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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쓰는 민주주의
슬픔을 길어 올려, 지금 다시 광주로 - 임동확 『매장시편』 글 서효인 시인/ humanlover@naver.com 아우슈비츠 이후로 서정시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아마도 1980년 5월 이후가 그러했을 것이다. 하필 5월 광주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5월의 남도에서 언어를 습득했으며, 5월의 한반도에서 삶을 지속시킨 많은 사람은 죄의식과 패배감의 등짐을 꾸려야 했다. 우연히 그곳에 없어서 목숨을 부지한 사람이 많았다. 그곳에 있었지만 용기가 없어 산 자가 된 사람도 있었다. 그곳에 있어서 죽은 자를 목도해야만 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누구인가. 그렇다. 그들은 바로 우리이다. 5월 죽음을 비켜난 우리 모두 죄인이어야 했고, 그래서 우리는 분과 아픔과 슬픔을 삭이고 말했던 것이다. 나는, ..
오월의 기억, 삼양동 사람들 글 장남수 (원풍노조, 등 집필) * 이 글은 윤기현 씨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김지선 씨의 증언을 더했습니다. 1980년 오월 광주의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이 전국에서 치열한 활동을 전개했음은 모두 아는 사실입니다. 그 중 한 지역인 서울 삼양동 산동네에서 이루어진 활동들은 지면을 통해 이야기된 적이 없기에 이번 기회를 통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지면관계로 매우 축소할 수밖에 없는 점, 관계되신 분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윤기현의 기억 그날, 윤기현(농민운동을 한 아동문학작가이며, 현재 를 설립준비 중)씨는 광주 도청 안에 있었다. 5월 27일 새벽 두시쯤 되었을 때 그들(진압군)이 들어온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이미 ‘순교’를 결의한 상태였다. 다만 최후의 상황이 닥쳤을 때 청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