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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쓰는 민주주의
70년대 많은 청년들의 경우처럼 강은기의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준 인물은 ‘한국의 간디’라 불렸던 함석헌이었다. 성경과 동양철학을 독특하고 자유롭게 풀이해 내는 함석헌의 사상과 불의한 정치권력에 맞서 ‘싸우는 평화주의자’로서의 면모는 강은기에게 어떤 ‘길’을 제시했다. 어릴 때부터 가져온 기독교 신앙과 출가의 경험, 불합리한 현실과 유신정권에 대한 저항감, 비체계적인 독서로 추상적인 고민만 불려 왔던 강은기는 함석헌과 그의 스승 유영모의 자택을 들락거리면서 비로소 자기 인생의 구체적인 목적과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인쇄 직공 할 때는 인쇄노동운동을 꿈꿨죠. 전태일의 분신자살을 보면서 열악한 상황에서 혹사당하는 인쇄노동자들이 똘똘 연대해서 노동자가 주인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 근데..
한때 운동권의 각종 인쇄물을 지칭하는 은어였던 ‘피(P).’ 실로 그것은 운동의 피(血)요 무기였다. 그것은 군사정권의 감시망을 피해 점 조직으로 연결된 구성원들을 동일한 입장과 원칙으로 묶을 수 있는 용이한 도구였고, 지하 언로였으며, 정보에 굶주린 대중의 귀에 정의와 진실의 소리를 들려주는 데 없어서는 안될 선전수단이었다. 러시아의 혁명가들이 근거지를 옮길 때마다 인쇄기를 끌고 다닌 것도, 볼셰비키가 ‘이스크라’를 제작한 그 유명한 코카서스 지하 인쇄소를 손아귀에 넣기 위해 애를 쓴 것도 바로 이 인쇄의 중요성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1930년대 사회주의 운동가 이재유는 ‘편지 한 번 주고받는 데도 한 달이 걸리는’ 머나먼 땅으로 망명을 권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반문했다. “국내 상황을 전달하는 데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