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홍남순 변호사 (2)
함께쓰는 민주주의
변호사 홍남순은 『함성』지 사건을 각별하게 기억한다. 그것은 박석무와 김남주를 비롯한 전남대 학생들이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을 비난하며 유인물을 뿌린 사건이었다. 학생들을 변호한 홍남순은 무죄판결을 끌어낸다. 하지만 변호사인 그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 승리였다. 홍남순은 그 뒤로 시국사건에서 단 한 건도 무죄판결을 받아내지 못한다. “1970년대 공안부 검사들은 기소만 해놓으면 끝난다는 식이었다. 검사가 유죄를 입증하기보다는 변호인이 무죄를 입증하지 못하면 그대로 유죄판결이 떨어지고 마는 엉터리 재판이 대부분이었다. 형량 역시 턱없이 인플레 현상을 보인, 양형 감각마저 희미해져버린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피고인의 양형에 매달리기보다 오히려 정부의 법률 운용에 대한 불법성을 지적하려고 애썼다.” 홍남순은 집에..
5·18민중항쟁 26주년을 맞이하는 광주시내에 선거구호가 요란하다. 충장로 우체국 앞에서는 야당대표가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광주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광주전남지역 대학생들은 ‘광주학살의 후예는 광주를 모욕 말라’라는 펼침막을 들고 그에 맞선다. 여당대표는 금남로에서 목청을 높인다. 지방선거 유세가 불붙은, 정치 1번지로 둔갑한 광주에 ‘5·18은 민중혁명이다! 5월 19일 3백여 명의 택시 기사들이 무등 경기장에 모여 시위에 가담했는데, 그게 결정적이었어. 넝마주이들이 총을 들고 싸웠고. 황금동, 대인동에 있는 술집 아가씨들이 시민군들에게 밥과 술을 줬어. 참, 민중의 힘이 대단했어.’ 라고 외치는 늙은 목소리가 있다. 항쟁기간 시민군들이 죽어나갔던, 총탄자국이 선명했던 옛 YWCA건물이 사라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