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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계승단체 탐방] (재)5.18기념재단 본문

민주화운동기념관/역사기념관_국내

[기념계승단체 탐방] (재)5.18기념재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9. 6. 18. 17:18
 
 
2008년, 1980년의 5월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지난 역사의 짐을 지고 다시 새로운 길을 나서는 것이 기념사업이다. 감당하기 어려우면 내려놓아야 하고 새 길을 찾지 못하면 추억에 안주해야 한다. 지난 1994년 출범 이후 5·18민중항쟁의 기념사업을 전개해온 5·18기념재단이 서 있는 형국이 2008년인 지금도 그러하다. 5·18민중항쟁 30주년이 다가오고 5·18기념재단은14년이지나고있는지금5월은어디쯤서있을까.
 
장면1
충북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5·18민주화운동 관련 수업을 진행하였다는 이유로 해당 학교장으로부터 학급 담임 배정을 받지 못했다.
장면2
대구의 한 고등학교 학생이 5·18고등학생토론대회에 참가하려고 결석계를 내자 담임교사는 학부모에게 전화하여 절대 참가시켜서는 안 된다고 권고하였고 학생은 참가할 수가 없었다.
 
5월 18일이 국가기념일이며 대통령이 참석하여 기념식을 치르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전 국민이 똘똘 뭉쳐 마침내 국가 차원에서 5·18의 명예회복과 피해보상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그 전개되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5월의 지역주의화는 진행되었다. 광주를 벗어나면 그 거리가 멀어질수록 5·18은 낯 설은 얘기가 되고 만다. 원인은 단순하지 않겠지만, 국가차원의 의례와 기념사업의 제도화가 이뤄진 만큼 5·18이 내재하고 있는 정신적 가치가 국민의 일상 속에 내면화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까닭이라 여겨진다. 5·18기념재단은 이 지점에 서 있다.
영화 <화려한 휴가>는 우리 국민에게 5·18의 존재를 확인시켜줬다. 진지하게 들여다보기보다는 신파극 같은 멜로드라마가 5·18을 사건의 현장에 되살려놓았다. 당시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바탕 회한의 추억을 갖게 하였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것을 흐르는 시간이 잘 보여주고 있다. 현실은 변함없고 사는 일은 팍팍하며 사회의 인본주의적 가치는 호사스런 것인 양 다수의 국민에게외면당하고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지 5·18은 자꾸 호명될 필요가 있다. 다양한목소리속에서진실에목마른누군가는제3, 제 4의 윤상원을 꿈꿀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1980년 5월 27일, 항쟁의 거점인 구 전남도청을 죽음으로서 지키고자했던 것처럼, 지금 이 시기에 이르러 5·18이 내장하고 있는 그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당면한 시대적 상황과 더불어 정신적 거점으로 되살려 내야 한다. 이런 처지
에서 5·18기념재단은 무슨 일을 해왔고 앞으로 어떤 일을 집중적으로벌여나가려고하는가.
 
정신적 거점과 가치 중심을 지키는 일
 
 
역사의 짐은 새로운 세대가 이어서 져야 한다.5·18기념 재단의 주요 사업으로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5·18의 실체적 진실을 알리고자 노력하였던 것은 10일 동안의 항쟁이 증거 하는 인본주의적 가치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이는 학교 현장에서 교사의 손에 쥐어져 활용될 수 있도록 재가공 되어야 하며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춰 다양한 매체로 거듭 태어나야 할 일이었다.
 
청소년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교과 과목별로 부교재를 만들고 교사연수를 진행하며 연극제와 토론대회 등을 직접 관장하면서 진행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정도서를 개발하여 정규 교과목으로 채택되도록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이와 다름없다. 협력학교 협약을 맺어 학교 현장에 밀착해 들어가는 일은 매우 소중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또한 광주와 전남을 벗어나면 금방 낯 설은 얘기가 되어버린다. 부득불 마당극 놀이패를 조직하여 강원도와 충청도 그리고 대구 경북의 학교 현장에 직접 방문, 공연하는 것도 눈물겹게 작은 횟수일지언정 단단한 얼음을 깨기 위한 송곳 같은 노력의 일환이다. 5·18을 광주에 가두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현실의 장벽을 넘기 위해서는 타 지역 기념사업 단체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 할 부분이다. 권역별로 나누어 상호 역할분담과 연대 활동의 층위를 잘 협의하면 못할 일도 없다.
지난 일이 미래와 맞닿으려면 현재에 재구성되어야 한다. 실체적 진실을 실증하는 것만큼이나 당시의 서사를 창발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5·18은 많은 연구자들에게 이론적으로 재구성되거나 실증 되었다.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할 과제가 당면한 사회·정치적 상황 속에서 제기되고 있다는 말이 주관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담론의 생성과 확장을 위해서 5·18이 더 적극적으로 연구자들에게 다가가야 하고 이를 위한 거점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구자들의 학문 주체 형성
을 위한 노력만큼이나 5·18을 통한 역사적 사건의 주체적 담론 형성과 이념화가 필요하다. 5·18기념재단 부설 연구소가 절실한 까닭이다.
강단 연구자들과 시민사회운동 현장 활동가들이 서로 통섭하면서 담론의 창발적 재구성과 진보의 공간이 어디쯤 있어야 하는가에 답하려는 발상에 근거한다. 아울러 이러한 모색은 다가오는 2010년, 5·18항쟁의 30주년에 모종의 응답형태로 시민사회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5·18기념재단 부설 연구소를 준비하는 일이 그 시작을 의미한다.
 
소통으로서 연대와 지원
 
 

5·18민주화운동이 여전히 폭동이라고 믿는 국민이 폭넓 게 잡아 10%나 된다는 설문조사 통계가 있다. 이는 사회적 사고지체 현상을 보이는 사람들의 통상 수치라고 말할 수 있겠다. 5·18이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우리사회의 시민권을 확보하고 그 정당성을 입증시킨 것은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고에 기인한 바 크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 민주화의 보편적인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 보편적인 상징이 지난 십 수 년 간 시민사회운동에게 낡은 보검처럼 여겨졌던 게 저간의 사정일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5·18 과제의 해결 정도와 함께 다른 여러가지 사정이 착종해 있을 것이다. 현실 변화에 따라 시민 사회단체와 활동가들의 변모가 필요하듯이 활동가 스스로 변화와 전진을 위해 헌신할 수 있도록 환경과 여건을조성하는 데 5·18기념재단이 거점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1년에 한차례 열리는 활동가 연수 프로그램(5·18아카데미)의 확장을 통해 활동가 스스로가 운동의 자기 전망을 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형 연수 프로그램이 확대되어야한다. 보이지 않는 현장에서 헌신하고 있는 풀뿌리 단체와 활동가들에게는 든든한 배후지가 되도록 알려질 필요가 있다. 5·18기념재단이 공모를 통해서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일이 더 확대되고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는 얘기이다.
이는 비단 한국사회 시민사회운동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동안 특히 아시아 국가의 민주주의와 인권운동에 다양한 형태로 지원과 연대를 꾀해왔지만 단순한 관계를 넘어서서 보다 폭넓은 연대로 나아가야 하고 문제 해결의 대안을 강구하는 방향으로 지원의 중심을 만들어가야 한다. 외교력도 높여야 하며 상호 연대 방식도 치밀해야한다. 아시아인권학교의 20여일 기간 단기 훈련 프로그램과 함께 종합적인 훈련프로그램이 필요한 시점이되었다.

 
30살이 되는 5·18과‘구 전남도청’의 5·18 상징으로의 재구성
 
 

광주는 문화도시로 거듭 태어날 예정이다. 아시아문화전당 건립이 한창 진행 중이다. 그 정신적 가치는 5·18이다. 시민군 지도부가 죽음으로서 지키고자 했던 5·18의 모든 서사가 집중되는 상징 공간이다. 아시아문화전당이 들어서면서도 5·18관련 5개의 건물과 분수대가 보존되 었다. 이 공간을 어떻게 5·18의 상징으로서 당대를 아우르면서 미래를 꿈꾸게 하는 내용으로 재구성할 것인가. 오는 5월에 착공하여 2010년 5·18 30주년에 보존공간이 재탄생할 예정이다.

 
지역 시민사회와 함께 광주를 거점으로 전국을 포괄하며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운동이 호흡하며 상호 교류하고 그 소통의 전부가 문화화하는 곳임을 꿈꾸는 것은 상상만은 아닐 것이다.
5·18이‘당사자’와 광주라는 지역에 갇힌 원인은 단순하지가 않다. 지역을 볼모로 끊임없이 5·18을 써먹어왔던 정치집단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5월’과 시민사회의 역량에 따라 이제 서른 살을 앞둔 5·18의 시대적 징후는 다시 그 면모를 드러내리라 판단한다. 2010년 5월을 대비하여 5·18해결 5원칙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미완의 것들을 짚어보는 일은 지난 해에 수행했다. 이제 정치적 이념의 영역에서 철학적 가치의 갈래로서 진보적 역사의 중심으로서 문화·예술적 미학의 창출로서 5·18의 재구성을 지향하며 30주년 사업기획팀을 구성한 것은 상황을 주체적으로 돌파하자는 취지이다.
5월과 시민사회 그리고 지자체와 정부 차원에서 공동으로 모색할 일을 지금부터 준비하자는 문제의식이다. 교육, 학술담론, 시민사회운동, 국제연대, 문화예술 영역으로 전략팀을 구성하여 서른 살 5·18을 제대로 맞이 하고자 준비하자는 것이다.
 
저항정신과 대동정신의 발신지, 또는 그 것의 네트워크 공간을 꿈꾸며
 
이제 5·18은 제도화한 만큼 몸집이 커졌다. 군살도 붙었을 것이다. 내면의 상처도 깊다. 어느 누구를 탓할 여유가 없다. 저항정신과 대동정신이 보통명사로서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될 때까지 우리 모두는 지난 역사의 등짐을 함께 져야 할 것이다. 다만, ‘5월’을 중심에 보듬고 있는 5·18기념재단이‘5월’을 매개로 하여 거칠지만 더욱 씩씩한 목소리를 우렁차게 내고자 준비하고 있다. 이 울림의 진폭이 경향각지와 아시아 나라 활동가들의 응답 여하에 달려있다고 한다면 너무 허황한 기대인 것인가.
 
 
글/조진태 (재)5·18기념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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