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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시] 아프고 슬픈 그래서 아름다운 -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본문

문화 속 시대 읽기/시대와 시

[시대와 시] 아프고 슬픈 그래서 아름다운 -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기념사업회 2012. 1. 16. 11:50

아프고 슬픈 그래서 아름다운
 기형도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글 /서효인(시인, humanlover@naver.com)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2000년대로 접어들고 다시 10년이 훌쩍 넘어서야 1987년의 뒤풀이가 끝나가고 있다고 말한다면, 과장일까. 아님 엄살일지도 모르겠다. 여기 시대의 폭력을 글의 엄살로 풀어낸 시인이 있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그의 엄살을 그로테스크 시학이라 이름 붙였다. 모든 아픔은 그로테스크하고, 그런 엽기성은 이제야 제 모습을 완연히 드러내고 있다. 어쩌면 시인은 지나가고 또한 흘러올 시대에 대한 응답으로 시를 택했을지 모르겠다. 그만큼 그의 시는 아프다. 어둡다. 슬프다. 그리고 아름답다.

시인이 시대에 부딪히는 방식에는 딱히 정답이 없다. 강고하고 악독한 시대에도 사람은 사람마다의 천성이 있으며, 시인은 그것을 구태여 바꾸지 않을 것이다. 세계의 모든 사람이 그러한 것처럼 시인은 자기가 쓴 시에 따라 책임을 다하며 산다. 그리고 죽어간다. 시간을 흘러감은 죽음으로 향하는 걸음이고, 그 걸음에는 멈춤이 없다. 우리는 걸어야 한다. ‘안개’ 속에서, ‘빈 집’을 향해, ‘밤 눈’을 헤치며. 기형도는 얇고 희미한 걸음을 걷다가, 어느새 걸음을 멈추었다. 그 멈춘 발자국을 후대의 사람들은 오래 동안 쳐다보아야 한다. 이는 시적 형벌이다. 가혹하다.

죽음의 도래에 대한 엄격한 자기 심판은 과장이거나 엄살이겠지만, 사람의 죽음으로 시대가 만들어지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80년의 오월처럼 광대하고 집단적인 학살이거나, 89년 서울 귀퉁이에서 한 시인의 죽임이거나. 그것은 모이고 모여 시대를 만든다. 그것은 멈추지 않고 흐르는 걸음이다. 기형도 시인의 시를 읽는다.

 

입 속의 검은 잎

 

택시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우리는 어떤 일이 터졌을 때 그곳과는 멀리에 떨어져 있기 일쑤다. 시인은 오월 광주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용산 망루에 없었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는가. “그는 누구”이고, “우리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어떤 시간이 우리가 사는 이 공간을 이토록 오래 통과하고 있기에, 검은 잎은 우리를 감싸고 제 몸을 웅크리는가. 우리는 무섭다. 우리는 아프다. 슬프다. 그렇기에 아름다워야 한다.

그는 1989년에 죽었다. 서울 올림픽 이듬해다. 세기말로 건너가는 길목이었다. 그리고 혁명은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혁명에 절반이 어디 있겠는가. 87년 거리를 메웠던 사람들은 각자의 집에서 각자의 삶으로 나아갔다. 노동자들은 파업을 했고, 학생들은 자주 거리에 나섰다. 하지만 무엇이 변했는가. 선거를 통해 당당히 나라의 수장이 된 군인은 그 전 통치자 못지않은 방식으로 부를 축재했고, 대기업은 커나가고, 3개 정당이 합하여 거대 보수 정당이 탄생했다. 그리고 시인은 죽었다.

그때 발버둥 치던 사람들은 이제 어느 회사의 중역이 되었거나 번듯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을 수도 있다. 정치를 하거나 장사를 할 것이다. 삶은 이어진다. 그들의 청춘이 어떠하였든, 우리 사회는 시간을 맞아들일 것이다. 다만 시간에 아파할 줄 아는 사람이 줄어들 뿐이다. 아프고 슬픈 아픔에 대해서 가만히 들여다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다시 기형도의 시를 읽는다.

 

대학 시절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올해라고 불리는 시간은 대단한 시간이 될 것이다. 그것이 두렵다. 실패가 두렵고, 사람들의 입에서 터져나올 총성이 두렵다. 그리고 충분히 아플 것이다. ‘아름다운 숲’을 젊은이들은 이를 악물고 모른 척 지나가야 한다. 그래야할 시간이 왔는지도 모른다. 서울의 겨울은 아름답다. 눈이 오고, 캐럴이 흐르고, 불빛이 반짝인다. 그곳을 우리는 모른 척 지나가야 한다. 그곳에서는 물조차 대포라는 이름으로 무기로 쓰인다. 검열이라는 이름으로 명예훼손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무기가 생성되고 날카롭게 제련된다. 그들의 혀는 검은 잎이다. 우리를 둘러싼다.

하지만 우리는 아플 준비가 되어있다. 아프고 슬프고 그래서 아름다울 것이다. 기형도는 1989년에 죽었다. 영화관에서 그는 발견되었다고 전해진다. 아직도 그를 추억하는 사람이 많다. 그의 시를 사랑하는 사람은 더 많다. 그리고 아직도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리움은 아름다움이 아니다. 이 시대에 아파하고 슬퍼해야 한다. 기형도는 그 시절을 노래했고, 그것은 흐르는 시간의 한 찰나였다. 우리는 우리의 찰나를 예민한 멜랑콜리로 느껴야 한다. 2012년은 윤년이다. 그리고 중요한 선거가 있다. 아직도 우리는 기형도를 사랑한다. 그건 슬픈 일이다. 그래서 끝내, 아름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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