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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쓰는 민주주의
여기 노래가 그리고 날개가 -詩人 김남주 헌정 시집 글 서효인 humanlover@naver.com 여름이 되면 우리는 새삼 덥다고 불평이고 보양식을 찾거나 바다며 산으로 휴가를 떠난다. 뜨거움이 사라진 시대에 뜨거운 날씨만 남아 역시 무미건조하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괴롭힌다. 우리는 자연의 지속적이고 동시에 예측 불가능한 탄압에 맞서 얼음을 가득 채운 음료를 마시거나 에어컨을 틀거나 그것도 아님 연신 손부채질을 한다. 그렇다. 여름이 왔다. 나에게 항상 여름인 시인이 있다. 이승에는 없다. 그는 저 너머의 세상에 있다. 시인으로 혹은 전사(戰士)로 불린 사내, 목숨을 내건 투쟁과 영혼을 다한 시작(詩作)을 온몸으로 실천한 사람. 바로 김남주다. 스스로가 전사라고 굳게 외쳐왔던 시인. 그가 떠나..
‘학살·2’ 중에서 김남주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날 낮이었다 낮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낮 12시 거리는 한 집 건너 울지 않는 집이 없었다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다 낮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 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리 처참하지는 않았으리 그 악마의 음모도 이리 치밀하지는 않았으리
직립(直立) 인간 김남주 2 어느 날 문득, 인류의 머나먼 방계조상이 벌떡 일어설 생각을 하게 된 후로, 직립은 줄곧 인간의 자존을 상징하게 되었다. 인간은 허리를 펴고 꼿꼿이 섬으로써 자신을 네발짐승과 구별했으며, 진리와 완성의 숫자 1의 형상을 닮은 수직의 자세를 취함으로써 수평의 자연에 도전했다. 끊임없는 저항과 불복종, 도전의식은 인간이 직립의 자존심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직립인간 김남주의 자존심도 바로 이 수직의 당당함에 있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무릎 꿇지 않은 자의 당당함, 그것은 처세도 기교도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단숨에 진실로 육박해 들어가고야 마는 정직한 싸움꾼의 정신이었다. 자유 좀 주세요 자유 좀 주세요 강자 앞에 허리 굽히고 애걸복걸하면서 동냥 따위는 하지 않을 것..
직립(直立) 인간 김남주 1 휘영청 밝은 달이 캄캄한 어둠을 녹이던 어느해 추석날 밤, 술 몇 잔에 얼굴이 붉어진 키작은 청년 하나가 다짜고짜 소설가 황석영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한 손에는 집에서 '아마도 새마을 도로 가에 심어 놓은 걸 꺽어 왔을 듯핑은' 코스모스 한 다발을 들고서, 집안에 들어선 청년은 코스모스 다발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시키지도 않았는대 거기 피어 있습니다" 작달만한 키에 굽 닳은 구두, 낡은 '우와기' 에 부스스한 머리. 옷을 벗을 때마다 희고 굵은 이빨이 드러나 더욱 새까매 보이는 얼굴... 검은 뿔테 안경이라도 걸치지 않았더라면 영축 없이 시골 농사꾼으로 보였을이 구닥다리 청년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피어난 것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흔하디흔한 것들에 대한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