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함께쓰는 민주주의

해방으로 전진하는 사람들 본문

인물/칼럼/인터뷰/문화초대석

해방으로 전진하는 사람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8. 12. 23. 11:33

해방으로 전진하는 사람들“고개 숙여! 이년들아, 어느 년이 고개 드는 거야! 아침부터 맞아 뒈져볼래, 미친년들!”
우리는 90년 5월 붉은 태양이 작열하는 공장 운동장 한복판에서 ‘우리는 하나’가 씌어진 붉은 셔츠를 입고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조합원 여러분 힘내요! 조금만 참아요, 조금만!”
공장 정문 밖에선 개처럼 질질 끌려 내동댕이쳐졌던 조합원들이 울며불며 소리치고 있었다.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누구 한 사람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눈물이 콧등으로 흘러 콧물과 함께 뭉개져 시멘트 바닥에 ‘뚝뚝’ 떨어져도 손으로 훔치지 못했고, 그냥 대책 없이 흘려보내야 했다.
“야! 이 개새끼들아 우리 들여 보내줘!”


공장 문밖의 조합원들이 구사대에게 빙 둘러 갇혀 있는 우리들에게 힘을 주느라 아우성이었다. 아침부터 술 냄새를 풍긴 채 웃통을 벗어 던지던 구사대는 성난 미친개처럼 몇 안 되는 우리들을 금방이라도 한입에 삼키려는 듯 숨을 헐떡거리며, 침까지 흘려가며 노려보고 있었다.
“우리는 하나다, 웃기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그래 빨간 티 입으니깐 힘이 솟냐, 이 빨갱이 같은 년들아! 어느 년 머리에서 나왔어, 니년이야, 아니면, 저년이야, 에이 이 개년들!”
더 이상 반항할 힘도, 사람도 없었다.


800여 명이었던 조합원이 회사 측의 온갖 협박과 상술에 못 이겨 탈퇴했거나, 어떤 조합원은 장기간 휴가를 내기도 했다. 회사에선 그 것도 모자라 파업하는 사진을 찍어 시골 부모들한테 보냈다. 그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빨갱이 물든다고, 조합원들을 데리고 내려가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결국 조합원은 다 떨어져 나가고 100여 명 정도만 남게 되었다. 조합 간부들은 해고 되어 공장 안으로 들어올 수도 없었고, 파업에 동참하는 조합원들은 반으로 줄었다. 그나마 얼마 안되는 조합원도 정문 밖과 안으로 나뉘어 뭉칠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우리에게는 아무런 대책도 없었다. 고개를 들지도 못한 채 뭔지 모를 느낌과 기운으로 서로를 위로하는 우리는 서러워 쏟아지는 눈물을 훌쩍거리며 정말 ‘악으로 깡으로’ 태양 아래 당당히 버티고 서 있었다. 얼마나 서 있었을까! 누군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하였다.

 

악으로 깡으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명세~”
“어떤 년이야! 엉~ 저년이 주댕이 벌렸어, 저년 끌어 내, 그래, 저년도”
옆 사람이 머리채를 잡혀 끌려 나가도 움직이지 않고 계속 노래를 불렀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모두 다 노래를 따라 불렀다. 서서히 작아지면 또 그 누군가가 개미 같은 목소리로
“흩어지면 죽는다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 하나 되어 우린 나간다, 승리의 그날까지~”
“그래 이년들아 어디 한번 뭉쳐 봐라, 안 뭉치고 흔들리면 뒈지나 안 뒈지나 어디 한번 보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후렴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부르고, 급기야는 이 노래 저 노래를 혼동해서 부르기도 해 예상치도 않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년들이 이젠 미쳤네, 노래하니깐 좋냐? 좋아! 쳐 웃게”
미친개들은 우리들의 웃음의 이미를 알 턱이 없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진행되었던 파업은 억지로 끝났고,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다. 현장에 복귀하면서 부서 이동이 시작되었고 그야말로 본격적인 ‘현장 전쟁’이 시작됐다. 시도 때도 없이 조합원들을 감시하고, 노동조합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니네들 준법투쟁이니 뭐니 해서, 책상을 두드리거나 소리를 내거나 하는 년들 끌어 낼 줄 알아”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우리는 어김없이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책상을 두들겨 댔다.
“이년들이 겁 대가리를 상실했구만, 다 끌어내!”
현장은 순식간에 땜질한 럭비공이 됐다. 팔짱 끼고 지시하는 놈, 때리는 놈, 마지못해 끌어내는 놈,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넘쳐 의자로 내리찍는 놈, 사진 찍는다고 카메라를 들고 있는 조합원의 손에 순간접착제를 붓는 놈…….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이 개새끼들아”
순간 나도 모르게 분노가 치밀어 올라 안경을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너 이년 잘 됐다, 이 째깐한 년, 이년 끌어내”
구사대가 달려와 내 허리춤 뒤를 한 손으로 ‘덥석’ 들었다. 난 저울의 추처럼 ‘빙빙’ 돌며 정문 밖으로 ‘휙’하니 던져졌다. 정문 밖에는 이미 다른 층에서 끌려 나온 조합원들이 울고 있었다. 누구는 4층에서 끌려 내려와 무릎이 다 까져서 피가 ‘철철’ 나고, 임신한 조합원이 머리채를 휘어잡힌 채 벽에다 머리를 부딪치고……. 그 세월이 7년이나 반복됐다.


96년 이른 봄, 열두 명 정도 되는 조합원과 구사대들이 함께 정리 해고 되었다. 그 와중에 구사대들도 조합에 가입해 함께 두 달 동안 공장 안에서 스티로폼을 깔고 투쟁하며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반성하며 마지막을 함께하는 기가 막힌 일도 생겼다.

스무 살의 충격
내 나이 스무 살에 겪은 너무 큰 충격이었다. 공장에서 보고 당한 일을 세상에 알리지 않으면 무슨 일이라도 낼 것 같았다. 고민 끝에 조합원들과 파업 상황을 그대로 재연하기에 이르렀다. 어설픈 탈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깃발도 휘두르고……. 그런데 여기저기에서 조합원들이 울기 시작했다. 연극을 하던 우리들도 ‘훌쩍’ 대느라 대사도 제대로 못했지만, 동지들은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난 바로 이거다 싶어, 구로지역 연극패 ‘해방으로 전진하는 사람들’(해방전사)에 들어가 연극을 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낮에는 공장에서, 밤에는 지하 연습실에서 라면을 먹어가며 새벽까지 연습하다 잠깐 눈 붙이고 새벽에 출근을 하곤 했다. 공연 날이 다가오면 구로공단 전봇대를 밤새 도배했다. 우리 공장 얘기뿐 아니라, 구로공단 다른 파업 현장 얘기도 쉴 새 없이 써댔다. 그게 바로 ‘구로지역 문화패 합동 공연’, ‘참사랑 1, 2, 3’이다. 99년까지 가을마다 큰 공연을 올렸었다.
지난날 치열함을 함께했던 구로공단의 모든 ‘해방전사’들이 이 살기 힘든 세상에 고개를 떨구고 살고 있지는 않는지…….

 

 

 글 / 임삼례(연극인)

'인물/칼럼/인터뷰 > 문화초대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짭새와 술 한 잔  (0) 2008.12.23
배신자의 길  (0) 2008.12.23
뺑끼통과 장기수  (0) 2008.12.23
지독한 우정  (0) 2008.12.23
남고괴담(男高怪談)  (0) 2008.12.23
목수망치 사건  (0) 2008.12.23
두 운동의 충돌  (0) 2008.12.23
그 여대생, 주란꽃을 배우다  (0) 2008.12.23
상당히 기분 나쁜 시대를 산 두 남자  (0) 2008.12.23
안양유원지 쌍쌍파티  (0) 2008.12.23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