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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시] 버스 정비공의 시를 희망으로 더듬는다_박노해, '노동의 새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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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시] 버스 정비공의 시를 희망으로 더듬는다_박노해, '노동의 새벽'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1. 7. 15. 11:35

버스 정비공의 시를 희망으로 더듬는다
 

박노해, 『노동의 새벽』


글· 서효인 시인/humanlov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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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서점에서 박노해의 첫 시집을 구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스마트폰으로 알아본 정보로는 영등포에 있는 거대 쇼핑몰 안, 대형서점에 단 한 권이 구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위치의 『노동의 새벽』이었다. 한국현대사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쳤으며, 시집 자체가 ‘몸의 전위’였던 책을 구하기 위해, 휘황찬란한 쇼핑몰까지 찾아가야 하는 이유는 의외로 명료하다. 동네서점이 몽땅 망했기 때문이다.

영등포의 쇼핑몰은 거대한 괴물의 입 같았다. 원을 중심으로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는 인파는 혼곤했다. 백화점과 쇼핑몰 근처에서는 사창가의 여성들이 매달아 놓은 현수막이 반쯤 찢어진 채 비를 맞고 있었다. 그 사이로 갖가지 종류의 차들이 주차장으로 빨려 들어갔다. 여기는, 영등포인 것이다. 노동자 박기평이 특근을 거듭하였을 영등포. 시인 박노해가 노동자가 바라는 평온한 저녁을 글로 써 옮기던 영등포 철공소, 구로공단, 성수공단, 안양의 정비소―바로 이곳 선진조국 대한민국.

 

1984년 『노동의 새벽』이 세상에 왔다.

 

박노해의 시집 『노동의 새벽』은 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책이다. 당국에 적발되면 먹어 삼키거나 쉽게 불태울 수 있게끔 얇은 습자자 위에 쓴 육필원고는 신문지 뭉치 사이에 끼여 김사인(시인)에게 전달되었다. 작품의 충격과 문학성을 알아본 김사인, 故채광석(문학평론가)의 노력과 풀빛출판사의 사장이던 나병식의 도움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노동의 새벽』이 출간되자 문학계와 노동계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당국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약 100만부 가량 판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노동의 새벽』은 그야말로 새로운 새벽의 알람소리와 같았다. 노동자에게는 절절한 체험으로 채워진 시편으로 감동을 넘어 운동의 에너지가 되었다. 지식인에게는 엘리트주의에 갇혀있던 당대의 운동방향성에 대한 성찰과 고민의 계기가 되었다. 문학인에게는 삶과 현장이 유리된 민중문학에 대한 각성제가 되어 새로운 민중민족문학에 대한 갈구가 되었다.

이름 없는 시인으로 알려진 박노해는 안양에서 버스정비공으로 노동을 시작한다. 시집 출간 이후에는 문학 활동보다 노동운동에 더욱 집중한다. 1985년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에 합류하면서 노동해방(이는 ‘노해’라는 필명의 본뜻이기도 하다)을 호소하는 시와 글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노동운동가로 나선다. 노동의 전위에서 활동하던 시인은 이른바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을 조직하여 활동하다 1991년 구속된다. 그가 구속되고 나서야 민중은 그의 얼굴을 보게 된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얼굴 없는 시인이 아니게 된 것이다. 시인은 87년의 승리 이후에도 끈질기게 이어진 군사정부에 의해 사형이 구형되고, 최종심에서 종신형이 선고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박노해 시인(1998/9/1-사진제공: 경향신문사)

시인은 각계각층의 사면운동에 이은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 사면으로 1998년 수감생활을 마친다. 1991년부터 1998년까지 세상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급하게 변해갔다. 그가 감옥 밖으로 나왔을 때, 세상은 1980년대와 같은 얼굴을 하고서, 다른 가면과 화장술을 하고서 여전히 시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가 굳건히 믿었던 현실사회주의는 붕괴되었고, 붕괴의 와중에 목격된 사회주의의 실체는 우리의 이상과는 판이했다. 이 땅의 노동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어 불러지기 시작했으며, IMF는 다른 양상의, 하지만 덜 하지 않은 공포를 노동자에게 던졌다. 그리고 시인은 치열하게 살았던 80년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여전히 대면하고 있다.

『노동의 새벽』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실제 체험한 자만이 쓸 수 있는, 뜨거운 심장과 바지런한 몸으로 만들어진 시집이다. 괴로운 노동으로 사랑을 나눌 시간조차 없는 신혼부부, 영어회화를 공부하는 중학생 동생을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일을 하면서도 노조에서 배운 역사의 어두운 장면을 기억하는 여성 노동자, 지문이 없어져버린 화공약품 공장 아가씨들, 16살에 공장 노동을 시작하여 군대에 가는 철수, 프레스에 잘린 동료의 손을 들고 찾아간 그의 집에서 마주한 손 주인의 아내……. 시인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사라질 때까지, 억압과 착취와 분단의 장벽이 사라질 때까지’ ‘노동자의 전진’은 갈수록 무겁고 힘차게,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노래한다.

 

그리고 2011년이다.

 

영등포의 대형쇼핑몰에서 시집을 찾는 동안, 부산 영도에서는 크레인 위 어떤 여성을 만나기 위한 사람들이 경찰과 대치중이었다. 그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주말을 반납하고 모여든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자발적 연대를 ‘희망’이라고 부르지 않을 방법이 도저히 없다.

1980년대 노동자는 저임금과 터무니없는 노동시간에 고통 받았다. 2011년 노동자는 저임금(현실성 없는 최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시간(3교대로 인한 노동쟁의에 직장폐쇄와 폭력진압으로 대처한 유성기업)은 물론이고 불법적인 정리해고(쌍용차, 한진중공업)에 시달리고 있다. 기업의 위기로 발생하는 자구 노력에 노동자의 해고는 빠지지 않는 항목이다. 한쪽에서 노동자는 생계를 잃고 가족의 부양수단이 허망하게 사라져버리지만, 기업의 주식을 틀어쥐고 있는 재벌은 숫자를 가늠하기 힘든 액수의 배당금을 챙긴다. 2011년, 20년 동안 발전을 거듭한 대한민국의 노동현장이다.

『노동의 새벽』에서 노동자는 일시적으로 잠을 쫓아내는 약인 ‘타이밍’으로 버티면서 잔업을 해치운다. 그때 라디오에서는 고가의 최신 전자제품의 광고가 흘러나오고 뒤이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하는 노래가 나온다. 노동자는 코피를 쏟아내며 사장님에게 개가 있다면 그 개에게도 먹이지 않았을 점심을 먹고 다시 작업을 하러 간다. 『노동의 새벽』이후 17년이 지난 오늘 쌍용차에서 노동자는 동료였던 노동자와 대치하고, 작업도구였던 볼트를 새총으로 맞는다. 영도에서 노동자는 크레인에 올라 고립되고 그를 찾아온 사람들과 이야기조차 나눌 수 없다. 아직도 새벽인가? 깜깜한 어둠은 아닌가?

 

우리는 노동자에게 ‘과격함’의 굴레를 씌었다. 그리고 애써 못 본 척 했다. 해고가 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고는 폭력이고 살인이다. 기업은 살리고자 하면서 왜 사람은 죽이고자 하는가. 1984년 박노해가 『노동의 새벽』을 냈을 때, 얼음 같던 군사정권의 탄압 속에서도 사람들은 기어코 시집을 구해 읽었다. 그들이 읽고 분노하고 연대했을 때, 비로소 진짜 새벽이 왔노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교묘하고 파렴치한 방법으로 새벽은 자꾸만 유보되며 연기되고 있다.

시집을 사서 나오는 길에 비가 쏟아졌다. 우산이 없었고, 차마 시집으로 비를 가리지 못하겠어, 그 비를 맞으며 지하철역을 찾았다. 내가 있던 거대한 구조물은 역 입구에 거의 닿아있어 다행히 많은 비를 맞진 않았다. 휴대전화가 잠시 울린다. 희망버스에 탔던 사람들이 몸 이곳저곳에 최루액을 묻힌 채 톨게이트를 통과했다는 전갈이었다. 해가 저물었다. 그것은 어김없이 새벽이 온다는 신호로 보였다. 『노동의 새벽』처럼.

 

 

손 무덤

 

박노해

 

올 어린이날만은

안사람과 아들놈 손목 잡고

어린이 대공원에라도 가야겠다며

은하수를 빨며 웃던 정형의

손목이 날아갔다

 

작업복을 입었다고

사장님 그라나다 승용차도

공장장님 로얄살롱도

부장님 스텔라도 태워 주지 않아

한참 피를 흘린 후에

타이탄 짐칸에 앉아 병원을 갔다

 

기계 사이에 끼어 아직 팔딱거리는 손을

기름먹은 장갑 속에서 꺼내어

36년 한많은 노동자의 손을 보며 말을 잊는다

비닐봉지에 싼 손을 품에 넣고

봉천동 산동네 정형 집을 찾아

서글한 눈매의 그의 아내와 초롱한 아들놈을 보며

차마 손만은 꺼내 주질 못하였다

 

훤한 대낮에 산동네 구멍가게 주저앉아 쇠주병을 비우고

정형이 부탁한 산재관계 책을 찾아

종로의 크다는 책방을 둘러봐도

엠병할, 산데미 같은 책들 중에

노동자가 읽을 책은 두 눈 까뒤집어도 없고

 

화창한 봄날 오후의 종로거리엔

세련된 남녀들이 화사한 봄빛으로 흘러가고

영화에서 본 미국상가처럼

외국상표 찍힌 왼갖 좋은 것들이 휘황하여

작업화를 신은 내가

마치 탈출한 죄수처럼 쫄드만

 

고층 사우나빌딩 앞엔 자가용이 즐비하고

고급 요정 살롱 앞에도 승용차가 가득하고

거대한 백화점이 넘쳐흐르고

프로야구장엔 함성이 일고

노동자들이 칼처럼 곤두세워 좆빠져라 일할 시간에

느긋하게 즐기는 년놈들이 왜 이리 많은지

―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

선진조국의 종로거리를

나는 ET가 되어

얼나간 미친 놈처럼 헤매이다

일당 4,800원 짜리 노동자로 돌아와

연장노동 도장을 찍는다

 

내 품속의 정형 손은

싸늘히 식어 푸르뎅뎅하고

우리는 손을 소주에 씻어 들고

양지바른 공장 담벼락 밑에 묻는다

노동자의 피땀 위에서

번영의 조국을 향락하는 누런 착취의 손들을

일 안하고 놀고먹는 하얀 손들을

묻는다

프레스로 싹둑싹둑 짓짤라

원한의 눈물로 묻는다

일하는 손들이

기쁨의 손짓으로 살아날 때까지

묻고 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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