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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쓰는 민주주의
전태일 이소선 김근태 그리고 마석 모란공원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이 정권 들어 참 많은 어른들이 돌아가셨다. 김수환 추기경, 두 대통령, 리영희 교수, 박용길 장로, 그리고 이소선 어머니와 김근태 의장. 그 중 뒤의 세 분은 마석 모란공원에 묻혀있다. 9월 3일이 이소선 어머니의 기일이라 겸사겸사해서 아침 일찍 마석으로 출발했다. 그러고 보니 벌써 1년! 새삼스럽게 세월은 정말 빠르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행사는 11시부터였지만 김근태 의장을 비롯한 여러 열사들의 묘를 참배하기 위해 조금 일찍 나섰다. 물론 모란공원 가라고 만든 것만은 아니지만 경춘선 열차는 무척 편안했다. 공원입구에 들어서면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묘역도가 참배객들을 맞이한다. 작년 이소선 어머니 장례식..
한국 민주주의의 거인이 살던 곳, 동교동 자택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서울에서 가장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 중에 하나가 신촌과 홍익대 앞이다. 당연히 수많은 점포들이 모여 있는 번화가지만 묘하게도 멀지않은 두 지역 사이에는 조용한 주택가들이 형성되어 있다. 그 곳에 바로 우리나라 정치사와 민주주의 역사에 빼놓을 수없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과 김대중 도서관이 있다. 김대중은 1963년 4월 국회의원 출마를 앞두고 찾는 손님이 많아지자 셋방살이를 청산하고 동교동 국민주택 한 채를 전세 내어 입주했다. 1년 뒤 은행 융자를 보태어 이 집을 구입하면서 김대중의 ‘동교동’이 시작되었다. 물론 당시의 규모는 지금보다 훨씬 작았다. 당시 이 지역은 “비가 오면 마누라보다 장화가..
서울대 민주화의 길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한국 사람이라면 관악산을 등지고 있는 아름다운 캠퍼스가 있는 서울대학교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나라 최고 대학으로 수재들이 모인 곳이기에 모든 학부모와 입시생들이 선망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 관악산 입구에 위치해 있기에 산을 사랑하는 수많은 서울 시민들이 지나쳐 가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학교 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고 그래서 이곳에 민주화의 길이 조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하기야 나도 서울대에 ‘민주화의 길’이 조성되었다는 것을 안지 2년이 넘었음에도 이제야 이곳에 처음 왔으니 남 흉 볼일만은 아니다. 예전에는 서울대학교를 가는데 서울대 입구 역에서..
1987년 명동 일대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국민운동본부의 항쟁 종료선언 이후 명동성당으로 모여들고 있는 수많은 시민과 학생들] 한양이 조선의 수도로 결정되고 북악산 아래에 경복궁과 창덕궁이 건축되고, 출사한 선비들이 두 궁전 사이에 집을 짓고 살면서 지금의 북촌이 형성되었다. 대신 벼슬이 없거나 출사를 준비하고 있는 선비들은 남산 아래쪽에 모여 살았다. 이들을 남산 딸깍발이라고 불렀다. 물론 북촌이라고 전부 벼슬아치들이 산 것도 아니고 남촌이라고 전부 재야인사들만 산 것은 아니었지만 기본적인 구도는 그러했다. 이런 구도는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일본이라도 북촌과 종로를 완전히 장악하기는 어려웠기에 남산 아래쪽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적..
옛 미 대사관, 미 문화원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서울의 지하철역에서 시청 앞과 을지로 입구 역은 가장 붐비는 역 중 하나지만 의외로 두 역 사이는 한적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사람이 많지 않다. 두 역 사이에 등록문화재 238호인 서울시청 을지로 별관이 있다. 일제가 조선을 병합하고 많은 일본인들이 서울에 왔지만 종로 상권만은 넘보지 못했다. 대안으로 그들은 을지로와 명동 일대를 그들의 상권으로 만들었다. 일본 굴지의 대기업인 미쓰이 물산(三井物産) 주식회사는 경성지점 사옥을 이곳에다 지었다. 이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4층의 규모로서 1937년 9월에 착공되어 1938년 10월에 완공되었다. 일제가 패망하자 미군이 접수한 이 건물은 1948년 한미 간에 '재정과 재산에 대한 ..
혜화동 일대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서울이 역사도시라고 하지만 처음 서울에 온 외국인들은 잘 믿지 않는다. 고궁을 제외하면 전통을 알 수 있는 공간이 별로 많지 않고, 근대는 물론이고 몇 십 년밖에 되지 않은 현대사의 무대조차 많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의 역사적 현장이 가장 많은 곳은 아마도 정동일 것이다. 그 다음은 혜화동, 동숭동, 연건동, 명륜동 일대가 아닐까? 이 일대는 서울대와 성균관대가 있고, 기독교회관이 인접해서 민주화운동 역사에서 큰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런 ‘불온한’(?) 분위기는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다.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에서 당시 이 일대를 일컬었던 ‘반촌’이 중요한 무대가 되면서 많은 이들이 반촌이라는 고유명사를 알게 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