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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불평등] 채식의 불평등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5. 24. 14:10

[세상의 모든 불평등] 채식의 불평등

채식주의자가 몰려온다

최이삭 redsummer312@gmail.com



내가 아는 채식주의자는 세 명이다. 미국에서 인턴십을 할 때 만난 체질상 고기를 먹지 못하던 채식주의자와 고기 빼곤 모든 것을 먹던 미식가 채식주의자 그리고 이효리다. 특히 이효리의 채식은 한국에 채식 광풍을 몰고 온 것 같다. 그녀의 영향으로 요즘 ‘채식’이라는 외국어 같던 단어가 대중의 화두에 자주 오르내리고 대중매체가 ‘기자들의 일주일 채식 체험기’ 등으로 재빨리 기사화하면서 채식을 시작하겠다는 사람들이 주변에서 속속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채식주의자란 대체 무엇일까? 이것의 유형은 다양하다. 계란은 먹고 뭐는 안 먹고를 따지려는 게 아니라 어떻게 채식주의자가 됐는지, 또 어떻게 채식을 유지하고 있는지에 따라 다양한 유형으로 비채식주의자 또는 육식주의자 또는 보통 사람들의 관점에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고기를 먹는 사람들에게 채식주의자는 ‘유난스럽게 고기를 안 먹는다는 사람’만으로 구분이 충분할지 모르나, 분명한 건 이제 우리가 채식주의자를 인정해야만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채식하고 있다

국내 채식 인구에 대한 조사는 2004년 서울대 학생들에 의한 것이 유일하다고 알려졌는데 전체 인구의 1%, 약 50만 명이라고 한다. 미국의 <베지테리언 타임즈>라는 잡지에 의하면 2011년 전체 인구 약 3억 중 730만여 명이 채식주의자이며 이와는 별도로 2,280만여 명이 채식주의 성향의 식단을 따르고 있다고 한다. 통계대로라면 미국이 한국보다 비율상 약 2.5배 많은 채식주의자가 있을 뿐인데 한국에서는 주변에서 채식주의자를 거의 보지 못한 반면 미국에서는 열댓 사람이 모이면 한두 사람은 꼭 채식주의자였다. 때문에 단체로 음식을 먹을 때면 채식주의자의 성향이 필수로 고려되곤 했다. 바비큐를 할 땐 채식주의자를 위해 콩으로 만든 소시지를 준비했고 샌드위치를 주문할 땐 일정 양은 꼭 채식주의자용이었다.

또 한 통계는 전 세계적으로 3% 가량의 인구가 채식을 하고 있다고 전한다. 이중 70%가 인도의 채식주의자이며 그들은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등의 영향으로 채식을 하고 있다고 한다. 채식주의의 큰 물줄기는 인도에 있다. 채식주의가 그곳에서 시작되었고 가장 많은 채식주의자가 모여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채식주의는 인도와 그리스의 철학자와 종교지도자들이 비폭력을 실천하는 수단으로 시작한 것에서 기원한다. 그러나 우리가 속한 서양의, 또는 서구화된 현대의 채식은 이 큰 흐름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다.

2002년 미국에서 미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한 여론 조사에 의하면 사람들이 채식을 하는 이유는 크게 나눠 건강의 이유가 55%이고, 신념의 이유가 32%이다.



왜 채식하는 걸까?

채식은 왜 하는 걸까. 나는 ‘우리’가 채식하는 이유는 먹을거리에 대한 환경의 변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 채식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된 것은 미국에서 였다. 2004년 농림부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은 세계 쇠고기, 닭고기, 우유 생산량 1위, 돼지고기생산량 2위 국가이다. 미국에서 생활할 때 나는 거의 매일 오늘은 너무 많이 먹었다고 자책하곤 했다. 한국에서의, 어머니의 식단은 밑반찬과 국으로 간소하게 구성되는데 비해 스스로 꾸리는 식사는 바로 조리한, 한 접시의 볶은 음식이 기본이다 보니 고기를 자주 먹었다. 물론 고기가 많이 생산되는 나라이니 한국에 비해 값도 매우 쌌다. 또 미국은 조리된 음식을 사 먹거나 외식하는 일이 잦아 튀긴 음식, 달고 짠 음식, 한 끼 식사로는 적당하지 않은 지나치게 푸짐한 음식을 자주 먹어 식사를 할 때마다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기분이 들곤 했다.

게다가 미국은 그야말로 식재료의 천국이다. 대형 마트에 가면 당근 하나만 해도 스낵처럼 먹을 수 있도록 한입 크기로 잘라서 세척한 것, 그 세척 당근을 큰 봉지에 담은 것, 한 회에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담아서 네 개로 묶은 것, 샐러드용으로 지그재그 모양으로 잘라서 다른 세척 야채들과 묶은 것 등이 있고 이 가공된 야채들과 그냥 야채들은 값의 차이도 거의 없었다. 그곳은 정말 식재료의 폭이 넓고 저렴했다. 아, 수많은 소스와 통조림들, 베개만한 감자칩들∙∙∙. 그 모든 것들이 미국의 광활한 토지에서 대량으로 값싸게 생산, 유통되고 있었다. 미국에서의 나의 식생활은 한 순간에 있는 밥과 반찬에 가끔 특별한 요리를 밥상에 올리고 외식을 더하던 체계에서 외식의 세계로, 언제나 동경 하던 것들을 제한 없이 먹을 수 있는 체계로 이동했다. 너무 행복했지만 그런 곳에서 건강을 유지하고 살기 위해선 식생활에 대한 명확한 자기 기준이 필요했다.

고기는 일주일에 몇 번 이상은 먹으면 안 되고 패스트푸드는 지양할 것과 같은 원칙 말이다. 나는 아주 소극적이었는데 언제 고기를 먹었는지를 기억하고 있다가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으면 한동안은 의식적으로 고기를 먹지 않는다거나 일주일에 하루 금식을 시도했었다. 물론 잘 되지 않았다.

▲미국 대형마트의 모습



식재료의 홍수 속에서

음식은 나를 구성하는 하나의 ‘외부 신경’이자 영혼의 근기이기에 이것에 대한 문제는 벗을 수 없는 옷처럼 인간에게 매우 밀착해있다. 여기에 맛있는 것만 먹고 사는 것은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현대의 거대 농장들은 이것을 거의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인간이 음식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고 건강한 삶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서는 먹을거리에 대한 자기만의 명확한 기준과 약간의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채식은 이 먹을거리의 홍수에서 인간이 선택한 하나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식재료가 넉넉하지 않을 때는 자연히 음식이 인간과의 거리를 만들고 사람은 그것을 쫓았으나 이제 인간에게는, 어디까지나 우리가 보편적으로 체험하고 있는 인류에게 음식은 공공 도서관의 책처럼 기호에 따라 선택해서, 누구에게나 있는 회원카드를 제시하고 책을 빌리듯 돈을 내고 사오면 되는 것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거대 농장에서 생산된 값싸고 다양한 식재료와 경제 발전이 우리를 먹고 싶은 것만 먹고 살 수 있도록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이 무제한의 환경은 우리의 더 싸고 맛있는 것에 대한 욕망을 위해 다양한 문제를 초래해 왔고, 많은 채식주의자들이 채식을 시작하게 만드는 연유를 제공하기도 했다. 농장의 가축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오로지 소비되기 위해 사육되고 있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으며, 유엔식량농업기구의 2006년 보고서에 따르면 축산업의 온실 가스 총 배출 비율은 전체의 18%로 전 세계 자동차, 비행기 등 모든 교통수단을 합한 것, 13.5%보다 많다고 한다. 이처럼 현대 사회의 먹을거리의 범람으로부터 발생한 문제들은 다양한 경로로 채식을 유발하고 있다.



▲축산업의 동물 학대 실태를 다룬 유투브 동영상


 앞으로 우리는 더 거대한 식재료의 홍수 속에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채식과 같은 방법을 통해 먹을거리로부터 자신을 떼어놓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누군가의 채식을 유난스러운 자기 절제라고 비하하기보다는 그것을 음식과 인간이 교류하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할 것이다. 다수가 다수의 입맛 만을 진리로 여기는 사회는 얼마나 불평등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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