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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야기/풀뿌리 운동 현장을 가다

뚜벅뚜벅걸어서오세요 부암동사랑모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1. 3. 15. 14:30

뚜벅뚜벅걸어서오세요

부암동사랑모임

글·양지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yangjikdemo.or.kr
사진·염동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dhyeomkdemo.or.kr

 

뜨는 동네가 있다. 홍대 거리, 삼청동, 신사역 가로수길에 이어 부암동이 뜨고 있다. 경복궁 역을 지나 자하문터널을 나오면 인왕산이 눈앞에 보이고 단층집들과 아기자기한 골목들이 이어지는 부암동이 있다. 서울 같지 않은 동네다. 이곳이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면서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동네 골목길 관광 코스로도 알려졌다. 차츰 카페들이 생겨나더니 이젠 오래된 철물점, 이발소가 카페로 바뀌었다. 사진관도 목욕탕도 예외가 아니다. 대문도 안 닫고 살던 동네였다는
데 이젠 집을 들여다보며 사진 찍는 관광객들로 대문을 걸어 잠근다고 한다. 골목도 쓰레기로 점점 지저분해졌다.

"내가 어렸을 때는 반석이 깔린 시냇물이 있었어. 아주 옥수같은 물 이 흘렀지. 물이 좋아서 거기서 등목하고 그랬었어."

40년 넘게 이곳에 살았다는 할머니가 집 앞으로 대형 공용 주차장이 생긴다는 얘기를 들은 건 2009년 6월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이 동네를 처음 알았어요. 동네가 예뻐서 이동네로 와서 집을 하나 짓고 살아야지 마음 먹었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어찌어찌 40년이 걸렸어요. 이사 온 건 6년 전이었죠. 집을 장만해서 정성들여 리모델링을 하고 마당에는 매화나무랑 과실수도 심고요. 적어도 2대까지는 살려고 했는데 집 뒤에 바로 대형 주차장이 생긴다는 거예요.".

 

종로구청이 인왕산으로 들어서는 초입 부암동 일대 500여 평을주차장 용지로 쓰겠다며 매입한 것이다. 김병애(64)씨는 이 얘기를 듣고 황망한 마음에 인터넷에 <부암동사랑모임>이라는 누리집을 만들어 이 소식을 알리기 시 작했다.

우리 집 앞에 공용주차장이!

"동네 주민들 모이자고 집집마다 우체통에 소식지를 넣었지요. 그래서 20명이 처음 모였어요."

주차장이 생기면 골목길은 차로 위험해지고, 조용하고 공기 맑은 동네가 미세먼지와 대기오염으로 큰 몸살을 앓을 터였다. 그렇게 모여서 십시일반 돈을 모아 서명지도 만들고 민원도 넣고 공용주차장 건립 반대 운동을 시작했다.

"구청에다 항의하고 민원 넣을 수 있는 곳에는 다 넣었어요. 구청은 물론 서울시, 국가권익위원회에도 넣고요. 또 서명지를 만들어서 집집마다 우체통에 집어넣었지요. 현수막도 달고요. 자기 집담벼락에다 직접 자기 돈 들여 현수막을 만들어 붙였어요."

그해 말 1,000여명의 서명이 모였다. 공용주차장 건설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동네의 예술가들이 힘을 모아 부암동 작은 음악회를 기획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국민일보에 무계정사 터를 방치해 두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주차장을 지으려는 대지가 안평대군의 별장 무계정사터라는 게 알려지면서 활동은 탄력을받았다. 세종의 셋째아들 안평대군 이용은 꿈에 본 무릉도원을 당시 최고의 화가 안견에게 설명해 주며 그림으로 그리게 했다. 그 그림이 몽유도원도이다. 안평대군은 지금의 부암동 별장 무계정사터가 자신이 꿈에서 본 도 원과 비슷하다고 했다 한다.

결국 문화재청에서 나와서 조사를 하였고 문화유적지로서의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주차장으로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결정을 했다. 국가권익위원회는 최종적으로 종로구청은 주차장을 재검토해라, 문화재터이므로 개발은 안 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2010년 4월에는 안견기념사업회와 같이 대대적인 음악회를 열었다. 이제 공용주차장 건설 반대운동은 단순히 주차장 반대가 아니라 문화재터 보존의 의미까지 더해졌다. 이런 꾸준한 활동 속에 2010년 10월 드디어 공용주차장 건립 백지화 결정이 내려졌다. 주민들의 힘으로 주민들의 주거환경권을 지키고 문화재터 보존도 이루어냈다. 관을 상대하는 일인데 이게 가능할까 가슴 졸였던 나날들이었다. 마음을 다하면 하늘도 알아준다 했던가, 간절한 마음과 마음이 모여 이루어낸 쾌거다.


한옥 건물의 이전, 주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지금은 이 곳에 오진암이라는 90평짜리 한옥 건물이 옮겨올 예정이다. 오진암은 삼청각, 대원각과 함께1970~80년대 요정 정치의 산실로 손꼽히던 곳이다. 상업용으로 지은 첫 번째 한옥 건물로 그것 나름의 보존 가치가 있다는 평가다. 오진암을 이 터로 옮기면 좋겠다고 구 청에서 먼저 제의를 해 왔다.

"이 동네 사람들은 왜 요정이 여기를 오냐고 또 그랬지. 여기 와서 영업하는 줄 알고. (웃음) 우리로선 너무나 잘된 거지, 한옥이 오면 일단 주차장을 짓지는 않을 거 아냐."

지난해 11월 주민설명회가 열렸다. 한옥이 들어오면 한옥에 어울리는 내용을 채우면 좋겠다며 문화센터에서 하는 강의 중에 주민들이 최우선으로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배치하고 마당도 간단한 무대를 꾸밀 수 있도록 하겠다는 종로구청의 제안이 있었다. 올 해 9월이면 한옥 건물이 완공이 된다. 구청에선 6월쯤 주민설명회를 열어 거기에 어떤 프로그램을 넣을 것인지 주민들의 아이디어를 구하겠다고 한다. 처음 부암동 사랑모임은 주차장 반대운동으로 시작됐지만, 이제는그린 부암동으로 모토를 바꾸어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 많이 몰려든 카페에도 부암동을 지키는 데 동참을 하라고 권유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차를 안 갖고 온 사람들은 10%할인을 해 준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또한 부암동 홍보물에 부암동은 절대로 차를 가지고 가면 안 된다고 써 붙여 달라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길거리 안내판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서 오라는 내용이 추가되도록 민원을 넣고 있다.

"삼청동이 이젠 거주자들이 거의 없고 카페들이 들어찼잖아요. 이 동네가 제2의 삼청동이 되선 안 되겠죠. 이 동네는 사람이 사는 곳이니까요."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무릉도원을 닮았다는 이 곳. 그기운이 서려 있어서일까. 인왕산 바위가 훤히 보이고 어디선가 계곡물 소리가 들려올 듯한 고즈넉한 풍광이 마음까지 맑게 해 준다. 주민들이 지켜낸 부암동, 이 맑은 공기와 조용한 골목길, 곳곳에 자리한 문화 유적들이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주었으면 좋겠다.(http://cafe. daum.net/buu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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