 처음 보는 사람을 도와주는 행동은 일반화된 신뢰라고 할 수 있는데, 내가 다른 사람을 돕게 되면 도움을 받은 사람도 다른 사람을 돕게 되어 도움의 연쇄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내가 아주 다급한 경우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게 되면, 다음 번에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을 만나게 될 때 그 사람을 돕고자 하는 동기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도움의 연쇄반응을 통해서 사회의 신뢰가 높아지면 사회적 자본이 축적되는 것이다. 사회적인 자본이 축적된 사회는 어떤 이점을 갖게 될까?

뉴욕의 47번가는 다이아몬드 거래의 메카로 유명하다. 2,000개가 넘는 이곳의 보석상들은 신기한 방법으로 서로 거래를 하는데, 값비싼 다이아몬드를 거래할 때 현금도 계약서도 없이 악수 하나로 거래를 한다. 이것을 ‘마잘’이라고 하는데 이 거래에 필요한 것은 오직 신뢰와 신용뿐이다. 이렇게 신뢰에 기반한 거래는 유대인들 보석상의 오랜 전통인데, 한번 신용을 어기게 되면 그 사람은 영원히 거래를 할 수가 없게 된다. 이러한 신용 거래는 거래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해 주며 사기를 당하게 될 위험부담 또한 전통적인 계약서 거래방식보다 현저히 낮다. 결국은 신뢰와 신용에 기반한 거래는 전체적인 사회적인 자본을 키워주고 계약과 벌칙에 기반한 사회보다 효율성이 높게 나타난다.


요즘 사회가 워낙 흉흉하다 보니 우리 사이에 의심과 불신은 깊어만 가고 있는 듯하다. 한국사회는 단기간에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소통과 협동 그리고 신뢰의 부재로 몸살을 앓고 있다. 더욱더 치열해 지는 경쟁과 불신으로 인해 드는 사회적 비용은 신뢰의 선순환이 아닌 불신과 경쟁, 경쟁과 더 치열한 경쟁이라는 악순환을 낳는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선순환으로 전환시킬 방법은 없을까?

여기 50명의 남녀 대학생들을 두 팀으로 나누어 신뢰게임을 진행해 보았다. 주황색을 입은 제안자 팀에게는 각 사람에게는 1,000원짜리 10장이 든 돈봉투가 쥐어졌다. 그들은 자신에게 쥐어진 돈 중에 일부를 파란색 티를 입은 같은 번호의 상대방에게 나누어 줄 수가 있으며, 자신이 상대방에게 나눈 돈은 3배가 되어 상대방에게 전달된다. 예를 들어 1번 제안자가 10,000원 중 5,000원을 봉투에 넣으면 이는 5,000원의 3배인 15,000원이 되어 응답자 1번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이때 응답자 1번은 자신이 받은 15,000을 모두 가져도 되고 상대방에게 일부를 다시 전달할 수가 있다.


이 게임에서 가장 이상적인 결과는 제안자가 자신이 가진 10,000원을 모두 상대방에게 전달하여, 응답자는 3배가 되어 자신에게 전달된 30,000원의 50%인 15,000을 다시 제안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응답자가 제안자로부터 받은 30,000을 자신이 모두 취하고, 제안자에게는 한 푼도 돌려주지 않는 것이다. 제안자가 10,000원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최소한 손해를 보지는 않겠지만 상대방을 신뢰하면 신뢰할수록 나에게 돌아오는 돈은 더 커질 수도 있다. 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당신이라면 10,000원 중 얼마를 상대방에게 전달하겠는가? 당신이 만약 얼굴을 모르는 상대로부터 그 사람의 전 재산을 투자하여 전달된 30,000이라는 돈을 받았다면 그 중 얼마를 그 제안자와 나누겠는가?

실험의 결과, 상대방을 신뢰해서 자신이 가진 돈을 분배했을 때 응답자는 자신이 받은 돈의 50%를 다시 제안자에게 돌려준다는 결과가 나왔다. 기존 경제학에서 이야기 하는 합리적인 선택에 따른다면, 제안자는 응답자로부터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해야 하지만 결과는 높은 신뢰를 줄수록 그만큼 큰 신뢰로 돌아왔다. 이 실험을 통해서 우리는 신뢰를 키울수록 전체의 파이가 커지고, 결국은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는 파이가 늘어나게 된다는 것을 보게 된다.



타인을 신뢰한다는 것은 결국 신뢰가 클수록 나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커진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네가 신뢰하면 나도 너를 믿을 게’가 아니라 내가 먼저 상대방을 신로하는 것. 물론 상대방을 먼저 신뢰하기 위해 우리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을 감수하고 내가 신뢰를 보내는 것이 어쩌면 지금 이 시대의 불신과 소통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지금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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