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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와 민주주의 나라 스웨덴을 가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3. 6. 26. 11:02

복지와 민주주의 나라 스웨덴을 가다

"현재의 스웨덴은 낮은 데시벨의 사회" 쇠데르턴대학 정치학과 최연혁 교수 인터뷰

 

글 김재우/ compagna@kdemo.or.kr


 

"집(가정)의 기본은 공동체와 동고동락에 있다. 훌륭한 집에서는 누구든 특권 의식을 느끼지 않으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
 
국가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스웨덴입니다. 85년 전, 이 나라의 사회민주당 당수인 페르 알빈 한손(Per Albin Hansson)은 국회연설문에서 위와 같이 말했습니다. 연설문의 전체 내용은 사회적 불평등과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 개혁을 주창한 것입니다. '국민의 집'이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이 연설문은 스웨덴 국민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저는 지난 16일부터 22일까지 '국민의 집'에 다녀왔습니다. 1928년 전 '국민의 집' 연설 이후 스웨덴 국민들의 삶의 변화 과정이 궁금했습니다. 스웨덴 복지와 사회에 대해서 소개한 책들과 영상들을 찾아봤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홀로 6일 동안 돌아다녀봤자 한계가 많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스웨덴 사회와 복지에g 대해 이해를 도와줄 전문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쇠데르턴 대학교 전경쇠데르턴 대학교최연혁 교수최연혁 교수

 

그러던 중 한겨레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최연혁 교수를 알게 됐습니다. 최 교수는 1988년 스웨덴으로 건너가 스웨덴 복지와 민주주의에 대해 연구했고 현재 쇠데르턴대학교 정치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장이기도 한 그는 작년에 책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출간을 통해 한국에 스웨덴 모델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저와 같이 스웨덴에 관심이 있는 한국인들은 거의 빼놓지 않고 최 교수에게 연락해 도움을 요청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제 방문 시기가 한겨레 사회정책연구소와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스톡홀름 사회포럼 준비로 무척이나 바쁜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먼 길을 날아온 손님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18일 오전 스톡홀름 남부에 위치한 쇠데르턴대학교에서 최연혁 교수를 만났습니다.

 

학생을 위한 학교, 국민을 위한 정치

 

쇠데르턴대학 도서관에서 최교수에게 스웨덴 사회에 대해 물었습니다. 최연혁 교수는 그가 몸담고 있는 쇠데르턴대학교에 대한 설명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학과 교수회의나 총장 주재 회의에는 학생 대표가 의무적으로 참가하고, 이들이 제안하는 내용을 두고 교수들은 어떻게 실행에 옮길지 고민한다"고 말했습니다. 형식적으로 학생들을 회의석상에 데려다 앉혀놓는 게 아니라 학생들의 의견이 회의에서 주된 안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최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누구를 위한 것이냐?'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됩니다"고 운을 뗀 뒤 "학교는 학생을 위한 것이고 정치는 국민을 위한 것이죠. 그것을 염두에 둔다면 자연스럽게 갈등의 요소가 해결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학교가 학생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정치인들도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현재 스웨덴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스웨덴의 정치인들이 거의 싸우지 않는다고 합니다. 최 교수에 따르면 '국민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스웨덴 정당의 논쟁들은 방법의 차이 때문'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최 교수는 "낮은 데시벨의 정치, 낮은 데시벨의 사회"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낮은 데시벨의 정치 또한 국민이 주인이라는 전제에 정치인 모두가 동의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큰 목소리가 날 일이 없다는 겁니다.

 


협의민주주의의 실현, ‘특별위원회’와 ‘국가특별조사보고서’

 

스웨덴 국회의사당스웨덴 국회의사당

 

스웨덴의 정치 문화를 두고 최 교수가 말한 '낮은 데시벨의 정치'는 정치권에서 오랜 시간 진행해 온 논의와 조정 문화의 결과물로 보입니다. 최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정치문화는 특별위원회(Kommittéväsendet) 제도 및 국가특별조사보고서(SOU·Statens Offentlig Utredning) 제도를 통해서 가능했다고 합니다.
 
특별위원회 제도는 정책 사안에 대해 정당, 전문가집단, 행정관료, 이익단체가 골고루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 후 각계의 목소리를 취합하여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하면서도 과학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제도입니다. 이 특별위원회 제도는 1600년대 국왕자문기구로 시작됐는데 현재에는 국정개혁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별위원회는 충분한 연구를 통해 정부에 정책보고서를 제출하는데 이것이 국가특별조사보고서(SOU)입니다. 국가의 충분한 지원을 통해 작성되는 이 보고서는 해당 사안에 대한 최고의 연구보고서인 것입니다. 특별위원회 제도와 국가특별조사보고서 제도는 논란이 되는 문제에 대해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다양한 그룹들이 참여하여 논의하는 협의민주주의의 한 형태라고 합니다.

 

‘넌 남들과 달라’ & ‘넌 남들과 다르지 않아’


스웨덴 사회의 민주주의에 대한 설명을 듣던 중 시민성에 관한 재밌는 일화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최 교수와 알고 지낸 한국인 가족과 스웨덴인 가족이 같이 만난 자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한국 남자아이와 세 살배기 스웨덴 여자아이가 서로 만났는데 두 아이의 행동이 너무나도 달랐다고 합니다. 모든 게 자기 우선인 한국 아이와는 대조적으로 세 살배기 스웨덴 아이는 한국인 오빠를 끔찍이 챙겼다고 합니다.
 
스웨덴 여자아이가 한국인 오빠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랬을까요? 최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스웨덴에서는 생후 13개월부터 탁아소에 갈 수 있는데 국가가 정한 교육지침에는 '탁아소의 교육은 민주주의적 기본적 가치 기반 위에 있다'는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그 가치라는 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 권리와 의무,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와 관심 등이라고 합니다. 이성으로 받아들인 게 아니라 타인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것이라는 겁니다. 

최 교수는 "한국에서는 가정에서 '넌 최고야, 넌 똑똑해, 넌 남과 달라'라고 교육시키겠지만 스웨덴에선 '넌 남들과 다르지 않다'고 교육시킨다"고 말했습니다.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 달라도,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인간의 가치는 똑같다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가르친다는 겁니다. 이미 탁아소에서부터 이런 교육들이 진행되는 것을, 다문화 사회인 한국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의 살트셰바덴 협약을 기다리며

 

바쁜 일정으로 최 교수와의 만남을 급하게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작별 인사를 하는 제게 그는 살트셰바덴에 가 볼 것을 권했습니다. 1930년 초까지 파업일수가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 중 하나였던 스웨덴. 그 스웨덴의 노사 갈등이 봉합될 수 있었던 것이 살트셰바덴에서 체결된 '살트셰바덴 협약' 때문입니다. 특히 올해는 살트셰바덴 협약이 있은지 75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 협약은 지금의 스웨덴을 있게 한 중요한 사건입니다. 1938년 12월 20일, 노사간 상생을 위해 노동자와 사용자는 노동시장위원회, 임금협상, 노동자해고, 노동쟁의 등 4개 조항을 담은 협상안에 합의했습니다. 노동자측은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고 사용자측은 완전고용과 복지개혁에 힘쓰기로 약속했습니다.
 
협약 체결 이후 안정된 노사 관계를 바탕으로 스웨덴 경제는 1970년까지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국민의 집 연설(1928년), 사민당의 집권(1932년), 살트셰바덴 협약(1938년)으로 이어지는 역사적인 사건들은 스웨덴의 경제성장을 가능케 했고, 이는 현재의 보편적 복지를 만들어 냈습니다. 협약 이후 집권정당인 사민당은 정치적으로도 좌우연정을 통해 합의정치를 실현해 나갔습니다.

 

살트셰바덴 그랜드 호텔 전경살트셰바덴 그랜드 호텔 전경 살트셰바덴 그랜드 호텔 살트셰바덴 그랜드 호텔

다시 스톡홀름 중앙역으로 돌아오는 기차를 타고 슬루센역에 내렸습니다. 출발한 기차는 30여 분을 달려 작은 간이역에 도착했습니다.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5분여 달리자 종점으로 보이는 바닷가에 다다랐습니다. 정류장에 내리자 정면에 하얀 건물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건물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니 <GRAND HOTEL SALTSJÖBADEN>이란 글씨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스웨덴 노사정 대타협인 '살트셰바덴 협약'이 체결된 곳이었습니다.
 
살트셰바덴에서 다시 스톡홀름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트셰바덴 협약이 체결되는 것을 본 당시 스웨덴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대화와 타협을 통해 극한 대립을 끝내고 이제 동반자적인 노사관계가 실현될 수 있다고 희망을 갖진 않았을까요? 이제는 국민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진 않았을까요? 
 
"(국민의 집에선)다른 형제를 얕보지 않으며 그를 밟고 이득을 취하지 않는다. 약한 형제를 무시하거나 억압하지 않는다. 이런 좋은 집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동등하고, 서로 배려하며, 협력 속에서 함께 일한다. 이런 '국민의 집'은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특권 상류층과 저변 계층의 사회・경제적 격차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 집 연설문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최연혁 교수와는 스웨덴의 역사 및 복지, 그리고 현재의 문제점 등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만 민주주의와 관련된 내용을 우선 정리하다보니 모든 이야기를 이 글에 담지 못했습니다. 귀한 시간을 내주신 최연혁 교수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와 한겨레 사회정책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스톡홀름 사회포럼은 ‘노사상생 및 정치화합’을 주제로 6월 22일부터 30일까지 7박 9일간 진행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홈페이지(http://http://www.scips.se/index_kr.php)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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