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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쓰는 민주주의
전태일의 흔적 따라, 길을 걷다. 글 장남수/ jnsoo711@hanmail.net 밤새 내린 비로 고속도로는 젖어있었다. 전태일! 그가 살았던 흔적을 따라 나선 오월, 비에 젖은 신록은 연둣빛으로 고왔다. 전태일기념재단의 12인승 승합차에 가득 끼어 앉은 전태일의 후예들은, 노동자의 자긍으로 부활한 선배가 나고 자란 땅을 밟는다는 사실에 살짝 흥분되어 있었다. 운전석에 앉은 박계현 사무총장도 호흡을 조절하며 비오는 고속도로를 달렸을 것이다. 서울을 벗어나면서부터는 다행히 비는 잦아들기 시작했고, 대구에 도착했을 때는 걷기 좋은 날씨였다. 전태일이 태어난 동산동 311번지 일대는 은행나무가 들어 찬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공원입구에는 ‘바르게 살자’ 라는 표지석이 버티고 있었다. ‘바르게’ 사는 ..
인물콘텐츠 ‘인물을말하다’ 제작 사료관은 온라인 동영상 인물콘텐츠 ‘인물을말하다’ 4편을 제작하였다. 주제인물은 신동엽, 장준하, 조영래, 전태일이다. ‘인물을말하다’는 굴곡진 한국현대사 속에서 민주주의 발전과 인권신장에 기여한 인물을 대상으로 하였다. 이들을 통해 민주화운동의 역사와 과정을 소개하고, 우리 사회의의 정의와 공동체를 위한 자기결정을 하기까지 격어야 했던 인간적 고뇌를 전달하고자 하였다. 전태일편은 전태일 열사가 남긴 일기를 통해 드러난 ‘전태일의 소박한 꿈’과 전태일의 인간적 고민을 중심으로 당시 노동현실 개선을 위한 노력을 담았다. 장준하편은 독립운동에서 민주화운동에 이르는 통시대적 상황 속에서 장준하 선생의 민주주의를 향한 흔들림 없는 결기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신동엽편은 암울했던 현..
서울역에서 청계천까지 소년 전태일, 청년 전태일의 길을 걷다.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11월은 공휴일도 없고, 4월의 4.19혁명기념일, 5월의 5.18민주화운동기념일, 6월의 6.10민주항쟁기념일처럼 이렇다 할 기념일도 없는데다가 마지막 달의 전 달이라 뭔가 ‘밋밋해’ 보인다. 하지만 13일만은 결코 평범한 날이 아니다. 물론 일반적인 달력에는 아무 것도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한국 민주화와 노동운동에서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날이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태어난 열사는 1954년, 여섯 살 때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자 부모님을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아버지가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동안 이소선 어머니와 염천교 밑에서 노숙하면서 만리동 일대를 돌아다니며 ..
전태일 이소선 김근태 그리고 마석 모란공원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이 정권 들어 참 많은 어른들이 돌아가셨다. 김수환 추기경, 두 대통령, 리영희 교수, 박용길 장로, 그리고 이소선 어머니와 김근태 의장. 그 중 뒤의 세 분은 마석 모란공원에 묻혀있다. 9월 3일이 이소선 어머니의 기일이라 겸사겸사해서 아침 일찍 마석으로 출발했다. 그러고 보니 벌써 1년! 새삼스럽게 세월은 정말 빠르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행사는 11시부터였지만 김근태 의장을 비롯한 여러 열사들의 묘를 참배하기 위해 조금 일찍 나섰다. 물론 모란공원 가라고 만든 것만은 아니지만 경춘선 열차는 무척 편안했다. 공원입구에 들어서면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묘역도가 참배객들을 맞이한다. 작년 이소선 어머니 장례식..
한국의 ‘마더 존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연방군을 동원해 노동자들의 인권을 무지막지하게 짓밟았던 미국에는 검은 드레스 차림으로 파업현장을 누비며 특유의 독설로 자본가들의 비도덕성을 맹비난하고 투쟁심을 일깨웠던 마더 존스가 있었다. 아일랜드 이민자의 후예였던 그이는 1867년 남편과 자녀를 황열병으로 잃은 뒤 노동자와 미국의 현실에 눈을 떴다. 마더 존스는 ‘내 주소는 내 신발과 같아요. 어디든지 억압에 반대하는 투쟁이 전개되는 곳에 있으니까요.’라는 자신의 말대로 살았다. 그리고 한국에는 어머니 이소선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피 흘리고 끌려가고 죽임 당했던 7, 80년대 한국의 고난과 투쟁의 현장에는 반드시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 수수하게 틀어 올린 머리에 화장기 없는 민낯의 이 열혈 여..
며칠째, 전태일의 영정을 안고 몸부림치는 그이의 사진을 보고 있다. 이제 막 사십대가 된 젊은 이소선. 그는 슬퍼한다기보다는 아파하고 있다. 물리적인 통증을 거의 온몸으로 호소하고 있다. 혹시 그는 스물두 살의 전태일을 낳고 있었던 게 아닐까. ‘담대해지세요, 어머니…….’ 자기 몸에 불을 낸 아들은 그렇게 말했다. ‘오! 어머니/ 당신 속엔 우리의 적이 있습니다.’ 시인 박노해는 또 그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낳고, 아들은 어머니를 낳고 영별의 순간, 이소선의 내부에서는 자식과의 영별을 담대하고 의연하게 맞이하는 어머니와 자애로운 미소 속에 ‘적’을 감춘 어머니가 한판의 독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아들을 낳고 아들이 어머니를 낳(김남주, 『고난의 길』)’는 그 싸움은 가진 ..
횃불을 든 사람들 - 영원한 자유인 조영래 2 저 황홀한 불꽃을 보아라 저 참혹한 사랑을 보아라 저 위대한 분노를 보아라 아아 불길 속에 휩싸이며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외치는 저것은 죽음이 아니다 저것은 패배가 아니다 저 피 저 눈물 저 울부짖음 속에서 싸우는 노동자의 강철 같은 심장을 보아라 -장시 「노동자의 불꽃 아아 전태일」 중에서 마치 80년대 노동자 시인 박노해의 시구를 연상시키는 이 시는 놀랍게도 1970년대 작품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이 조영래의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1977년 가을, 전태일 열사 7주기에 맞춰 발표된 이 시는 최근까지 그 필자가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안목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끈질긴 주목을 받아왔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홈페이지에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문예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