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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공단 역사박물관의 '중심' 잡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3. 6. 26. 10:39

구로공단 역사박물관의 '중심'잡기
                        
글 장남수/ jnsoo711@hanmail.net
 

그 방은 ‘쪽방’, 또는 ‘벌통집’이라 불렸다.
구로공단에서 민주노조를 결성한 죄로 1980년, 계엄사에서 고초를 겪고 해고당한 배옥병 전 (주)서통 노조위원장은 그 ‘쪽방’의 기억이 생생하다. 

 


1970년대 구로2공단의 (주)서통 노동자였던 배옥병이 살았던 방도 마치 벌집이나 마늘쪽처럼 한 대문 안에 열세개의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화장실은 딱 한 개, 아침마다 치열한 확보전이 벌어지는 공간이었다. 대문이랄 것도 없는 입구로 들어가면 방 하나, 연탄아궁이 하나, 다락 하나 딸린 작은 방들이 나란히 있고 숨 쉬는 것까지 옆방에 다 들리는 생활공간이었다.


그래도 그 작은 방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부럽고 아늑한 품 같은 곳이기도 했다. 배옥병은 몇 년간 기숙사에서 근무하다 노동자들이 모일 공간의 필요성을 느껴 벌통집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그 방에서 고소한 부침개가 구워지고 노란 냄비에 라면이 끓었다. 소위 ‘가다밥(틀밥)’만 먹던 기숙사생들은 연탄아궁이에서 구워진 소박한 음식들을 늘 그리워했다. 일주일에 한번만 외출이 허용되고 한 달에 두 번 첫째, 셋째 주 일요일만 쉴 수 있었던 기숙사의 노동자들은 자취하는 친구들 집에 모여 놀던 즐거움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음식들과 함께 민주노조의 꿈도 자라고 피었다. 신경숙의 소설에서 벌통집은 소녀들의 애틋한 애환의 공간이지만, 그 곳은 ‘민주노동’쟁취의 치열한 현장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노동자들은 70년대 ‘산업’을 부흥하게 했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도 했고, ‘내일’의 희망을 품기도 했다. ‘민주주의의 학교’ 라는 민주노조도 만들었다. 민주노조를 하려는 ‘죄’로 구사대에게 쫓기고, 감시당하고, 정보기관에 끌려가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콘트롤데이타, 동남전기, 대우어패럴, 효성물산 가리봉전자들을 기억한다. 한국마벨, 유니전, 성도어패럴, 그리고 기륭으로 줄기는 이어진다. 지금은 ‘가산 디지털단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구로공단’은 그야말로 노동으로 구성 된 치열한 삶의 역사를 지닌 ‘공단’이었다.

 

그곳에 현재 ‘구로공단 역사기념 사업’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이미 성공회대학이 <구로공단역사기념사업 수립 연구용역>을 맡아 연구 된 세부계획(안)이 발표 된 바가 있고, 여러 차례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구로공단에 역사박물관을 건립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하고, 그 안에는 무엇이 담겨야 할까? 70년대 민주노조 운동가들의 모임인 ‘70민노회’에서 이 사업의 논의 대표로 결정된 4인 중 한 사람인 배옥병씨를 만났다.

 

- 구로지역 ‘노동역사 박물관’은 언제부터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

2002~3년경 성공회대학교에서 만학도로 공부하던 무렵, 성공회대학교의 조희연, 김동춘 교수 등이 구로에 노동역사박물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들을 했고 그 논의에 한때 참여한 적이 있다. 그리고 지난 해 금천구청장이 구로공단역사 박물관을 고민하는데 핸드프린팅 행사에 참여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 ‘구로공단 역사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G-벨리’등이 주도하여 ‘닭장집’ 개관도 했다고 들었는데?

성공회대가 구로지역의 역사박물관 필요성을 연구하여 구로구와 금천구에 제안했는데 금천구가 받아들였다. 금천구는 성공회대의 용역을 기초로 서울시와 지역의 산업자본을 포함하여 진행하려고 생각한 것이고 이것을 인명진 목사가 G-밸리(지역경제인 민간연합단체)라는 이름의 재단을 만들어 사무실과 상근자까지 두고 추진하고 있다.
5월 2일에, 70~80년대 노동자들이 생활했던 ‘닭장집’ 과는 전혀 무관한 연립주택을 매입하여 리모델링한 후 ‘닭장집’ 개소식을 진행했다. 추진위원회도 꾸려지지 않았는데 일방적으로 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 어떤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보는가?

공익재단을 만들어 공공성을 확보해서 운영하는 것이 원칙이다. 국가예산과 지방자치 예산을 근간으로 해야 한다. 또한 취지와 목적에 걸맞은 추진위원회를 만들어야 하고 ‘구로공단 역사기념사업’을 위한 독립 예산과 계획이 수립되어 부지선정과 내용이 논의 되어야 한다.
더불어 추진위원회는 ‘노동’부문이 50% 이상은 참여되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이 수렴되지 않고 ‘노동’부문이 주체가 되지 않으면 산업화중심의 박물관이 될 수밖에 없다. 산업화가 부정 되거나 배제 되는 것이 아니라 중심이 거기로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서울시의 미래유산박물관건립계획 100곳 선정 안에 구로역사박물관도 포함 되어 있다. 금천구청장이 박물관 건립의 의지가 있으니 서울시와 협력하고 정부예산을 확보해내면 된다. 물론 기업도 사회적 참여나 기여 측면에서라도 함께 하면 된다. 중심주체의 원칙이 문제 되는 것이다.

 

- 현재 ‘노동’의 논의는 어느 정도?

70~80년대 노동주체였던 사람들, 이를테면 ‘70민노회’ ‘구로연투’ ‘지역의 야학이나 추모사업회’ 등의 지역 관련자들과 민주노총이 ‘구로공단 역사기념사업 건립을 위한 구로지역 역사와 함께 하는 사람들’ 이란 이름으로 성명서도 내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금천구청장, 서울시, 지역의 국회의원들과 기왕에 구성되어 있는 G-밸리를 포함하여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방향을 공유해 나갈 것이다.

 

배옥병씨는 뒤에 붙는 이름이 많다.
현재 ‘사단법인 희망 먹거리 네트워크’의 상임대표를 맡고 있고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 국민연대’라는 긴 이름의 공동대표와 서울시 친환경급식 통합지원센터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의 이력을 여기서 다 열거 할 수도 없고, 해고자에서 친환경무상급식 실현과 지속가능한 사회의 희망먹거리의 활동가로 일해 온 내용은 책으로 엮기에도 부족하다. 다만 자본의 횡포에 맞서 싸웠던 70년대의 그가, 2013년 오늘도 여전히 거대자본의 비인간화 행태와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는 거대 급식업체 관계자로부터 ‘밤 길 조심하라.’는 협박도 받았고 쌍스러운 패악과 음해도 많았다. 때로는 지치고 버거워 놓고도 싶었지만 놓을 수 없는 희망의 근원은 끊임없이 억압받고 차별받는 사람들과 나누며 살았던 사람들 때문이다.
바쁜 와중에도 노동역사 박물관의 가치를 고수하려는 노력 역시, 이미 시작 되었고 추후 예상되는 어려움이 적지 않지만 놓을 수 없다.

 


그의 말처럼 구로공단의 역사를 담는 박물관에 노동의 가치가 잘 녹여지지 않는다면 번듯한 구조물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런 일에는 이런저런 이해관계를 바탕에 깔고 개입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자가 있으면 궤변이 일어나고 논의가 꼬인다.
진정 구로공단을 상징하는 역사적 가치가 잘 복원되고 ‘노동’의 가치가 후손들에게 건강하게 전달되어 감동이 있는 역사 전시관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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